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기술의 발전과 사회구조 변화 >>

박 준 식

한림대 사회학과 부교수

I. 정보기술 혁명

오늘날의 인류는 정보기술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혁명이란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요소의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혁명이란 사람들이 일하고, 살며, 생각하고, 즐기며, 교류하는 방식과 규칙들, 즉 삶의 방식 그 자체를 바꾸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의 마지막 몇 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급속하게 전개되는 기술적 전환의 시대를 헤쳐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종종 인간이 의존하는 기술체계의 근본적 변화와 상응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혁명은 산업혁명의 기초를 이루었던 '물질문명'의 기술이 '정보기술'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면서 인간들의 삶과 사회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 상황을 지칭한다.

어느 시대에서나 그 시대의 지배적 기술체계가 존재한다. 정보기술혁명이 도래하기 이전 인류는 산업혁명을 경험하였다. 이 산업혁명은 생산과 분배와 관련된 근본적 기술혁신을 동반하였다는 점, 이와 더불어 일련의 근본적인 사회 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철강과 같은 새로운 기초 소재의 등장, 증기기관이나 석유, 혹은 내연기관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활용, 새로운 수송 및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발명, 그리고 함께 출현한 새로운 사회제도와 노동조직 등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전개된 변화였다.

오늘날 정보기술의 등장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기술과 사회시스템의 변화에 필적하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 조직적 측면에서는 산업혁명 시대의 집권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원리들이 분권적이며 유연한 조직 원리들로 변화되고 있다. 경직된 기계적 장치들은 고도의 정교한 전자제어와 통제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고 있고,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단순 반복적 노동의 영역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으며, 모든 산업 영역에서 정보기술의 적용과 확산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우리들의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조차 변화시키고 있으며, 지구촌은 급속도로 하나의 '네트웍'(network)에 의해 '연결된 세계'(connnected world)가 되고 있다(Castells, 1996).

이 모든 변화는 과거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변화에 버금가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기존의 사회제도, 조직과 관행들이 곧바로 사라진다거나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는 현재의 몸 안에 스며 있고, 현재는 과거와 함께 존재한다. 과거의 제도와 관행 역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기술의 변화가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제도와 관행 등의 새로운 기회들에 대한 대응은 지체되는 경향이 있다. 제3의 물결이 이미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2의 물결', 혹은 '2.5의 물결 속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다양한 문명의 물결들이 격렬히 충돌하는 소용돌이도 도처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혁명의 큰 흐름은 이제 막을 수 없는 대세로 등장하고 있다. 이 기술은 사회를 규정하는 기술을 바꾸었고, 이와 함께 사회와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모습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직 명확한 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II. 정보와 정보혁명

우리가 정보기술 혁명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information)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에 대한 이해는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정보공학의 시각에서 보면 정보는 잡음을 배제한 메시지 신호나 불확실성의 감소이며, 물리학적인 의미에서의 정보는 '질서의 상황을 재는 척도'로도 정의된다. 다른 한편 생물학에서는 정보를 의미할 때 주로 유전 정보나 신경정보, 혹은 감각정보를 지칭한다. 다른 한편 인문과학, 혹은 사회과학에서는 정보를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것, 구별이 가능하고 차이가 있는 것, 사물의 내력을 알 수 있는 것, 혹은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어떤 것으로 본다.

정보의 개념이 이처럼 포괄적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유전정보나 전기적 정보, 각종 뉴스, 책의 내용, 컴퓨터, 소설, 만화 건물을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포함하고 있거나, 혹은 정보를 구현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신문이나 회화, 댄스 등 그 속에서 어떤 메시지가 읽혀질 수 있는 것이면 이것은 모두 정보라고 볼 수 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 구별 가능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정보라는 아주 광범위한 개념화도 가능하다.

또한 정보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면서 돌아다닌다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박경리의 {토지}는 소설이면서 드라마로 재현되었다. 이처럼 정보는 미디어를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양식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정보는 여러 종류의 옷을 갈아입고 여러 곳에 실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정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덧붙여지며 재해석되고, 이 과정의 게임이나 규칙들이 만들어져가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보는 인간 개체와는 구분되는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마쓰오카 세이코, 1998).

지금까지 정보에 대해 이루어진 많은 정의들을 종합할 때 이에 대해 가장 그럴듯한 접근의 하나는 정보를 어떤 지향성을 지닌 독립적 개체들에 대해 '불확실성'(uncertainty)을 감소시키면서 개체들 상호간의 '소통성'(communicativeness)을 증가시키고, '구분'(distinction)을 유지하며,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면서 이어가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는 정보를 주로 그 기능적 관점에서 바라 본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기능으로 불확실성 감소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 여러분이 오늘이 토요일인 것을 알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토요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면 여러분이 얻는 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반대로 여러분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누군가가 토요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여러분은 정보를 얻는 셈인 것이다. 이 예에서 동일한 사실이 어떤 경우에는 정보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정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여러분에 대해 불확실성을 감소시켜줄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였는가에 달려 있다(빌 게이츠, 1995: 96).

다음으로 정보의 중요한 기능인 '소통성의 증가'를 보자. 소통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보는 처음부터 어떤 '지향성'(intentionality)을 지닌 주체가 불확실한 환경에 대해 얻고자 하는 어떤 인식, 혹은 복수의 주체들이 함께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의 협력을 위해 사용하는 소통의 매개수단이다. 여기에서 의사소통이 없다면 정보의 의미는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보는 그 자체에 '소통성'을 갖고 있다. 정보의 소통성은 송신자와 수신자간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정보는 송신자와 수신자간의 소통성이 증가함에 따라 가치를 증가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통성은 그 자체로서 어떤 지향성을 지닌 행위자나 대상의 구분을 요구한다. 구분은 그 자체로 정보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덧붙여지며 재해석되고, 이 과정의 게임이나 규칙들이 만들어져가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보는 인간 개체와는 구분되는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정보가 갖는 중요한 속성의 하나는 그 자체의 '지속성'(continuity)이다. 이는 정보가 지향성을 지닌 개별 행위자들의 생물학적 존재 시간을 뛰어넘는 자체의 시간과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보의 자체 생명력은 개체를 매개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개체의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넘어서 전달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보는 자체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존재이며, 또한 그 형태는 지극히 다양하고, 존재 방식은 극도로 유연하다. 이러한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소통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해석 가능한 공통의 규칙 체계, 판독기, 혹은 표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소통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정보화란 어떠한 현상을 가리키는가? 정보의 정의와 성격을 고려해 볼 때 정보화란 인간들 사이의 소통성이 획기적으로 증대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능력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정보의 절대량, 이를 처리하는 속도와 능력의 증대, 처리비용의 감소, 그리고 정보원들간의 상호작용 증대를 통한 소통성 증가 등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러한 능력들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을 때 불확실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대처, 혹은 통제 능력은 크게 증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절대량이 많고, 이를 처리하고 가공할 수 있는 속도와 능력이 커지면서,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어떤 기술이 바로 '정보기술'이며, 이러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정보기술혁명'인 것이다.

정보기술혁명은 곧 대량의 정보를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의 획기적 신장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은 주로 인간의 두뇌에 의해 담당되어 왔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은 두뇌를 구성하는 건강한 신경세포들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세포들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 고리들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며, 사람들간의 교류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두뇌에 의존하는 정보처리 방식은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간의 지적 능력, 정보의 처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이를 보조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의 필요성은 인류 역사의 진화와 함께 계속되어 온 것이지만, 금세기의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들면서 더욱 커졌다. 특히 사회구조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인구통계의 처리 등 전체 사회적, 국가적 수준에서의 신속한 정보 처리와 통제 능력의 증대 필요성은 빠르고 정확한 계산 능력을 지닌 기계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급속하게 증대시켰던 것이다(Beniger, 1986).

