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기획
문화협약, 공허한 선언문에 그치려나
문화협약의 주요 쟁점

오병일  
조회수: 2068 / 추천: 43
문화협약은 ‘문화상품과 서비스는 통상의 상품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각 국의 독자적인 문화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지고 있는 협정이다. 그렇다면, 문화상품 및 서비스와 관련된 WTO 서비스협정(GATS)보다 우위에 있는 것인가? 반대로 WTO 서비스 협상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그저 공허한 선언 문구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다른 협약과의 관계 설정이 가장 큰 쟁점

문화협약 논의 과정에서 기존 협약의 관계는 확실히 가장 큰 쟁점이다. 2004년 7월 15일 발표된 문화 협약 초안을 보면, 유일하게 ‘제19조 - 다른 협약과의 관계’만이 두 개의 옵션을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9조 - 다른 협약과의 관계

옵션 A
1. 본 협약의 어떤 것도 현행의 국제 협약에 따른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모든 기존 국제협약 하에서 당사국들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2. 이 협약의 조항은 기존의 국제협약에 나타난 권리와 의무의 이행이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존 협약에서 파생되는 당사국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옵션 B
본 협약의 어떤 조항도 기존의 국제 협약에 따른 당사국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법무법인 한결의 박경신 변호사에 따르면, 옵션 A는 일반적으로는 문화협정과 기존 협정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되 문화다양성이 심대하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 있어서는 문화협정이 다른 협정에 우선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옵션 B는 문화협정과 기존 협정에 있어서 기존 협정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박경신 변호사는 옵션 B라 할지라도 WTO 협정을 포함한 기존 협정이 문화협정보다 반드시 우선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기존 WTO 협정 혹은 향후 체결될 협정들이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석 혹은 체결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옵션 B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은 옵션 A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입장 유보, 혹은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화협약의 필요성은 기본적으로 인정하나, 미국이나 일본이 동 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협약 채택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회원국들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협약들을 동등한 지위로 인정하는 제3의 대안이 채택될 수도 있다.

옵션 B, 문화 협약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기존 WTO 질서에 대한 대응으로 출발한 문화 협약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은 언뜻 보면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최영재 사무차장은 “문화를 WTO에서 다루도록 하지 말자는 것이 목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며 “어느 나라나 경제부처의 파워가 가장 세고, 그래서 프랑스같이 전통적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라들도 문화부처와의 긴장을 갖고 있다. 또한 추진 그룹 내에서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국내외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옵션 A를 지지하고 있으며, 옵션 B는 이 협약의 체결을 무의미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보적인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운동 단체인 ‘정보사회 커뮤니케이션권리 캠페인(CRIS)’은 지난 11월 10일 발표한 의견서에서 옵션 B 및 옵션 A의 1절을 삭제하고, 19조가 옵션 A의 2절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CRIS는 협약 초안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편향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7조 2절 (b)는 “특히 저작권 침해에 대항하는 방안의 개발 또는 강화를 통한 현행의 국제 협약에 의해 지적재산권은 완전하게 존중되고 시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CRIS는 지적재산권 보호는 반드시 문화적 공공성에 대한 보호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반영하는 형태로 수정하거나 혹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언급을 모두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반적으로 큰 쟁점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최영재씨에 따르면, 문화 협약 제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NGO 그룹도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문화 협약이 문화 다양성보다는 크고 작은 문화 시장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도 미국의 문화 독점에 대항하여 국가적, 지역적 차원의 문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단지 지역의 문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영상미디어센터의 조동원 정책연구실장은, “문화산업의 노동자들, 공공적 문화 생산자들, 각 지역 수준의 자치문화들, 공동체 미디어 운동 등은 돈벌이 이전의 인권 차원의 ‘문화 다양성’ 개념에 있어서 중심에 있어야 하지만 현실 운동에서는 주변화 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왕의 다양하다고 했던 문화(생산, 문화정책, 그리고 자율적 문화활동)가 얼마나 다양한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