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인터넷을 중심으로


朴宣映(경기대 겸임교수, 법학박사)

I. 글머리에

전자기술의 발전은 언론ㆍ정보 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앞으로 방송과 신문, 통신의 융합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더구나 텔레비젼, 컴퓨터, 전화 등 기존의 서로 다른 독립된 단말기가 새로운 다기능복합단말기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TV와 라디오, 방송과 신문, 방송과 통신매체의 융합현상이라든지 새로운 매체가 가져올 인간생활의 변화, MUD, MOO, CD-ROM, CATV, Hypertext, Narrowcasting, On Line Service, e-mail, BBS, EDI, 극초단파전달장치(Microwave trancemmitters) 등 새로운 용어들의 출현을 지적한다는 것은 마치도 시대착오적인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들 새로운 정보기술은 단순히 통신수단이나 발명품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정보분야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와 수준, 책임을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새로운 문화영역을 구축하면서 그 변화를 예고할 뿐만 아니라, 급격한 기술 발전과 상황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존 체제의 대응을 초래하고 있다.

1999년 현재 국내컴퓨터통신가입자수가 600여 만 명에 달하고, 2000년 3월 현재 인터넷신문을 제외한 순수한 인터넷방송채널만도 3,000개를 넘어서고 있으며, 그들 방송이 뿜어내는 채널 수가 평균 5개가 넘는 폭발적인 현상을 보이면서, 가상공간(cyberspace)의 무한한 확대와 가능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비단 언론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병원, 상점, 식당, 영화관, 서점, 법무법인, 심지어 가상대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현실화되고 있으며, 자판을 몇 개 두드리고 마우스로 가볍게 클릭만 한 번 하면 실시간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내가 원하는 온갖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앞으로 전자기술은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할 것이며, 전자상거래에 이어 전자민주주의도 곧 도래할 것이다.

그런데, 언론ㆍ정보분야의 이렇듯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思考나 법적 대응은 아직 달라진 게 거의 없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에 대한 법적 대응의 문제를 지금 언급한다는 것은 성급하고 사려 깊지 못한, 시기상조의 처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새로운 매체가 충분히 발전해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법적인 대응은 삼가면서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조악한 화면과 단조로운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컴퓨터매니아들의 장난거리 정도로 치부되던 인터넷방송이 공중파방송 못지 않은 다양한 볼거리와 진지한 프로그램 제작, 이용자를 바로 제작자의 지위로 끌어들이는 쌍방향식 방송의 가능성으로 인하여 기존의 언론시장이 이미 그 중요도를 잃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이들 인터넷방송 외에도 각 언론사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기존 신문사가 주축이 된 인터넷신문, 컴퓨터통신가입자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등에서 운영하는 전자게시판(Bulletin Board System)과 공개광장(Public Forum)은 기존의 언론매체 하에서 단순히 정보소비자의 지위에 머물렀던 시민들을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처리하고, 배포하는 지위로 탈바꿈시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로 인해 네티즌(Netizen)이라는 용어도 아주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새로운 기술의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정보의 역할과 성질, 사용, 타당성 등은 물론 정보를 규제하기 위한 목적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달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가상공간이 계속 발전하면서 모든 정보가 거래되는 장소도 늘어나고, 실제사회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적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도식적인 언론법체계로는 이들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가상공간법(Cyberspace Law)이라는 새로운 법학연구와 영역개발이 활성화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으로 인한 언론ㆍ정보분야의 환경 변화에 따른 법적 논의의 필요성을 먼저 살펴 본 후, 논의의 초점을 표현의 자유에 국한하여 외국에서의 논의과정을 비교법적으로 고찰한 다음, 이에 관한 우리 나라의 실정과 판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발전적인 측면에서의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가상공간-'정보의 바다'인가, '불법의 바다'인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을 가리켜 흔히들 '정보의 바다' 또는 '정보의 초고속도로(superhighway)'라고 하지만, 이 정보의 바다는 상호작용적인 쌍방향성을 가장 큰 기술적인 특징으로 하면서 동시에 공개성과 匿名性을 그 외형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역기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컨대, 인터넷상에서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얼굴을 보지 않고 만난다는 점에서 훨씬 홀가분한 자유감을 만끽할 수도 있지만, 아이디(ID)에 의한 만남을 일상화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왜곡시키고 사회로부터 개인을 소외시키는 자기격리(Self-Insulation)와 그로 인한 사회분열(Balkanization)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더구나 그러한 결과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정작 그다지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한편, 올해 5월 4일 발생한 러브(love)바이러스나 지난 해 4월 26일에 발생한 CIH바이러스 등 컴퓨터바이러스는 날로 그 유포속도가 빨라지고 피해액수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그 활동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가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전산망을 침범해 자료를 절취하고 시스템을 파괴하는 해킹행위는 무제한적이고 무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해 과히 정보전쟁 또는 가상테러(cyberterror), 심지어 가상무정부상태(cyberanarchy)라고 일컬어질 정도이고, 그 밖에도 메일폭탄 등을 통한 업무방해, 암호해독으로 인한 전자상거래의 신뢰성붕괴, 무단복사로 인한 저작권침해, 통신을 이용한 사기행위,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침해, 음란물의 유통 등 정보화의 역기능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피해자가 단순히 관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컴퓨터사용자로 확대된다고 하는 점에서 피해의 직접성과 문제의 심각성이 더 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화사회의 역기능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그 동안 형법을 개정하고(§314), 정보통신법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성폭력행위자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을 제정하거나 개정하였지만, 컴퓨터 보급율과 이용자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욱 다양화, 전문화, 고도화하고 있어, '정보의 바다'는 거의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불법의 바다'로 표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는 새로운 매체가 우리에게 '장미빛 미래'와 함께 '암울한 예단'을 동시에 던지고 있는 징표라고도 할 수 있다.