간단히 말해 정보기술혁명이란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러한 두뇌의 능력, 지적 능력, 통제 능력을 정보기술을 통해 획기적으로 확장시킨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는 지적 능력을 무한정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보편적 속성을 갖는다. 이 지적 능력의 확장은 단순히 개인의 지적 능력 확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은 확장된 지적 능력들간의 '연계성'(connectivity)을 포함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의 '내적 폭발'과 '외적 폭발'이 결합되고 급속히 연결됨으로써 오늘날의 정보화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의 발전은 곧 인간이 지닌 능력의 확장을 의미해 왔다. 인간의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손노동을 확장시켰고, 기계의 발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육체적 능력을 증대시켜 왔다. 도구나 기계의 발명이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확장시킴으로써 획기적인 생산력 증대를 가져왔다면, 정보기술의 혁명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인류의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III. 정보기술의 발전

1. 정보기술의 내용: 정신의 중요성

정보화의 시대는 정보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전개되었다. 산업혁명은 불과 100 여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인간 사회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은 자동차, 비행기, 철강, 내연기관, 전기, 석유 등과 같은 기술 및 자원과 더불어 전개되어 왔다. 정보화시대는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확장시킨 놀라운 발명품, 즉 컴퓨터와 더불어 급속한 진화를 거듭해 왔고, 이 흐름은 21세기를 넘어서도 계속 진행되어갈 것이다. 컴퓨터와 정보기술혁명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시대의 언덕 넘어 어떤 미래가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보화시대 문화와 문명, 사회제도와 구조의 토대가 되고 있는 정보기술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며, 변환시키고,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정보기술은 주로 전자공학에 기반을 둔 정보기술을 뜻해 왔다. 전자공학적 정보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극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시기에 정보기술혁명의 기술적 기초가 되었던 '프로그램 가능한 컴퓨터', 극소전자 기기의 기반이 된 '트랜지스터', 그리고 각종 통신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들이 사회 전체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정보기술들간의 결합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새로운 사회구조의 기초를 만들어낸 기술적 기반을 형성하게 된 것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정보기술의 확장은 그 내용에 대한 의미도 크게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정보기술은 단지 기술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기술은 그 물질적 모습보다 정신적 내용에 중점이 두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질 그 자체 보다 물질에 체화된 정신의 내용, 이러한 정신들이 상호작용되고, 활용되는 방식들이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야말로 정보기술혁명이 제기하는 핵심적 메시지라 할 수 있다(조지 길더, 1990). 정보기술을 이해할 때 이것의 물질적 측면에 집착하는 것은 그 본질을 간과할 우려가 매우 높다.

오늘날 정보기술은 극히 다양한 영역으로 발전해 나아가면서 인간 생활의 구석 구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 유형을 하나로 정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보기술을 편의상 그것의 하드웨어적 측면과 소프트웨어적 측면으로 구분한 후, 양자의 발전과 전개 과정을 기술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보기술 혁명이 오늘날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는가를 인터넷의 역사를 통해 간략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2. 하드웨어의 진화

20세기 후반 하드웨어적 측면의 정보기술 발전은 크게 극소전자공학(microelectronics), 컴퓨터(computer), 그리고 정보통신(telecommunication)이라는 세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Castells, 1996). 우선 극소전자공학기술의 발전을 보자. 오늘날의 모든 정보기술은 1947년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발명된 트렌지스터라는 극히 작은 정보처리 소자의 발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트렌지스터는 이진법에 기초한 정보의 처리 및 가공, 증폭 등을 가능케 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듯이 기계 내부의, 그리고 기계들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만들었다. 우리는 이 신기한 작은 발명품을 반도체(semiconductor), 혹은 칩(chip)이라 부르는데, 오늘날의 칩은 수없이 많은 트렌지스터를 손톱만한 공간에 모아 놓은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트렌지스터는 5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체 연구소, 대학의 연구원들에 의해 오늘날의 집적회로인 반도체 칩으로 발전되었다. 이 칩에는 수십만, 수백만 개의 전자 소자들과 이를 연결시키는 회로들이 미세 공간에 집적되었다. 칩의 발명은 이 시기에 대학과 기업체 연구소에서 이루어진 전자 소재 및 가공 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함께 진행되었고, 1959년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훠에차일드(Fairchild) 반도체사는 최초로 마이크로칩의 설계와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칩의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되었다. 칩의 확산을 촉진시킨 또 다른 계기는 그 가격의 엄청난 하락이었다.

칩의 가격이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하락하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수요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갔고, 원래 군사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칩은 민간 산업의 여러 분야에 응용되어갔다. 극소전자공학은 1971년 미국 인텔사의 엔지니어들에 의해 정보처리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칩 속에 구현됨으로써, 즉 오늘날의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가 만들어짐으로써 극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 기술은 정보처리 능력을 모든 기계적 장치들에 구현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는데, 이는 정보처리 능력을 갖춘 기계, 즉 컴퓨터의 등장과 보편화를 의미한다. 이후로 칩의 디자인과 집적 기술은 놀라운 속도의 진보를 거듭해 왔고, 칩은 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뿐 아니라, 칩을 통해 처리 가능한 정보의 속도 역시 맹렬한 속도로 증대되었다. 무엇보다 칩의 급속한 가격 하락은 이 발명품에의 접근 가능성을 높였다. 70년대를 넘어서면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도구들 속에 칩이 들어가게 되었고, 이제 컴퓨터는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인간의 필수적 존재 조건이 되었다.

트렌지스터가 발명된 것과 비슷한 시기인 1946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는 오늘날 범용 컴퓨터의 할아버지격인 에니악(ENIAC, Electronic Neumeric Integrater and Calculater)이 만들어졌다. 이 컴퓨터는 무게가 30톤이나 되었고 높이는 9피트에 이르렀으며, 18,000개의 진공관을 설치하고 작은 체육관 크기의 공간을 차지하였다. 이 기계를 켜면 필라델피아시의 가로등이 껌벅거릴 정도로 많은 전기를 사용하면서 1초에 5천번의 덧셈과 뺄셈을, 350회의 곱셈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에니악이 만들어지기 전인 2차대전 중 초보적인 컴퓨터는 이미 암호해독 등의 용도로 개발되어 영국군에 의해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에니악의 발명은 군사용 등과 같은 특수한 용도가 아닌 일반화된 계산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에니악이 만들어진 6년 후인 1951년에는 처음으로 상업적 컴퓨터가 만들어져 1950년 미국 인구통계 자료를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2년 후에는 IBM사에서 진공관을 활용한 컴퓨터가 개발되었다. 초창기 컴퓨터의 발전은 군수기관이나 과학적 연구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5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민수 분야로 확산되었고, 60년대에는 행정, 금융 및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대형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활용이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부터 컴퓨터는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갔고, 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과정이 엄청난 속도로 이어졌다.

컴퓨터의 발전에 전환점을 이룬 또하나의 전기는 1971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명이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컴퓨터의 거의 모든 기능을 손톱만한 크기의 집적회로에 집약하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컴퓨터의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에니악은 건물 하나의 공간을 요구하였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이 건물 크기의 공간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70년대 후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활용한 계산기의 등장은 이 변화를 의미하였다(Kidwell and Ceruzzi, 1994).

