특허권

특허법은 저작권법과 함께 인간의 정신적 창작물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지적재산법 체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사고가 문학, 예술 분야에 표현된 것을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반면, 특허법은 산업 기술 분야에 표현된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때문에 산업재산권으로 분류한다. 특허권은 발명자가 특허발명을 일정 기간 동안 독점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특허제도가 기술에 대한 독점을 허용하는 목적은 발명 내용을 공개시킴으로써 기술의 확산,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특허제도는 줄곧 그 적용대상을 확장해 왔고 권리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특허권을 얻기 위한 절차적 통일과 함께 특허성을 판단하는 실체적 기준을 통일하기 위한 움직임이 국제적 차원에서 지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나 국제협정(WTO/TRIPs 협정)을 통해 개별 국가에 강요되는데,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특허에 의한 독점기간은 TRIPs 협정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20년으로 확장되었고 특허를 부여하지 못하던 영역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80년과 81년 "태양아래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특허의 대상이 된다"는 논리로 생명체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특허권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논리는 인터넷을 통해 구현되는 사업 방식에 대해서까지 특허권을 부여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

특허제도는 중세 유럽에서 태동한 이후 경제정책의 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는데, 이 제도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논거는 발명자를 모방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발명자에게 기술 혁신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할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즉, 경쟁자가 발명을 모방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는다면, 발명자는 혁신비용을 감당할 충분한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허권의 보호를 통해 발명자는 창작의욕을 가지게 되고 사회 전체의 이득은 이들의 창작 행위에 의해 증가할 것이므로, 특허권의 보호를 강화할수록 사회적 이득은 증가하며, 특허제도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이익이 혁신에 소요되는 비용을 초과하더라도 특허보호가 없다면 발명자는 기술 혁신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최근의 디지털 경제 또는 지식 경제에서는 특허제도를 뒷받침하는 이러한 경제적 모델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허제도가 새로운 차원의 독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디지털 경제를 가능하게 만든 기술의 혁신 과정은 개발 주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상호보완적이고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란 개발 주체들 사이의 소통이 활발한 것을 의미하고, 순차적 과정이란 연속으로 일어나는 각각의 혁신이 이전 단계의 혁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상호보완적인 과정이란 잠재적 혁신자들이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주어진 시간 내에 특정한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의 혁신이 무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즉, 기술의 혁신 과정에서 현재의 혁신은 과거의 혁신을 순식간에 낡은 것으로 만들고, 현재의 혁신은 과거의 혁신에 의미 있는 가치를 추가하는 상황)에서 순차적 혁신이 모두 특허 받을 수 있고, 각각의 특허는 하나의 혁신에만 적용된다고 가정할 때, 과거의 혁신에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자는 현재 또는 미래의 혁신에 참여하려는 자를 배제할 수 있다. 따라서, 순차적 혁신 과정에 존재하는 임의의 특허는 그 이후의 모든 혁신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특허권에 의한 기술 독점을 보장하면, 이 독점권은 기술의 혁신을 오히려 방해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특허 제도가 혁신에 기여한다면,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은 더 많은 특허를 확보했을 것이다. 그러나, 90-92년 사이에 미국에 등록된 특허 건수는 오히려 그 반대임을 보여준다.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거의 내놓지 않는 기업들(IBM, 히타치, AT&T, 도시바, 샤프, 제록스)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들(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로터스, 노벨, 오라클)보다 더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BM에게 특허 로얄티로 93년에 2천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터넷 기술 또는 인터넷을 통한 사업 방식에 적용되는 특허에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인터넷 특허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미국 연방고등법원의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Bank & Trust Co. v. Signature Financial Group Inc., 1998) 판결이다. 이 판결의 논리는 첫째, 하늘 아래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둘째, 특허권으로 청구하고 있는 대상이 실제로 적용될 가능성(practical applicability)이 있으면 그것이 사업 방법이든 아니든 따질 것이 없이 특허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리적으로도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허제도의 기본적인 취지를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의도적이다. 인터넷 산업에서는 최초로 시장에 진입한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새로운 경제 법칙이 통용된다. 이러한 산업 분야에 특허권을 적용하는 것은 시장 초기 진입자가 후발 진입자를 시장에서 완전히 축출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독점과 경쟁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하고, 새로운 기술 분야를 특허 제도의 틀로 끌어들이기 전에, 독점의 인정을 통해 기술 혁신이 실현되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주요 문서/링크
 - Internet Patents: Giving Away the Store (Bryan Pfaffenberger) : 이 글은 인터넷 특허를 인정하기 위해 미국 법원이 채택하는 법리의 모순점을 알고리즘의 정의로부터 찾아내며, 기술자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법률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터넷 기술에 특허를 부여하는 것은 미국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번역]
 - 특허제도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역할 (윤성식, 1999)
 - 기술 독점과 기술 확산 - 특허의 정치경제학 (윤성식, 2000)
 - 비즈니스 모델 특허, 무엇이 문제인가 (남희섭, 2000)
 - Sequential Innovation, Patents, and Imitation (James Bessen & Eric Maskin,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 Intellectual Property on the Internet: What's wrong with Conventional Wisdom? (Jim Bessen & Eric Maskin) : 위 두 글들은 고도 기술 분야에서 특허에 의한 독점 부여가 기술의 혁신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경제학적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 How Could Software Patent Law Impact Electronic Commerce? (Mark Lee)
 - Software Patents: an Industry at Risk (League for Programming Freedom)
 - The Problem With Patents (Lawrence Lessig)
 - Free Patents - Protecting Innovation & Competition in the IT Industry (Freepatents.org)
 - Nonobviousness and the incentive to innovate: An economic analysis of intellectual property reform (Robert M. H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