以下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점들 중에서 특히 인터넷을 통한 표현의 자유 문제 가운데 음란에 관한 논의를 제외한 폭력적 언어(fighting words), 공격적 용어(offensive terms), 危害言語(harmful and dangerous word) 등에 초점을 맞춰 이로 인한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 등에 관해 살펴본다.






Ⅲ. 가상공간에 대한 법률 규제의 논의-미국을 중심으로-

1. 이론적 배경

미국에서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발전이 과연 헌법 수정 제1조의 해석과 적용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하여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해 왔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새롭고 다른 기준은 결국 정부의 간섭을 초래했을 뿐이라며 또 다른 규범 정립에 반대하면서, 기존의 언론에 대한 법과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실제로 법원은 1991년 가상공간에서 일어난 명예훼손사건에 기존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판례를 남기기도 했으며, 연방대법원도 케이블TV에 대해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가상공간에는 기존의 매체들과는 분명히 다른 차이점이 존재한다며 새로운 이론의 정립과 그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즉, 쌍방향적 상호작용과 탈중앙적인(decentralized) 접근이 가능한 이들 새로운 매체들은 우선 기존매체와는 달리 접근이 용이하고(open-access), 사용자가 바로 내용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송이나 인쇄매체, 통신매체와도 다른 특성이 분명히 인정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기술은 일반인의 언론비용을 엄청나게 격감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법질서의 창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학파 가운데에도 변화의 혁명적 성격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 잠재적 가능성을 예견한다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새로운 시대에 법이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매체의 발전 추이를 지켜보고, 그 결과가 헌법 수정 제1조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영향을 심사숙고해 보자는 觀望派가 존재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런데, 새로운 이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未來學派나 심사숙고를 주장하는 觀望派나 모두 신기술이 가져다 준 새로운 매체 중 특히 인터넷이 그 기술적ㆍ본질적 특성상 외형적인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자가 자신의 기호와 취미, 특성에 맞는 사이트만 골라 다니며 정보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편협한 지식과 견해가 가져올 다양성의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접근이 용이하고 중앙통제장치가 없다는 인터넷의 장점도 조금만 그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한 일반인들의 의견보다는 정치적으로 극단적이거나 성격상 과격하고 집요한 사람들의 의견이 훨씬 더 많이 자주 올라옴으로써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터이론이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요컨대, 새로운 정보기술이 가져다 준 뉴미디어, 특히 인터넷에 관한 한, 미국에서의 논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뿌리 깊은 논쟁인 자유시장론(free market of ideas)이냐, 공적 검토론(public deliberation)이냐 하는 자유언론의 전통 논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연방대법원판사였던 홈즈(Holmes)판사가 주창한 잘 기능하는 언론시장(well-funtioning speech market)에 모든 것을 맡길 것이냐, 아니면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증진시킬 의무가 있고 공적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메디슨(James Madison)의 견해를 따를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장론을 지지하는 학자도 정부가 아무런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즉 검열이 아닌 내용중립적(content-neutral)인 정부규제는 받을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수정 제1조가 보호하지 않는 외설, 허위보도, 명예훼손 등은 규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가상공간에서도 외설과 폭력, 괴롭힘, 협박, 명예훼손적인 표현은 당연히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적 검토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 학설이 미국의 건국이념이나 민주적 이념, 민주적 목적, 민주적 정당성, 미국헌법의 탄생과정 등을 고려해 볼 때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를 필요로 하며, 이는 곧 정보의 정도에 달려 있으므로 공공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의견이 표출될 수 있도록 정부가 고려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희소성의 이론이 적용될 수 없지만, 인터넷의 저질화와 선정주의의 만연, 지각없는 프로그램의 범람 등을 생각해 볼 때 잘 기능하는 시장론에 회의를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정보기술이 펼치는 문제점과 현상을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하지도 규제할 수도 없어 회의를 느끼던 학자들은 시장이론과 공적검토론에 이어 터너모델(Turner Model)을 제3의 이론으로 제시한다. 터너모델이란 FCC와 케이블TV방송사인 터너社間에 있었던 사건이름에서 따온 이론이다. 즉, 시청자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지방방송사를 보호하기 위해 FCC가 케이블방송사에 대해 요구한 must-carry rule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정부가 시청자의 접근을 위해 새로운 언론매체를 규제할 수 있으며, 무료TV프로그램의 접근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역관심의 문제를 교환하고, 다양한 정보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도 일정한 규제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합헌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터너모델은 시청자의 들을 권리, 말할 권리, 접근권 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양성증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자유시장이론'을 택하지 않고 '공적 검토론'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새로운 매체의 특성을 대법원이 명백히 인정하고 반영한 판례라는 점에서 학자들은 이를 제3의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연방대법원이 터너판결에서 밝힌 병목(bottleneck)권한 내지 문지기(Gatekeeper)로서의 권한, 즉 통제자로서의 권한은 과연 새로운 매체, 특히 인터넷과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관하여는 항을 바꾸어 살펴본다.