오늘날의 개인용 컴퓨터는 1976년 에플사에 의해 처음 상업화 되었고, 1981년에는 개인용 컴퓨터, 즉 피시(PC, Personal Computer)라는 이름의 기기가 IBM사에 의해 상품화되었다. IBM PC의 등장은 컴퓨터의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였다. IBM사는 개인용 컴퓨터의 선두주자인 에플을 따라잡기 위해 컴퓨터와 자사의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사양들을 공개하였고, 이는 유사한 기능을 지닌 컴퓨터와 주변기기의 개발과 상품화를 결정적으로 촉진하였을 뿐 아니라, 컴퓨터 업체들간의 경쟁을 활성화시켰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 성능은 급속도로 향상되어간 반면, 가격은 한없이 내려가면서 오늘날의 정보통신혁명은 전세계로 퍼져가게 되었던 것이다.

에니악이 만들어진 50년 후 개발된 팬티엄 프로(P6)라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는 5백 5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손톱만한 침에 집적하고, 초당 3억개의 명령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칩이 장착된 3kg의 노트북 PC는 애니악에 비해 무게는 1만 3천분의 1로 줄었고, 가격은 1백만분의 1에 불과하게 되었다. 칩의 성능 향상으로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단 한 개의 칩을 장착한 개인용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5년 전의 대형 컴퓨터 갖고 있던 능력에 근접할 정도가 되었다.

극소전자 공학과 컴퓨터의 발전은 오늘날 거대한 네트웍으로 발전되어가고 있다. 8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이미 컴퓨터는 더 이상 고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결합되고, 컴퓨터 자체의 이동성과 휴대성이 증가함에 따라 컴퓨터는 '네트웍'(network)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전자정보 공간'(cyberspace)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정보의 기억, 저장, 처리 능력은 이제 이러한 능력을 네트웍으로 공유하는 극도로 유연한 시스템으로 발전해 왔고, 이제 집권화된 정보의 저장과 처리는 분권화되고 상호작용적이며, 서로의 힘을 공유하는 네트웍으로 전환되었다. 기술적 시스템의 전반적 변화는 이를 기초로 형성되는 사회조직과 인간관계의 성격도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네크웍을 통한 연결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은 상호상승적 관계를 맺으며 놀라운 속도로 결합되어가고 있고, 이것이 21세기 정보혁명의 방향을 선도하고 있다. 정보통신 혁명은 전자 스위치, 연결장치, 전송기기 등과 같은 '연결 기술'(node technologies)의 획기적 발전에 기초하고 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집적회로와 디지털 스위치를 활용하여 대규모 정보를 더 빠르고 유연하며 값싸게 교환하는 기술들이 급속히 발전해 왔고, 이것이 오늘날 정보통신혁명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광섬유나 레이저 등을 활용한 광전자 기술의 진보는 정보 교환 능력을 엄청나게 증가시켜 왔고, 이것이 90년대부터 미국 등 선진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정보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의 기초가 되고 있다.

통신의 수단 역시 빠르게 다원화되어 갔다. 기존의 구리선과 더불어 광섬유가 유선통신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인공위성, 혹은 공중파를 통한 통신기술의 획기적 혁신이 이어졌다. 이러한 통신기술의 발전은 고정된 정태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동태적 개념으로 전환시켰고, 다양한 컴퓨터 및 커뮤니케이션 장비를 휴대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신유목민'을 등장시켰다. 이리하여 21세기의 인류는 비행기나 버스, 자동차 안에서, 또는 산이나 바다 등 어디에서나 누구와도 연결되는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기들을 갖고 사막에서 풀을 찾아 양떼를 모는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자크 아탈리, 1993).

3. 소프트웨어의 진화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기술의 발전을 기계적 측면에서 보았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진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함께 보아야만 한다. 좁은 의미의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시스템에서의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의 지적 활동을 통해 생산된 프로그램들을 통칭하지만, 넓은 의미의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모든 문서 및 그 사용법,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나타나는 유형, 무형의 정보 처리 방법들을 모두 지칭한다. 하드웨어가 인간의 육체라면 소프트웨어는 그 정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보기술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들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소프트웨어는 기계의 특수한 부분 정도로만 간주되었다. 50년대 상업적 컴퓨터가 처음 도입되고 70년대 후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기초를 둔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소프트웨어는 소수의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특허권을 기초로 설계한 기계에 대해서만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특정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제작된 하드웨어에 대해 제한적 용도의 소프트웨어만을 프로그래밍 해 왔고,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60년대 중반부터 소프웨어는 하드웨어와 분리된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1964년 IBM사는 시스템 360(System 360) 모델을 발표하면서 같은 기술 표준에 기반한 컴퓨터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함으로써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비용을 낮추고, 어느 컴퓨터에서나 작동 가능한 응용 프로그램들의 개발을 촉진코자 하였다. 1969년 IBM은 드디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판매를 '분리'(unbundle)함으로써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제품으로 상품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아직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제품의 개발과 서비스는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 향상, 이에 기반한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은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곧이어 수 천 개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컴퓨터의 계산 속도와 기계적 성능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IBM사는 이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조그만 회사에 일임했고, 이 회사가 만들어낸 컴퓨터의 운영체계인 DOS를 자사의 컴퓨터 운영체계로 채택하였던 것이다.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의 개발은 하드웨어 및 그 제조업체로부터 독립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전혀 새로운 산업을 향한 거대한 출발점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Corp.), 로터스(Lotus Development Corp.)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개인용 컴퓨터에 기반한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들에 대한 폭발적 수요에 대응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컴퓨터의 모든 기계적 작동 방식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전세계 2억대를 육박하는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계와 응용 프로그램들을 지배하는 이 회사는 급기야 IBM을 물리치고 컴퓨터 산업의 진정한 '빅브라더'가 되었고, 21세기의 인류는 이 회사가 만들어놓은 정보의 그물망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게 된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컴퓨터는 여러 대의 개인용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 그리고 대형 컴퓨터가 연결되면서 거대한 네트웍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네트웍은 과거 대형 컴퓨터에서 행해지던 중앙집중적 작업들을 수많은 개인 사용자들로 분산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고, 이에 따라 분산된 컴퓨터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이나 운영체제의 필요성이 증대시켜 갔다. 소프트웨어의 진화 역시 네트웍상의 다양한 사용자들을 더 쉽고 편리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이와 함께 기술적 복잡성이 커지고, 정보처리 비용 감소에 대한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고객의 수요에 따른 정보 시스템 구축 산업 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9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버금가는 세계적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90년대 초반의 5년간 소프트웨어 시장은 거의 70% 가까운 고속 성장을 보였고, 이 시장 가운데 56%를 미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과거 하드웨어의 생산에 의존하던 많은 기업들도 더 높은 이윤과 성장성을 보장해주는 소프트웨어 산업으로의 이전을 서두르고 있고, 이 분야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은 기업 차원 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핵심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1995).

<표 >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 진화의 주요 사건들

1950년대

◎ 최초의 상업적 컴퓨터 생산.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일부분. 하드웨어 업체들에 의한 소프트웨어의 독점(1950년대).

1960년대

◎ IBM 360 계열의 컴퓨터들에 대해 호환성을 지닌 범용 소프트웨어의 개발(1964).

◎ 호환성을 통한 개발 비용의 절감(1964).

◎ 정보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산업의 형성.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80년대 초반까지 지속(1960년대).

