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과학에세이
스타 과학자 만들기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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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관심이나 말 한마디가 기술적 판단이나 객관적 인식을 제압하고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5년 여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LA에서 연출한 ‘깜짝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도 행융합 개발연구를 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쳤고, 그해 정기국회에서는 일명 ‘차세대 초전도 행융합연구개발 사업(KSTAR)’에 10년간 2천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조차도 행융합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했다가 사실상 포기한 뒤였고, 사업계획에 대한 타당성 검토조차 충실하지 않아, 과학기술자들의 반대 여론도 컸지만, 결국은 대통령 뜻대로 되었다. 결과는 예측했던 대로 성과없이 끝났고, 책임지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복제소로 이름을 떨친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대한 최근 논란도 귀추가 주목된다. 과학기술부의 ‘최고 과학자 연구지원사업’은 사실상 황 교수를 위해 만들어진 사업이라는데, 2005년 한해에만 황 교수의 연구실 건립 100억원 등 무려 2백65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지원대상에 대한 공개적인 선정과정도 없고 더구나 윤리적인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는 황 교수의 연구분야에만 엄청난 연구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놓고 정치권 일각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판이 크게 일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기술적인 검증이나 논리적인 이유보다는 언론플레이에 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관심에 크게 힘입고 있으니까.

작년 10월에 과학기술부총리로 승진한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스타 과학자에 대한 지원이다. 그는 올림픽 대회 금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체육연금처럼 과학기술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과학기술자를 대상으로 ‘과학기술공로연금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스타 과학자를 만들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는 일은 대통령과 정부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대덕연구단지의 한 연구소에서는 기술료 수입 등을 제외하고 순수 연봉만으로 1억원이 넘는 첫 사례가 나왔다고 최근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낸 연구자를 선발하여 연봉의 5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더 지급해서 1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과학자가 두 명 탄생했다. 한 언론은 ‘앞으로 여러 연구소에서 억대 연봉 과학자가 잇따라 탄생할 예정이어서 이공계 우수인력들의 출연연구기관 유입 현상을 직감케 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대체 왜들 이러느냐. 태릉선수촌을 본떠 과학선수촌이라도 세워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기세들이구나. 그러면 절로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진다고? 우수한 인재 한 사람이 수백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아서라, 이공계 기피는 날로 심해지고 연구현장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데다가 우리 같은 ‘보통’ 연구원들은 언제 쫓겨날지 불안하기만 하단다.

문득, 이몽룡이 쓴 싯귀 하나 여기서 날 후려치는구나. 타령 장단에 맞추어,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그래도 꿋꿋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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