2. 인터넷운영자 또는 관리자의 법적 지위와 책임

인터넷에 공개사이트를 개설하고 가입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와 견해를 올리는 공개광장(public form)을 운영하는 인터넷운영자나 그 관리자는 과연 법적으로 어떤 지위에 있으며, 어떤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는가? 다시 말하여 가상공간을 제공하는 통신업체가 신문ㆍ방송 등 기존의 언론매체와 같은 편집자(publisher)로서의 통제책임을 지는가? 아니면 단순히 배포만을 하는 서점이나 신문가판대, 심지어 전화회사와 같은 단순운송자(common carrier)의 역할만 하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중요한 판결이 두 번 있었다.

(1) 먼저 인터넷운영자의 책임을 편집자 정도가 아닌 배포자(distributor) 정도로 본 사건으로서 1991년의 Cubby, Inc. v. CompuServe사건(이하 '컴퓨서브사건'이라 한다)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온라인서비스를 하는 컴퓨서브社가 Rumorville이라고 하는 여론광장에 Cameron Communications(이하 '카메론社'라 한다)라고 하는 정보물 공급업체가 제공한 정보를 올렸는데, 은행업을 하는 Cubby社가 그 내용에 관하여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컴퓨서브사가 문제가 되는 표현의 잘못을 알지 못한 이상 명예훼손에 관한 편집자의 책임은 물을 수 없고 서점주인 정도의 책임만 있다고 판결하였다. 즉, 서점주인은 자신이 판매하는 책이 음란이나 명예훼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팔았을 경우에는 명예훼손에 관한 한 2차적인 책임을 질 수 있으나,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경우에는 단순히 돈을 받고 책을 운반해 주는 트럭운전사와 같은 운송인의 지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전달하는 모든 명예훼손적 정보를 게시판을 운용하는 자가 일일이 점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게시판 운용자가 그 내용의 문제성을 실제로 알지 못한 이상(actual knowledge)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인데, 이를 뒤집어보면 문제의 정보내용이 명예훼손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판결은 결과적으로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증진시켰다는 면에서 상업적 정보제공자나 시솝에게는 환영을 받았으나, 서비스제공자는 분명 서점과는 다른 기술적인 통제권(technological control power)을 갖는다는 점에서 분명 잘못된 판결이라는 비난도 동시에 받았다. 그러면 인터넷운영자가 공개광장에 올라오는 글을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2) 기술적인 통제권, 이른바 차단프로그램이 있는 전자게시판의 경우에는 그 운영자의 책임이 달라질 것인가? 이에 관한 판례가 바로 1995년에 있었던 Stratton Oakmont Inc. v. Prodigy Services Co.사건(이하 '프로디지사건'이라 한다)이다.