◎ 미니컴퓨터의 등장.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 증가. 컴퓨터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소프트웨어의 비중 증대(1965-69).

◎ IBM,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시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독자적 성장 촉진(1969).

◎ 컴퓨터들간의 네트웍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둔 운영체계, 유닉스(Unix)의 출현(1969).

1970년대

◎ 인텔사,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 소형의 값싼 컴퓨터의 출현(1971).

◎ 에플사,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상업화 성공. 운영체계와 하드웨어가 함께 제공됨(1977).

1980년대

◎ 시스템 통합 산업 시장의 주도권이 정부 기관에서 민간 부분으로 이동. 고객의 주문에 따른 네트웍 중심의 시스템 통합 산업의 급성장(1980년대).

◎ IBM,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자사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계의 공급업체로 선정. 마이크로소프트사의 DOS, 80년대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계의 표준이 됨(1981).

◎ 개인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운영 프로그램 시장의 급성장. 로터스, 워드퍼팩 등 수백개의 독립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의 등장(1982-84).

◎ 에플사 그레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에 기반한 운영체계 개발(1984).

◎ 기업들의 다운사이징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정보 시스템 관리의 외주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급성장(1989).

1990년대

◎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3.1 출시. 1994년, 6천 5백개의 윈도우가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에 설치됨(1990).

◎ 윈도우의 네트웍 기능을 강화한 Windows NT 개발(1993).

◎ 윈도우 95 출시(1995).

◎ 최초의 인터넷 웹 브라우저 모자익(Mosaic) 개발(1993)

◎ 윈도우 98 출시(1998).

◎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 네트웍 시대의 도래(1996).

출처: 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1995. Global Competitiveness of the U.S. Computer Software and Service Industries. 그림 2.1을 재구성.

오늘날 소프트웨어 산업의 진화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컴퓨터들을 전세계적으로 연결시키는 인터넷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인터넷의 발전은 과거 개별 국가나 기업 수준에 갖혀 있던 소프트웨어 산업과 시장을 전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세계화는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특정한 국가가 거의 완벽하게 독점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시장과 기술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표준을 거의 완벽하게 주도함으로써 정보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거의 장악해가고 있는 반면, 다른 모든 나라들은 미국의 주도권을 속수 무책으로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 산업들과는 달리 소프트웨어 산업은 그 속에 행위자들의 '정신'과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많은 경우 소프트웨어는 사용자들이 많을수록 더 많은 사용자들이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수확 체증'(increasing return)적 성격과, 한 번 표준이 정해지면 다른 행위자들도 이 표준을 따라야만 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을 갖고 있다(브라이언 아서 외. 1997). 또한 소프트웨어는 거의 전적으로 '정신'의 산물이다. 제품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과 물질 중에서 정신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 소프트웨어이다. 물질 속에 체화되어 있지 않고, 무게가 없는 정보의 형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며, 확산이 쉽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소프트웨어 산업의 지배는 곧 문화에 대한 지배를 의미한다. 소프트웨어가 주도하는 정보화의 세계는 우리들에게 전례 없는 새로운 상황의 전개를 의미하며,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한 세대동안 전개된 인터넷의 진화 과정이었다.

4. 인터넷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건물의 가장 안전하고, 넓으며, 최신의 설비를 갖춘 공간을 차지하는 거대한 기계에 불과하였지, 컴퓨터간의 소통은 불가능하였다. 이 기계는 기껏 해야 하나의 전용 전화선을 통해서만 원거리의 컴퓨터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거리 전용 전화회선을 유지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냉전체제가 한창이던 60년대 초반, 미군은 적의 핵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컴퓨터들과 미사일 기지들간의 상호 소통이 가능할 수 있는 컴퓨터 통신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방성은 곧 이러한 관심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였다.

60년대 초반, 처음 이 연구를 주도한 렌드사(Rand Corporation)의 폴 바란(Paul Baran)은 페킷(Packet) 스위칭 기술을 활용한 분산 소통망(Distributed Communications Network)을 제안하였다. 그가 구상한 시스템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전화선들을 통해 연결된 컴퓨터 네트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란의 생각은 컴퓨터들 상호간에 교환되는 데이터들을 '페킷'이라는 더 작은 조각들로 나눈 후 이 페킷들을 전화선을 통해 송출하는 방식이었다. 각각의 페킷에는 정보의 출발점, 종착지점, 그리고 원자료상의 위치를 알리는 개별 정보가 포함되어, 컴퓨터 통신망에서 정보를 송신하는 송신측으로부터 전달된 정보가 수신측에 도달할 때까지 거치는 일련의 통신 경로를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만약 페킷이 대상 컴퓨터까지 도착하는 데 실패할 경우 다른 전화선을 통해 보내도록 하였다. 두 개의 네트웍간 통신은 '라우터'(router)라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졌다.

1966년 경 미 국방성의 고등 연구 프로젝트 기획단(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은 그 산하에 17개의 컴퓨터 설비들을 미국 전역에 보유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실에서 이 컴퓨터 자원들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ARPA는 장거리 전화망을 유지해야 했고, 일부 연구자들이 이 전화망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밥 테일러(Bob Taylor)였다. 그는 서로 상이한 전화선을 사용하는 세 대의 컴퓨터들과 각각 연결된 3 개의 분리된 터미널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는 "하나의 터미널로 서로 다른 지역에 위치한 다른 컴퓨터들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고민을 제기하였다. 1969년 ARPA는 테일러의 고민에 대해 폴 바란의 "페킷 스위칭" 기술에 기초한 컴퓨터 네트웍의 확립과 관련된 과제를 지원함으로써 이에 화답하였다. 볼트, 베라넥 엔 노이만(Bolt, Beranek and Newman, BBN)이라는 회사가 이 과제를 담당하면서 자료를 페킷으로 분할하고, 이를 다시 결합시키는 기술 개발을 맡았고, 컴퓨터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초 가 만들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상호간의 페킷 교환이 시작하었고, 새로운 네트워킹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ARPANET이었다.

70년대 초반, ARPANET에 연결된 컴퓨터들간의 연결 마디를 의미하는 '노드'(node)는 매년 두 배로 증가해서 1972년에는 37개에 이르렀다. 이 네트웍은 다른 컴퓨터에의 원거리 접속, 파일 전송을 통한 정보 공유, 그리고 다른 컴퓨터 주변기기들의 원거리 공유라는 세 가지 주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1972년에는 처음으로 전자우편(e-mail)이 시작되었고, 그 해에 ARPANET은 "컴퓨터 통신에 대한 국제 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er Communication)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성공적인 공개와 더불어 네트웍의 잠재력이 인정되면서 AROANET에는 20일마다 1대의 컴퓨터가 연결되었다. 1975년 네트웍에서의 군사 관련 정보 수요가 증가하면서 ARPANET의 관리는 국방성의 국방 커뮤니케이션부(DCA, Defense Communications Agency)로 이관되었고, 대학과 정부 기관들에 대해서는 DCA의 지침에 따른 제한적 접근이 허용되었다. 그런데, 이 네트웍에의 접근 제한은 이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여타 기관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컴퓨터 네트웍들을 구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초반에 이르면 저마다의 특정한 목적을 갖는 여러 갈래의 네트웍들이 전세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AT&T의 UUCP(Unix to Unix CoPy), 노스 케롤라이나 대학의 USENET, 대학 연구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으로 유명한 CSNET(Computer Science NETwork), BITNET(Because Its Time Network) 등이 형성되었고, 이 시기에 이르러 대학과 연구소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네트웍을 사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전개하였다. 80년대 초반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각 지역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통신 규약을 가진 네트웍들이 증가했지만, 이러한 네트웍들은 상이한 통신 규약들로 인해 상호간의 통신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83년 1월 ARPA는 과거에 개발되어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로 불리던 규약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의 표준화를 지원하였다. 70년대 중반에 개발된 이 규약은 '네트웍들의 네트웍'(network of network)을 만들어 냄으로써 상이한 네트웍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이 네트웍들의 네트웍이 '인터넷'(The Internet)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1983년에 만들어진 이후 인터넷은 그 규모와 중요성이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였다. 새로운 네트웍들과 수많은 토론 집단들이 가세함으로써 인터넷은 훨씬 더 큰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네트웍들는 더 많은 자료들을 교환할 수 있게 성능이 향상되었다. 1987년 BITNET과 CSNET은 CREN(Corporation for Research and Education Networking)으로 통합되었고,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50,000개 이상의 접속지점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었다.

