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기획
“문화는 교역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입니다”
문화협약, 2005년 9월 체결 예정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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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8일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스크린쿼터 축소 방안을 추진 중인 정부 여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정부 여당이 현행 146일로 되어있는 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를 86~90일 정도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정부가 쿼터 축소를 추진하는 이유는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미국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화인들은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미투자협정과 같은 양자간 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교육·문화 등 서비스 시장의 개방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에 맞서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고 문화 다양성을 옹호하는 국제 협약이 추진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2005년 9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될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협약’(이하 문화협약)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화 다양성에 대한 위협

2004년 7월 15일 유네스코가 발표한 문화협약초안을 보면, “문화상품과 서비스는 경제적 속성과 문화적 속성을 함께 갖고 있으며, 정체성과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통상의 상품이나 소비재로 취급 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촉진된 세계화의 과정이 전례없이 문화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증진시킨 반면, 동시에 문화 다양성에 대한 위협이 되면서 문화적 표현을 피폐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이 협약은 전 세계적 문화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는 미국 문화에 대한 견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문화상품과 서비스를 둘러싼 무역 갈등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무역자유화가 문화적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것은 다자간 투자협정(MAI)이 계기가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95년부터 추진한 MAI의 협정 초안이 1998년 봄 유출되면서, 전 세계 민중들의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며 MAI 탈퇴 선언을 하면서 MAI는 좌초되었다. 이어 WTO 서비스 협정(GATS) 협상 과정에서도 서비스 시장 개방과 문화 다양성을 둘러싼 문제가 쟁점이 되어 왔다.

하지만, ‘무역 협상’이라는 틀에서 ‘문화적 예외’라는 방식으로 논의가 되는 것의 한계가 지적되었고, 문화 다양성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 협약, 즉 문화협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1998년 창설된 세계문화장관회의(INCP)와 문화다양성국제네트워크 (INCD), 국제문화전문가단체회의(CCD) 등 NGO 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문화 협약은 문화 다양성을 보호하고 촉진하는데 대한 국가의 권리를 재확인하며, 가맹국간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관련된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한층 강화된 국제적 협력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준다.

문화협약, 문화 다양성 보호를 위한 국가의 권리 재확인

이렇게 제기된 문화 협약의 체결은 유네스코가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유네스코가 문화를 담당하는 UN 산하 국제기구였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2001년 10월, 파리에서 개최된 3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다양성 선언서’를 채택하기도 하였으며, 2003년에 개최된 집행이사회와 총회에서 2005년 10월까지 문화협약 초안을 만들 것을 결정하였다. 2004년 7월 15일 유네스코가 발표한 협약 초안은 2005년 유네스코 총회 전까지 수차례의 정부간 회의를 거쳐 논의될 예정이다.

한편, 2004년 6월 1~4일, 서울에서는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서울 총회가 개최되었다. ‘기로에 선 문화, 위협받는 문화정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회의에는 세계 57여 개국 400여명의 문화 전문가들이 참여하였으며, 문화협약 체결을 위한 NGO의 역할과 유네스코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CCD는 정부가 문화정책을 수립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협약도 하지 말 것과 WTO를 비롯한 통상 협상 시 영화, 음반, 미디어 부문을 비롯한 문화 영역의 사안을 상정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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