이 사건은 프로디지社의 전자게시판인 Money Talk에 匿名의 이용자가 증권투자회사인 Stratton Oakmont社 사장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게시했다며 Oakmont社가 프로디지社를 상대로 제소한 것이었다. 법원은 프로디지社가 이용자들에게 게시판에 게재되는 내용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 프로디지社는 단순 배포자가 아니라 편집권을 갖는 출판사의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판결하였다. 즉, 일정한 기준과 지침(guide line)을 가지고 게시판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인터넷운영자와 그 게시판 관리자는 당연히 편집자로서의 책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3) 小結-컴퓨서브사건과 프로디지사건의 차이

위 두 사건을 비교 검토하여 보면, 인터넷운영자가 단순히 정보제공자의 정보를 받아서 실어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 내용에 대하여 통제권을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가상공간에 있어서의 표현행위에 대한 책임 문제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단순히 장소를 제공하여 정보를 게재해주고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전화회사나 우편배달부, 또는 책이나 신문을 배달해주는 트럭운전사와 같이 일반운송인의 지위에 머물러 그 내용에 관한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지만, 일정한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그 내용을 관리하고 점검하며,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차단하는 기술적 통제제도를 두고 운영하는 경우에는 편집자로서 문지기(Gatekeeper) 또는 병목(bottleneck)에 해당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에서 살펴볼 우리 나라의 판례연구에도 귀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Ⅳ.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법적 논의

1. 인터넷은 '기타 출판물'인가, 통신인가?

(1) 인터넷홈페이지는 출판물이다?

지난 2월2일 모 여성방송인의 아들이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는 글을 국내PC통신과 인터넷홈페이지에 올렸던 사람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인한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내용을 신문에 게재한 국내일간지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기존의 판례들이 기본적인 법리만을 인용하여 판결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정보통신매체의 발달에 따른 사회현상의 변화를 설시하였는바, "통신시설과 개인 전산장비가 발달하기 전에는 개인은 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통신과 개인컴퓨터의 기술이 발달하고 그 저변이 확대되어 누구라도 쉽게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하여 능동적인 정보의 공급자가 될 수 있게 된 오늘날, 개개인은 각자가 생산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유통시킴으로써 사회에서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정보와 지식의 교환의 폭을 넓혀 궁극적으로는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게 되었다"고 진단한 후, "보통의 경우 개인의 홈페이지나 PC통신을 통하여 퍼뜨린 정보는 다른 설득력 있는 정보의 뒷받침이 없으면 머지않아 이용자들의 관심은 식어버리고 정보로서 가치를 상실한 채 사라져버려 공인되지 않은 '소문'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그 생명을 다한다"며 기존의 언론매체에 의한 보도가치가 가상공간에서의 의사표현에 우월함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같은 표현행위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라도 기존의 언론매체에 의한 경우와 가상공간에 있어서의 경우가 각기 다른 법리에 의하여 적용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그로 인한 손해배상액의 책정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지에 관하여는 명백한 언급이 없으므로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판결을 통해 법원은 두 경우를 구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가상공간, 즉 인터넷상에 글을 올리는 것이 출판에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사건에서 인터넷 홈페이지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신문에 보도한 경우는 당연히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지만, 인터넷 홈페이지에 처음 글을 올린 사람도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형법상의 출판물등에의한명예훼손은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한 경우 일반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하는 규정(§309)을 두고 있는데, 그러면 인터넷 홈페이지는 '기타 출판물'에 해당하는가?