ARPANET은 21년간의 서비스를 끝으로 1990년 1월 1일 해체되었다. 이 무렵 보통 사람들도 가정에서 컴퓨터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뎀을 사용하여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ISPs, Internet Service Providers)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90년대 초반, 정보 제공자들은 인터넷의 문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며, 여기에 주소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1992년 제네바에서는 인터넷상에서 보다 효율적인 정보의 조직화, 접근을 가능토록 하기 위해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개념에 기초한 시스템이 제안되었다. 하이퍼텍스트는 링크라 불리우는 포인터를 활용해서 문서와 문서들을 직접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였고, 이 시스템을 개발한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이를 '월드와이드웹'(WWW, World Wide Web)이라 불렀다. 마크업 언어를 활용한 하이퍼텍스트 문서들은 그 속에 다른 인터넷 문서들을 연결시키는 링크들을 포함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1933년 당시 일리노이 대학과 국립 슈퍼컴퓨팅 응용 연구소(NCSA, 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에 근무하던 마크 안데르센(Macr Andreessen)은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을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은 '모자익'(Mosaic) 이라는 윈도우용 프로그램을 기발하여 문서, 그림, 영상, 소리 등을 하나의 문서에 담은 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모자익은 파일의 전송 뿐 아니라 전자 메일도 가능케 하였으며, USENET 토론에의 참여, 문서 자료의 접근 등 과거에 상이한 프로그램들로 가능했던 작업들을 통합시켰다.

<그림 1> 인터넷 호수트수의 증가 추이

자료: Zakon, H. R.(1988) Hobbes' Internet Timeline, http://www.org/zakon/internet/history/HIT.htm

----> 그림 1을 여기에 넣을것.

모자익과 월드와이드웹은 수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 네트웍에 쉽게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오늘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는 이 웹 작업을 더욱 개선, 발전시킨 것이다. 오늘날의 인터넷이 이제 거의 모든 컴퓨터들을 급속한 속도로 연결시키는 데에는 불과 3-4년 정도면 충분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기술들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는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

인터넷은 처음 가동되기 시작한지 불과 20 여 년만에 '전자정보 공간'(Cyberspace) 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공간의 '장'을 추가하였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의 발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어떠한 규약에 의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처음 인터넷의 원칙과 정신을 만들어 온 사람들은 불과 소수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수않은 사람들, 조직들이 이에 가세하였고, 그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변화하였다. 이 공간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걸고 있는 상이한 세력들간의 관계, 그들간의 게임의 규칙, 그리고 이것을 지배하는 정신을 둘러싼 투쟁이 인터넷의 미래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의 기술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짖든다. "만약 인터넷이 삐끄덕거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술, 전망, 동기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함께 미래를 개척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Leiner, B. M. 외, 1998)."

III. 정보기술의 성격과 확장

1. 정보기술의 성격

인류의 생활에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낸 정보통신 혁명의 기점을 언제부터 잡는가의 문제는 산업혁명의 기원을 추정하는 것 만큼이나 까다롭다. 그러나 기술혁명을 수많은 신기술들이 유사한 시기에 급속히 만개하고,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과 사고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 시기로 파악한다면, 그러한 의미에서의 정보혁명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개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우리가 논의하는 수많은 정보기술들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Castells, 1996).

에니악이 만들어진지 50년을 넘어선 오늘날 인류에게 컴퓨터나 정보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시계가 인간의 모든 생활을 하나의 시간으로 통합시키고, 산업자본주의에 기초한 일상성의 짜임새를 규정하게 되었듯이 컴퓨터와 정보기술은 인류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인류의 삶의 연결시키고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제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기는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함께 존재한다. 슈퍼마켓, 자동차, 가정, 사무실, 병원, 은행, 극장, 심지어는 커피숍에서조차 컴퓨터는 작동하고 있다. 인간과 정보기술이 함께 연결되면서 인간 진화의 새로운 차원이 열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기본적으로 컴퓨터라는 발명품과, 이에 기초한 수많은 기술들이 일상성의 모든 구석에 스며들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컴퓨터와 정보기술은 어째서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는가? 이는 이 기술이 갖고 있는 몇 가지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속성들 때문이다(Capron, H. L. 1996).

컴퓨터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그것의 '보편성'(universality)에 있다. 어떤 기술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공간적 이동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시키고, 이러한 능력들을 거미줄처럼 연결시킴으로써 인류의 생활에 예측할 수 없은 변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컴퓨터의 두 번째 속성은 '속도'(speed)에 있다. 컴퓨터는 정보의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켜 왔다. 만약 컴퓨터의 빠른 정보처리 능력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금융 거래, 전화 교환, 인구 통계는 도처히 처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정보처리 기계의 도움이 없는 현대 사회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의 세 번째 속성은 '저장 능력'(storage capacity)에 있다. 컴퓨터 시스템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이러한 데이터들을 효과적으로 불러오고, 필요에 따라 가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두뇌에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고, 이렇게 저장된 정보들을 필요한 상황에서 끄집어내면서 일상적 행위를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개별 두뇌의 정보저장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개별 두뇌의 정보저장 능력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인간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엄청난 정보를 인간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되었는데, 바로 공유된 정보의 저장 장소가 곧 '문화적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 문화적 공간에 서로 공유 가능한 정보를 축적해 왔고, 이를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갖기 위해 노력해 왔고, 공유된 문화공간에 보다 효과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필요에 따라 가져다 활용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바로 이 노력의 역사가 곧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 과정이었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정보저장과 전달의 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혁명적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종교혁명'과 '인쇄술'간의 관계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컴퓨터는 과거 인쇄 매체 시대의 정보저장 수단을 대체하는 훨씬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정보저장과 공유 및 활용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던 것이다.

