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안녕하신가, 당신의 개인정보 뉴스제공시각 : 2000/04/03 20:52 출처 : 한겨레신문 ----------------------------------------------------------------------------- 네티즌 박아무개씨는 지난달 14일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구입했다. 인터넷 쇼핑으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박씨는 썩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쇼핑몰에서 요구하는 대로 주민등록번호, 배달받을 주소, 이메일, 거주지, 전화번호, 직업, 소득, 신용카드번호, 결혼 여부, 기념일, 취미·특기 등 10여가지를 일일이 입력하자니 번거로웠을 뿐 아니라, 혹시 자신의 신상 정보가 악용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 사용이 점차 확산되면서 여러 사이트에 제공한 개인 정보를 통해 프라이버시가 침해받은 사례가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사이버 몰에서 자주 책을 구입하는 정아무개씨는 최근 신용카드 금액이 잘못 청구돼 카드사에 알아보았더니 자신의신용카드 번호가 해킹당한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 얼마 전에는 동유럽 출신의 한 해커가 미국의 인터넷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에 침투해 무려 48만5천장의 고객 신용카드 정보를 빼낸 사실이 보도돼 충격을 주었다. 정보통신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개인정보 관리 부실로 인한 대형 사고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보통신서비스업체들이 경품이나 현금을 내걸고 회원을 모으면서 이용자들로부터 각종 개인 정보를 제공받고서도 정작 이 정보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보보호센터 정연수 상임연구원은 “대부분의 국내 웹사이트들이 해킹이나 불순한 목적으로 개인 정보에 접근하는 데 대해 별다른 안전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정보보호센터가 지난해 11월 정부, 공공기관, 쇼핑몰, 통신사업자, 일반 회사 등 국내 1000개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도 이를 증명한다. 조사대상 가운데 개인 정보에 대한 접근 제어를 위해 패스워드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71%였고, SET나 SSL 같은 암호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경우는 10%에 지나지 않았다. 정씨는 “패스워드나 아이디를 사용하더라도 SSL 같은 안전한 프로토콜을 이용하지 않으면 쉽게 해킹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회원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을 때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입력하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줄 정도로 회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등한히 하는 업체들도 있다. 이런 허술한 개인 정보 관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인터넷 및 전자상거래 이용을 꺼리게 해결국은 인터넷 활성화의 장애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부터 시행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지켜야 할 사항과 이용자의 권익 보호 등을 담은 `개인정보보호지침(안)'을 마련해 여론 수렴중이다. 그러나 현재 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이 안의 일부 조항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업자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을 선택사항으로 해놓아 소비자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서비스 제공자가 보호자로부터 미성년자에게서 수집한 개인 정보에 대한 열람 또는 정정, 동의 철회를 요구받았을 때 필요한 조치를 `반드시' 취하도록 한 게 아니라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해놓았다. 김성숙 녹색소비자연대 연구원은 “사업자들은 법률에 강제사항으로 돼 있어도 잘 지키지 않으려 하는데 선택사항으로 해놓으면 누가 이를 지키겠느냐”고 반발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98년 제정된 `전자상거래 개인정보보호지침'은 “보호자의 열람 및 정정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인터넷상에서 제공하는 개인 정보와 관련해 구체적이고 엄격한 지침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업자가 필요 이상의 과다한 개인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피해가 일어날 경우 사업자가 보상해주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초 공청회를 열어 권고 성격의 정보보호지침안을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최근 불붙고 있는 국내 전자상거래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지나친 규제에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윤영미 기자youngm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