筆者의 견해로는 '기타 출판물'이 기본적으로는 서적을 의미한다고 생각되며, 다만, 전자매체의 발달과 함께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전자출판은 비록 일반서적과 같은 물질적 형태(stoffliche Verköperung)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예외적으로 이에 해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주소만 알면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의 광역성을 비롯해 기존의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과는 달리 문서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는 점, 기타 전파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자출판이 '기타 출판물'에 해당한다는 것은 크게 異論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독일에서는 전자출판(electronische Press)을 "매체 제공에 관한 州間 계약"(Mediendienste-Staatsvertrag)에 포함시키면서 예외적으로 일반대중이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인터넷홈페이지를 이에 포함시켰다(제2조 제2항).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에 관한 규정이 그 어느 법에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또 '일반대중이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인터넷홈페이지'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도 논의된 바가 없다. 생각건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나 영리ㆍ비영리법인, 기존의 언론기관 등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는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성을 띤다고 할 수 있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지극히 사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정보의 내용으로 볼 때 개인적인 통신공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 출판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에 관하여는 앞으로 많은 논의의 여지를 남긴다.

(2) 전자게시판(BBS)이나 공개광장(Public Forum)은 통신이다?

1996년 PC통신 천리안에 개설된 주제토론실 "대선과 총선결과를 점친다"에 한 은행원이 청와대의 전직 대변인이자 공직선거입후보자인 P씨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자 검찰은 그 은행원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이하 선거법이라 함)위반과 명예훼손혐의로 기소하였다. 그런데 피해자가 명예훼손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을 원치 않아 공소기각 처리되었고, 선거법위반에 대해서는 1심법원이 "피고인이 P씨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비방하였다"고 인정하여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법원은 "통신문을 게재할 당시 피고인은 광명시에 거주하여 P씨의 출마지역인 부천시와 관계가 없었으므로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이 없었다"고 하여 무죄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원심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추가로 '피고인의 통신문게재가 쌍방향적인 컴퓨터통신의 특성상 다른 통신가입자의 반박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문구를 덧붙이며 무죄를 확정지었다.

3심의 재판과정을 모두 거치는 동안 위 사건의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통신의 법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문제가 된 선거법 제251조 후보자비방죄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게 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ㆍ방송ㆍ신문ㆍ통신ㆍ잡지ㆍ벽보ㆍ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 기타 ...를 비방한 자'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는바, 법원은 모두 목적범으로서의 목적이 있었느냐만 다루었을 뿐, 그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는 '연설ㆍ방송ㆍ신문ㆍ통신ㆍ잡지ㆍ벽보ㆍ선전문서 기타의 방법' 중 과연 컴퓨터통신이 어디에 속해서 본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느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다만 '통신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당연히 통신에 속한다고 본 것인가?

(3) 출판물과 통신의 차이

그렇다면, 사건 (1)(이하 '홈페이지사건'이라 한다)에서 문제가 된 인터넷홈페이지는 출판물이고, 사건 (2)(이하 '천리안사건'이라 한다)에서의 천리안에 개설된 주제토론실, 즉 공개광장은 단순히 통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출판물이라면 그 관리자는 그 내용이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편집자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통신이라면 그 운영자나 관리자는 일반수송자의 지위에 불과하므로 내용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통신의 자유이론에서 보자면 그 내용을 당사자가 아닌 타인은 볼 수 없어야 하는데, 천리안 주제토론실은 말 그대로 열린 광장으로서 이용고객이라면 누구나 들어가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통신이라기 보다는 출판물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대법원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쌍방향적인 컴퓨터통신의 특성상 다른 통신가입자의 반박에 대한 대응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공장소가 바로 인터넷통신상의 공개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견해와 의견이 전부 게재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헌법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내용은 일정한 법적 제재를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입법의 현실이다. 예컨대, 정보통신사업법 제53조는 공공의 안녕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온통신물을 금지하면서(제1항) 정보통신부장관이 그러한 통신에 대하여 그 취급을 거부ㆍ정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제3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입법현실을 감안하여 유추하면 천리안사건에서 검찰은 은행원이 게재한 통신문이 선거법 제25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목적을 위해 천리안에 게재한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한' 불온통신문(정보통신법시행령 제16조)이라고 판단해 기소했다는 결과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나라의 컴퓨터통신서비스 제공자들은 각기 이용약관에 일종의 이용자의 의무나 서비스이용제한 규정을 두어 부정사용행위나 타인의 명예훼손행위 등을 규제하는 등 자체관리를 하고 있다. 이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공공기관도 각기 기준을 갖고 관리자를 배치하여 자율규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면 가상공간을 제공하는 컴퓨터통신사업자(즉, 부가통신사업자) 내지 인터넷홈페이지 운영자(이하 통틀어 '가상공간운영자'라 한다)와 이용자, 관리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부가통신사업자라고 하는 私的 시스템(private system)에 부여된 의무는 무엇인가?