컴퓨터의 네 번째 속성은 '신뢰성'(reliability)에 있다. 신뢰성은 주어진 자료를 정확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뇌와 지식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거듭하면서 발전한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주어진 프로그램의 한계 내에서 거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가끔씩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실수는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의 오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제한된 두뇌의 용량으로 한정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애매하고'(fuzzy)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한된 판단을 하는 데 익숙해 있으며, 인간의 두뇌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 같은 인간의 두뇌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면서 오차 없는 판단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높은 신뢰성을 갖는 정보처리 능력을 기닌 컴퓨터는 인간처럼 애매하고 어려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정보 상황에 신뢰성 있는 판단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는 특화된 능력에서는 인간을 능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의 다섯 번째 속성은 '연계성'(connectivity)에 있다. 컴퓨터가 처음 도입될 때 그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극히 부분적으로만 확장시킨 하나의 '점'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컴퓨터는 곧 '네크웍'(network)을 의미한다. 점으로만 존재하는 컴퓨터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선도하는 것이 '인터넷'(internet)이다. 두뇌의 효율성이 수많은 뇌세포들간의 연계성의 정도에 좌우되듯이 컴퓨터들간의 연결은 확장된 인간의 지적 능력들이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뇌가 수많은 뇌세포들이 함께 모여 구성하는 하나의 '사회', '소우주'인 것처럼 정보화사회는 확장된 인간의 정신적 능력들이 더 큰 사회적 네트웍으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이 결합된 지적 결합체를 구성하는 소우주들간의 '소통적 능력'(communicative capacity)의 증가 정도에 따라 정보화사회의 발전 정도가 가늠될 수 있다. 컴퓨터의 이러한 속성은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특히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일상적이고, 위험한 일의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내게 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기존의 노동자들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크게 신장시켜 준 것에 있다. 수시로 변화하는 불확실한 상황은 정확한 계산에 기초한 신속한 문제 해결과, 이에 기초한 의사결정 능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능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보적 주체들간의 긴밀한 연결 고리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연결 고리들과 연결되는 길의 성능, 소통되는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연결의 질서가 네트웍의 성격을 결정한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두뇌와 외부 환경이 연결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닫힌 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외부 세계와의 정보 소통이 차단되었다는 데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열린 사회는 정보의 소통성이 높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이 활발히 공유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창조적 대응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극대화라는 의미에서의 정보화는 인간 역사의 핵심적 측면이며, 정보기술혁명은 이 핵심적 측면의 급속한 진화, 발전을 의미한다.

2. 컴퓨터의 확장

오늘날 컴퓨터는 커뮤니케이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고 있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혁명적인 경제적 효과의 하나는 사회적 관계의 형성과 정보의 유통 및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 즉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연결되는 네트웍의 세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거래와 관계의 형성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을 엄청나게 감소시켰던 것이다. 컴퓨터에 기초한 정보기술의 발전은 결국 노동, 에너지, 지적 능력의 확장, 그리고 거래비용의 감소를 통해 인간의 생산적 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은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심대한 사회적 논란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톰 포리스터,1992). 몇 가지 분야에서의 예를 들어 보자.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내는 '그래픽들'은 의료, 비즈니스, 영상, 건축, 설계, 심지어 예술의 영역에서 심대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날 항공기의 조정을 책임지는 항공기 조종사들은 실제 비행기를 조종하기 전 항공기에 탑승한 것과 거의 동일한 조건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의 공간에서 대부분의 훈련시간을 보낸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고,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훈련이나 실험을 가상공간을 통해 수행함으로써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컴퓨터 게임, 아이들의 교육용 소프트웨어 등은 모두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현실화시킨 것들이다. 이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서 만들어내는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의 세계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제품들에는 바코드가 부착되어 있다. 이 바코드는 물건의 생산과 유통, 판매의 과정에서 스케너를 통해 물자의 흐름에 대한 실시간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컴퓨터를 활용한 전자 상거래는 상거래의 기본 형태를 근본적으로 뒤바꾸고 있다. 상거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거래 당사자들간의 최소한의 '신뢰'가 요구된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얼굴을 보아야 물건을 사는 관행이 강하다. 그러나 전자 상거래의 공간에서는 얼굴 없는 거래가 일상화된다. 미래의 유통산업은 얼굴 없는 전자상거래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과거 미국의 트럭운전사들은 그 어떤 직업집단들보다 단결력이 강했고, 이들이 결성한 노조의 힘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 조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 되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들의 일거수 일두족이 통신위성을 이용한 전파추적장치에 의해 감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88년 10월부터 전자주민카드 발급을 계획 중에 있다. 이 전자주민카드에는 우리 나라 국민 개개인의 주요 신상 정보가 기록된다. 만약 이러한 정보가 독재자의 손에 좌우될 경우 우리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감시망으로 돌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해 온 전자주민카드 계획은 시민, 사회단체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다. 사회 단체들은 전자주민카드가 만들어질 경우 우리 사회는 거대한 전자 감시망으로 돌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정보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갈등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인류가 정보의 민주적 활용과 통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컴퓨터에 의한 '전자감시사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언제라도 존재한다(Lyon, 1994).

컴퓨터는 가정 생활에도 광범위하게 파고들고 있다. 자녀들의 교육, 가정의 대소사에 대한 기록들, 통신, 게임, 가전제품 등의 관리에서 컴퓨터의 영역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는 교육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넷 대학'의 등장은 정보기술을 활용한 교육의 변화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를 말해준다.

오늘날의 생산 현장에서 로봇은 더 이상 생산과정의 보조자가 아니다. 로봇은 인간이 수행하기 힘든 작업들을 대신 수행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모든 움직임을 관리하고, 지시하는 일까지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인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지적이고, 창의적이며, 유연한 기능들마저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안정된 지위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자동화로 인한 '다운사이징'(downsizing)으로 인해 '평생직장'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임시고용'이 일반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대해 고용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고용'을 위해 노동자들이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일반화는 '노동의 종말'(end of work)을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변화시켜가고 있다(Rifkin, 1995).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혁명의 전개 방향을 가늠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정보기술혁명의 전개와 더불어 인간의 지적 능력은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지적 능력의 급속하고 무한정한 확장은 정보화의 수많은 점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연결되어감으로써 진행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지금껏 인간들에 의해 견지되어 왔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 자체가 본질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데이비드 하비, 1994).

연계성의 무한정하고 급속한 확장, 그리고 시간과 공간 개념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지적 존재로서의 인간들간의 가장 방대한 네트웍인 인터넷에는 아직 주인이나 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간에서 인간은 휴대하기 쉬운 간편한 정보기기들을 갖고 시간과 공간에 관계 없이 자신들의 지적 능력과 취향에 따라 움직이는 '유목민'(normadic people)이 될지도 모른다(자크 아탈리, 1993). 그러나 이미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을 어떠한 철학과 어떠한 전망, 그리고 어떠한 의도를 갖는 세력들이 지배하는가의 문제는 미래 사회의 전개 방향을 좌우할 정도의 결정력을 지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윤영민, 1996; 백욱인, 1996).

IV. 정보기술과 사회구조 변화

전통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생산의 기본 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으로 정의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여기에 '정보'라는 새로운 기본 요소를 덧붙여야만 한다. 정보화사회의 발전은 정보를 생산의 기본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변화시켰고, 이에 따라 우리의 사회 구조는 근본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정보화사회의 전개와 더불어 '정신 노동'(mental labor)이 '육체 노동'(physical labor)의 위치를 대체하게 되었다.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이 시골의 농토에서 도시의 공장으로 옮겨갔듯이 오늘날의 사람들은 육체의 힘보다는 두뇌의 힘을 사용하는 일자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기술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 구조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정보기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업과 직업세계의 변화를 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변화는 결국 새로운 사회구조와 직업세계를 변화시키고, 이와 더불어 궁극에는 사회적 권력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에 대해 다니엘 벨은 정보화사회의 핵심적 전략 자원을 '지식'으로 보고, 이 지식의 생산과 가공 및 적용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벨이 강조하는 지식은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되는 경험적, 감각적 지식보다는 이론과 분석,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형성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전산업 시대나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장인'(craftsmen)에 의해 축적되어 온 장인 숙련이나 경험보다는 이론에 기초하고 체계적인 방법론과 의도적인 실험, 그리고 체계적인 검증과반증을 통해 대규모로 만들어지는 산업으로서의 지식, 정보의 생산과 유통 및 적용을 담당하는 '지식노동자'(knowldger workers)가 새로운 사회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는 것이다(다니엘 벨, 1984).

이와 관련하여 라이시는 정보화사회에 존재하는 세 가지 직업군을 독특한 방식으로 나누고 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정보화사회 속에는 과거의 직업으로 '일상적 생산 노동'(routine production service)에 종사하는 직업군과 '반복적 대인서비스'(repetitive in-person service) 에 종사하는 거대한 직업군이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한 축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으로서 '상징분석적 서비스'(symbolic-analytic service) 종사자들이 존재한다(Reich, 1991).

그는 이 세 직업군들 중 일상적 생산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사회의 주도계급이 되기 어려우며, 장기간에 걸쳐 쇠락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량생산 기업에서 일선 노동자가 행하던 유형의 반복적인 작업을 담당해 왔다. 단순생산직 종사자들은 대개 커다란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한다. 그들은 표준절차와 코드화된 규정에 의해서 작업을 하며 일상적으로 감시와 감독을 받고 일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충성심, 고분고분한 자세, 신뢰성 등이며, 요구되는 지식은 표준적 교육으로 충분하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노동의 종말 시대를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 시대의 자영농민들이 산업화와 더불어 끝없는 해체와 사회적 궁핍화의 운명에 처해졌듯이 단순생산직 종사자들은 정보화사회의 구조적 패자로 전락하게 될 것으로 본다(Rifkin, 1995).

다른 한편 정보화시대에 불리한 위치를 강요받는 사람들은 반복적 대인서비스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단순생산직과 마찬가지로 작업시간이나 작업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상관으로부터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교육도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 대인 서비스직 종사자가 단순생산직 종사자와 다른 점은 이들의 서비스가 물건이 아닌 사람을 상대로 하고 있고, 혼자 또는 소규모 팀으로 작업하며, 서비스가 아직 전세계에 걸쳐 판매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다. 소매상 점원, 웨이터나 웨이트리스, 호텔 종업원, 수위, 출납직원, 가사 보조원, 유아원 종사자, 택시 운전기사, 자동차 정비공, 등이 이러한 직업군에 속해 있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고, 일의 성격 역시 일상적 반복노동에 가깝다.

라이시에 따르면 정보화시대의 주도적 직업집단은 세 번째 직업 범주인 '상징분석 서비스' 종사자들이다. 상징분석 서비스 종사자들은 주로 '문제의 인식'(problem finding), '문제의 해결'(problem solving), 그리고 '전략적 중개'(strategic brokering)를 담당한다. 일상적 대인서비스와는 달리 이들의 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거래될 수 있다. 이들의 서비스는 표준화된 상품보다는 자료, 단어, 언어 표현이나 시각적 표현 같은 상징조작과 정보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과학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외환투자가, 법률가, 전략 수립가, 시스템 분석가, 마케팅 전략가, 건축가, 디자이너, 언론인, 음악가, 영상제작자, 대학교수 등이 이러한 직업군에 포함된다.

이들은 상징의 조작과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확인하며 중개한다. 그들은 복잡한 현실을 추상적 이미지로 단순화시키거나 재조직하고, 새로운 현실로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일하는 시간과 비용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아내거나 제시하는 데 소요되며 생산물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과 정보를 효과적이고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에 있다. 라이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상징분석 영역 종사자들은 전체 직업의 20%를 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고 한다.

라이시는 오늘날의 세계경제에서 단순생산직 종사자들은 지속적인 몰락의 처지에 놓여 있으며, 대인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처지 역시 점점 더 불리해지고 있다고 본다. 반면 새로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며, 전략을 중계하는 상징분석직 종사자들은 지속적으로 그 지위가 상승하고 있다. 과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모든 국민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는 이러한 경제적 공동운명체의 성원들이 각자 다른 배로 옮겨 탈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생산직 종사자들의 배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미국의 경우 단순생산직 노동자들은 대량생산체제 하에서 안정된 고용과 수입을 보장받아 왔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 활동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들은 다른 나라의 저임금 노동자들과 격심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구석구석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들은 선진국과 별 차이 없는 생산 설비를 갖고 값싼 노동자들을 활용하여 선진 제품들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현상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단순 코딩 작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인도의 소프트웨어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싼 임금으로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있다. 그 결과 선진국의 단순생산 서비스 분야의 노동자들은 점점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되고, 고용 불안이 심화되고 있으며, 소득 격차는 커지고 있다.

대인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오래 전부터 시간제 노동 하에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길 정도의 보수를 받고 있으며, 그나마 고용상의 지위 역시 크게 불안하다. 각종 사회보장의 혜택도 없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할 조직도 없다. 이들의 지위는 자동판매기, 전화교환기 등 각종 서비스 자동화 기기의 등장으로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사라지는 대인서비스직에도 불구하고 건강관리, 간병인, 비영리 사회단체 등 새롭게 등장하는 대인서비스 분야들 때문에 상대적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실질적 생활 수준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정보화사회의 전개와 더불어 상징분석가 집단의 지위는 높아지고 있다. 기술과 통찰력, 국제적 상호작용 능력을 구비한 이들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다. 상징분석가들의 지위가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화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에 있다. 디자인, 자문, 시각 및 언어적 상징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싼 비용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세계에 전달될 수 있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따라서 보수도 많아진다. 시장이 국내에 한정되었던 시절 이들의 서비스 시장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전세계가 그들의 시장이며, 벌어들이는 가치도 커졌다.

상징분석가 집단의 지위 상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예견되어 온 것이다. 엘빈 굴드너 같은 사회학자들은 60년대에 '지식인' 집단의 등장을, 다니엘 벨이나 피터 드럭커 등은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의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엘빈 토플러 등은 정보화사회의 권력은 이미 이들의 손아귀 속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엘빈 토플러, 1990).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고도의 상징 조직과 정보 처리 능력을 지닌 사회적 집단들의 역할과 비중이 크게 증대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높은 수준의 상징 분석과 조작 및 정보처리 능력을 지닌 사회적 집단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이들의 잠재적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지닌 국가가 정보화시대를 주도할 것이라는 주장을 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보화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어떻게 이러한 지식노동자 집단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고, 이들간의 상호작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교육'과 '학습' 그리고 막힘 없는 정보의 유통, 즉 '사회적 소통성'의 문제가 등장한다. 과거 대량생산 체제의 시대에 교육의 목표는 주어진 목표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충성심이 강하며 고분고분한 노동력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표준화된 제품이 일련의 생산조립공정을 거쳐 나오면서 표준규격에 맞지 않는 불량품은 재처리되듯이, 교육과정은 여러 학년과 과목으로 산뜻하게 나뉘어 일정한 시간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의 교육 개념에서는 지식의 주입보다는 문제와 해결책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물이나 현실의 일정한 패턴과 의미를 발견하는 추상화(abstraction), 정리되지 않는 정보들을 결합시키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사고(system thinking), 사고와 현실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시도로서의 실험(experimentation), 상호간의 지적 자극과 협력(collaboration)등과 같은 기본 기능들이 부각된다.