2. 가상공간운영자의 권한과 의무

(1) 가상공간운영자의 권한(대법원 1998. 2. 13. 선고 97다37210 판결)

가상공간에서 게시판을 운영하는 컴퓨터통신사업자의 권한에 관한 우리 나라 최초의 대법원판결은 대법원 1998. 2. 13. 선고 97다37210 판결이다. 이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기통신공사노동조합이 한국전기통신공사와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하이텔(운영자는 한국피씨통신주식회사이다)의 공개게시판에 대통령과 정부기관, 회사, 회사의 경영진과 직원 등이 노조와 조합원들의 정당한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있다며, 이들을 매도하고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수 차례 올리자 하이텔측이 이를 삭제한 후 문제의 공개게시판을 잠정 폐쇄하였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일정한 경우 통신게재물을 삭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 하이텔이용약관 제21조가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6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에 해당한다며, 하이텔의 운영자인 한국피씨통신주식회사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일관되게 "(하이텔 공개게시판에 게재된 문제의) 게시물은 대체로 타인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며 불법적인 노조활동을 선동하거나 교사하는 등 사회질서를 해하는 내용과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할 염려가 많은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표현을 담고 있으므로 피고가 이 사건 게시물을 삭제한 행위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위 약관 제21조에 근거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삭제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또 하이텔측이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시폐쇄조치한 데 대해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제3조에 따라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통신역무의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하이텔 공개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일관되게 '게시물'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바, 이는 앞에서 살펴 본 판례 중 홈페이지 사건에서는 '정보', 천리안사건에서는 '통신문'이라고 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법원이 이들 용어의 차이를 인정하고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편의상 그렇게 지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상적인 용어의 사용상 '정보'는 언론의 내용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전달되며, '통신문'은 '통신'으로서의 성격이, 그리고 '게시물'은 게시하는 사람(이용자)과 그 공간을 제공하는 자와의 상관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듯한 용어로 분석된다.

그러면 컴퓨터통신에 게재된 글이 관련법률과 약관에 규정되어 있는 '삭제사유'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게시물의 문구만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고 그 게시물이 게재될 당시의 상황, 게재자의 지위, 게시물을 게재하게 된 동기와 목적, 게시물의 표현방법과 내용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사건에 따라 구체적 타당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바, 만일 이용자가 공개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운영자와 관리자를 상대로 삭제를 요구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구체적 타당성이 인정되면 삭제해 주어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가? 아니면 삭제권한은 완전히 컴퓨터통신 운영자와 관리자의 자유재량사항이어서 이용자는 운영자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래는 바로 이와 관련된 사례이다.

(2) 컴퓨터통신사업자의 의무(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1999. 8. 18. 선고 99가소83281 판결)

하이텔의 공개게시판에 가수A를 비난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자 그의 매니저 B는 그 게시판을 운영ㆍ관리하고 있는 하이텔측에 명예훼손이라며 문제의 글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자, 이번에는 하이텔측의 그러한 거부가 부작위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하여 하이텔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은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는바, 원래 소액사건으로 청구되었기 때문에 주문만 있을 뿐 판결이유가 없어 구체적으로 왜 법원이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따라서 본격적인 판결 분석은 불가능하나, 위 (1)의 사건(이하 '노조사건'이라 한다)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교되는 점이 많아 법논리적으로 논의의 여지가 있다.

즉, 두 사건 모두 상대방을 비방하는 내용으로서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표현이 문제된 점은 똑 같으나,

① 노조사건은 이용자나 관계자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자가 직권으로 그 내용을 삭제하고 나아가 게시판을 잠정폐쇄조치까지 했음에 비하여, 위 (2)의 사건(이하 '매니저사건'이라 함)은 이용자와 관계자가 명예훼손이라며 삭제해 줄 것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삭제하지 않았다는 점,

② 노조사건에서는 정보통신사업법 제53조와 하이텔이용약관 제21조를 들어 컴퓨터통신사업자의 게시물 삭제에 관한 권한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반면, 매니저사건에서는 부작위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컴퓨터통신사업자에게 게시물 삭제의무는 없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는 점 등이 주목된다.