이러한 체제는 곧 '학습 조직', '학습 사회'의 구축을 의미한다. 그런데 학습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징전문가 집단의 공간적 집중과 이들간에 높은 소통성이 존재해야 한다. 정보화의 핵심 지역에 존재하는 공통된 특징은 결코 단기간에 축적될 수 없는 독특한 사회적 관계망과 사람들간의 소통성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사회적 소통성이 높은 지역들에서는 정확한 정보가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전달된다. 누가 어떤 일에 능숙하고, 문제의 해결이 어떻게 가능한지, 새로운 기회가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 등이 신속히 파악된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킹'이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킹은 그 자체가 거대한 비공식적 조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비공식적 조직들은 때로는 같을 대학의 실험실일수도, 민족적 네트웍일수도 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건, 비공식적 조직들은 정보기술혁명의 시대에도 사람과 정보의 빠른 흐름을 매개하는 핵심적 연결점들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공식적 네트웍은 세계적 네트웍과 결합되는 경우에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VI. 정보사회의 발전과 의사소통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기술의 성격, 발전, 그리고 이와 함께 전개되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정보사회의 발전은 어떻게 가능한가의 문제를 고민해 보기로 하겠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지적된 바처럼 정보화사회의 핵심 요소는 사회적 소통성이라 할 수 있다. 정보화사회가 어째서 사회적 소통성을 요구하는가는 정보 그 자체의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도출된다. 정보는 그 자체로서 소통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의사소통의 네트웍을 흐르면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고 새로운 정보가 더해지면서 가치를 무한정으로 증폭시킨다. 이는 정보의 순환이 막힘없는 소통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능한 호순환의 이익이다.

정보의 소통성은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받으면서 이 정보를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보화사회에서 특정한 사회의 발전 정도는 이 주고 받는 정보가 얼마나 밀도 있고 폭넓은 네트웍을 통해 흐를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소통됨으로써 그 자체가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정보에 가치가 더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상호작용의 막힘 없는 과정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을 때에만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인체의 정보를 주고받는 신경세포들은 무수한 가지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이 가지들이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정보는 교환된다. 세포와 세포간의 연결 가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이 연결 가지들을 통해 주고받는 정보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의 지적 능력이 높아지듯이 한 사회의 총체적인 지적 능력 역시 이러한 연결과 소통성의 정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정보의 소통성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교환을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밀도 높은 네트웍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른바 초고속 통신망 같은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초고속 통신망의 구축에 그토록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기존의 설비들을 개선하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보의 소통성은 물리적 의미의 사회간접자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소통성의 증대를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열린 관계가 극히 중요하다. 정보민주주의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제기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열려 있고, 열린 정보원들간에 끊임없는 상호학습의 과정이 존재할 때, 그리고 이러한 공간이 존재할 때 정보화사회의 주도 공간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정보화사회의 핵심적 가치관이 숨겨져 있다. 사람들 사이의 자유롭고 막힘 없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이 의사소통의 공간 속에서 활발한 정보의 공유와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정보화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의 본질적 속성이 소통성에 있고, 정보화사회의 핵심 가치관이 개방성과 민주성에 있다고 해서 현실의 사회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정보사회의 본질적 의미와 원리는 현실적 사회관계의 논리와 충돌하면서 얼마든지 어이없는 방향으로 변질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는 '정보의 독점'과 '상업화' 논리와의 격렬한 충돌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정보화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의 본질 속에는 정보의 독점으로 인해 나타나는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보화사회에서 정보는 그 자체로 권력을 의미한다. 만약 정보가 특정한 사회세력에 의해 지배된다면 정보화사회 역시 불평등과 권력으로 인한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정보화사회에 대한 대부분의 낙관적 논의들은 밝은 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라고 해서 소수의 권력을 지닌 사람이나 집단들의 정보독점과 권력 독점의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보화사회에서의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는 개인적, 집단적, 그리고 지구적 수준 모두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는 가정은 정보화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정보 독점의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극히 단순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정보의 독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과 의사소통의 왜곡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정보화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려는 노력은 정보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화사회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정보의 상업화 문제라 할 수 있다(백욱인, 1995). 정보의 상업화 문제란 정보에 내재한 의사소통적 측면의 논리가 상업적 자본축적의 논리와 충돌하거나, 이에 의해 '식민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셜 맥루한은 일찍이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서 인간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단지 즐기기 위해 TV가 쏟아 붇는 정보 앞에 몰려들고, 여기에서 가공되어 던져지는 정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붇고,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더 많은 선전과 가공된 현실을 기다리기만 할 뿐 이 과정에의 참여는 점점 더 약화되는 상황에 대해 개탄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는 애초에 소통적 수단으로 기능하던 정보화의 수단들이 순식간에 상업주의의 도구로 변질되는 모습들을 '인터넷의 상업화'를 통해 보아 왔다. 정보공동체 성원들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인터넷에 상업적 요소들이 급속히 접맥되면서 인터넷 역시 권력과 시장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는 정보화의 본질적 의미와 지향성에 바탕을 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매우 중요하다. 정보화사회의 현실에 대한 냉엄한 성찰을 바탕으로 왜곡된 정보화가 미치는 실제의 영향에 대해 균형 잡힌 입장을 가질 수 있을 때, 정보사회에 대한 막연한 예찬이나 환상, 혹은 현실에 대한 합리화 이데올로기에 의한 오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권력과 시장의 논리에 의한 의사소통의 왜곡과 식민화를 비판하고 정보의 고유한 개방성, 소통성, 그리고 비판성에 근거하여 민주적 사회관계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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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문제:

1. 산업혁명으로 인해 전통사회의 귀족이나 농민들은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정보사회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거나 몰락하는 사회적 세력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 이면에 새로 등장하는 사회의 주도세력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2. 정보를 불확실성의 감소 정도로 이해할 때 불확실성의 감소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3. 정보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 것인가? 미국의 실리콘 벨리나, 헐리우드 등이 어째서 정보화의 심장부라 불리우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추천 도서:

세이코, 마쓰오카(1998) <<정보의 역사를 읽는다>> 넥서스.

아탈리, 자크(1990) <<21세기의 승자>> 다섯수레.

윤영민(1996) <<전자정보공간론: 컴퓨터 네트워크의 사회학적 탐색>> 전예원.

토플러, 엘빈(1989) <<제3의 물결>> 한국경제신문사.


기본 개념:

정보: 정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견해가 가능하다. 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정의의 하나는 이것을 불확실성의 감소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상황과 대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는 우리에게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줌으로써 불안감을 감소시켜 준다. 우리가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이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정보기술혁명: 정보기술혁명은 곧 대량의 정보를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의 기술적 능력의 획기적 신장을 의미한다. 이 혁명은 인간이 지닌 누뇌의 능력, 지적 능력을 정보기술을 통해 획기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의 지적 능력의 무한적한 확장을 가능케 하였다.

상징분석 서비스: 상징분석 서비스란 문제의 인식, 문제의 해결, 전략적 중개 등을 전세계적 규모에서 담당하고, 이들의 서비스를 판매하거나 거래하는 직업 영역을 지칭한다. 이러한 서비스 종사자들은 제조된 물건의 판매 보다는 자료, 단어, 언어 표현이나 시각적 표현 같은 상징조작과 정보를 통해 거래를 수행한다. 과학자, 외환투자가, 법률가, 전략 수립가, 시스템 분석가, 디자이너, 영상제작자, 대학교수 등이 이러한 서비스 직업에 포함된다.

소통성: 정보 소통의 기본 원리는 이를 필요로하는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이 주고 받는 교환 관계에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발달한 정보사회는 정보의 소통성이 높은 사회라 정의할 수 있다. 정보의 소통성이 증대할수록 그 사회 전체의 정보처리 능력이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