(3) 공개게시판의 관리책임

그러면 가상공간운영자는 공개게시판에 올라 온 글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가? 그 책임은 의무도 포함하는가? 하는 자율규제의 한계문제가 제기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보통신사업법 제53조는 컴퓨터통신사업자에게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온통신물의 취급을 거부ㆍ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부여하고 있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온통신을 억제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심의하고(동법 제53조의 2 제4항, 동법시행령 제16조의 3), 결과에 따라 이용자에 대한 경고, 해당정보의 삭제, 이용정지 및 이용해지 등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동법시행령 제16조의 4), 그 결과를 심의 또는 시정요구를 한 날로부터 20일내에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동법시행령 제16조의 5). 또한 가상공간운영자들은 비슷한 내용의 이용약관을 두어 나름대로 이용자의 의무와 게시물관리규정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여기서 노조사건과 메니저사건에 모두 관련된 하이텔의 이용약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하이텔 운영자(즉, 가상공간운영자)는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는 등 이용고객의 의무(제19조)를 다 하지 않는 이용자의 정보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삭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제16조 제1항), 운영자는 "이용고객으로부터 제기되는 의견이나 불만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즉시 처리하여야 한다"(제18조 제2항)고 운영자의 의무규정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들을 중심으로 위의 두 사건을 비교하여 보면, 노조사건에 대해서는 하이텔측이 노조의 게시물이 관계자들의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되어 스스로 삭제하고 문제의 게시판을 잠정폐쇄조치까지 했으며, 매니저사건은 이용고객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며 삭제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하다고 인정할 경우'에 해당되지 않아 삭제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된다. 文言上의 해석을 하자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알아서 삭제할 수 있지만, '정당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그 처리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즉시 처리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즉시 처리가 곤란한 경우에는 이용고객에게 그 사유와 처리일정을 통보하여야 한다(제18조 제2항 제2문). 즉 처리의무와 통보의무 두 가지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영자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든 '정당하다고 인정할 경우'든 간에 게재문의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용고객과 불만을 표시한 당사자에게 그 처리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통보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서 처리방법이란 이용자에 대한 경고, 해당정보의 삭제, 이용정지 및 이용해지 등 시정요구만이 아니라 구체적 타당성의 심의결과 '이유없다'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그 결과를 통지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관련자가 추후에 자신의 권리실현을 위해 또 다른 법적 절차를 취할 수 있는 근거와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운영자, 즉 컴퓨터통신사업자가 수 없이 많이 올라오는 공개게시판의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관리하는 곳에서 불만과 처리요청이 나온 이상 이에 대한 처리 여부는 관계자에게 즉시 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매니저사건에서 게시물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매니저에게 하이텔측이 과연 불만 처리 결과를 즉시 알려주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명예훼손)의 인정 여부가 가려질 수 있을 것이나, 前述한 바와 같이 판결이유가 전혀 없어 이 부분은 확인할 수 없으므로 더 이상의 詳論은 피한다.

다만, 우리의 관련 법령으로 미루어 보건대, 가상공간운영자가 공공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문제되고 있음을 알았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에 따른 삭제 등의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은 스스로 작성한 이용약관의 규정에 따라 분명하다 할 것이다.

V. 結論-법적 대응의 한계와 代案

일부학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언론ㆍ정보분야에서의 기술발전과 그에 따른 상황변화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예견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 올 변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고 미래의 행태를 규율할 법을 만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미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어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현실화와 이로 인한 법적 분쟁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의 미비 또는 학설과 판례의 부족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단지 인터넷통신의 쌍방향성과 공개성, 익명성, 지속성 등에서 오는 권리 충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점점 확대되고 있는 인터넷방송과 신문에 대한 개념정립과 법률적용의 문제, 자율규제의 한계문제, 그에 따른 자기제재(self-sanction)의 위헌성 여부 문제 등이 헌법 제21조상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더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표현의 자유의 법리 재정립과 그에 따른 문제점 해결을 위해서는 형법과 정보통신기본법, 정보통신사업법,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정보통신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성폭력행위자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에 산재해 있는 관련법규정을 하나로 통일해 기본법제를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할 뿐만 아니라, 건전한 정보문화 형성과 정보화의 역기능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대처방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우리의 헌법규정과 헌법현실과의 상관관계에서 풀어야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신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될 수 있을까를 심사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고가 문제 제기와 방향 제시를 위한 하나의 試論이 되기를 희망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