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미디어의난
2005년 미디어운동, 위기 혹은 기회

조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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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을 즈음 쓰는 글에서 필자는 유독 올해는 미디어운동에 있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매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벌어질 중요한 일들이 예상되기 때문인데, 특히 역사적 흐름을 볼 때 최근 몇 년간이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언론운동과 영화운동 등은 전문 활동 조직 중심의 1970-80년대를 지나, 방송이나 영화 그리고 뉴미디어 영역의 산업적 발전과 함께 언론수용자운동, 언론노동운동, 독립영화운동, 정보통신운동 등으로 분화 발전해오다가,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제도의 변화와 맞물려 미디어 공공영역들의 확장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공공적 미디어 공간과 자원의 확보는 1990년대 후반 DJ정부에서의 정부 기구 내 변화와 법제도 정비를 바꿔낸 성과이며 이것이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새로운 정치와 문화 환경, 그리고 급변하는 미디어 구조 속에서 여러 미디어 활동 사례들이 많아지고 미디어 영역의 민주화를 이뤄가고 있지만 아직 미디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과 실천 계획들을 갖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더군다나 디지털 환경에 맞도록 법제도적 정비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점이 기존의 공공적 성과들조차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위기가 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을 더 많은 더 높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2005년은 지금까지의 성과들을 평가하고 이를 발판으로 도약할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공적 미디어 영역의 확장: 지역 미디어센터, 퍼블릭 액세스

2005년말까지 6-8개의 지역 미디어센터가 설립·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광화문 네거리의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를 시작으로, 독립적 운영의 난항을 겪고 있는 서울 강서구의 강서영상미디어센터를 포함하여 방송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에 따라 개관을 앞둔 전주시민미디어센터가 있다. 문화관광부는 추가로 올해 2개 지역에 미디어센터 설립 지원을 추진하고 있고 방송문화진흥회의 (지역계열사) MBC시청자미디어센터까지 놓고 본다면, 곳곳에 미디어센터가 설립되고 운영되면서 그야말로 지역 미디어운동의 전국적 인프라가 구축될 전망이다. 이를 어떻게 지역 사회운동과 연계하여 진보적인 공공 미디어 공간으로 활성화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또한 각 지역 미디어센터를 네트워크하여 참여적 미디어 환경을 만드는 활동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센터가 없는 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이 이웃의 이야기들과 지역 사회의 이슈들을 보고 듣고 보여줄 수 있는 퍼블릭 액세스 구조를 만드는 것 역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KBS 1TV의 <열린채널>도 그렇고 각 지역의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서 우리가 직접 만든 영상 프로그램이 방영될 수 있는 이 퍼블릭 액세스 구조는 지역의 공공 인프라와 주민들을 위한 교육 활동에 대한 지원이 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한계가 많다. 그래서 퍼블릭 액세스의 실질적 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 구조(미디액트에서 방송위원회에 제안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액세스 TV’ 프로젝트 등)와 지역 활동가들의 분주한 조직화 노력이 올해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퍼블릭 액세스 구조는 주류 방송의 일부 시간대를 개방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를 넘어 퍼블릭 액세스 구조는 일부 시간대의 개방과 실질적인 활성화와 함께 참여적 방송 채널의 확보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올해, ‘독립채널’로 고쳐 불러야 할 ‘외주편성전문채널’ 설립 문제를 둘러싼 충돌 속에서, 미디어활동가들은 진정한 참여와 다양성을 위한 채널의 설치 그리고 독립제작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최초의 실험 : 지역 공동체 라디오

이러한 참여적 방송 채널은 우선 라디오 방송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2005년에 주목되는 한국 미디어운동의 전진은 무엇보다도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될 것이다. 3월부터 전국 8개 지역(서울의 관악과 마포, 경기 분당, 충남 공주, 경북 영주, 대구 성서, 광주 북구, 전남 나주)에서 공식적으로는 1w 출력을 가지고 반경 2-3km 지역의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된다. 19세기 말의 무선 전신으로 가능해진 라디오 기술의 발명과 1920년에 최초의 상업방송국이 미국에서 방송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나라들에서 문화정치적 차원에서의 라디오의 제3의 발명이 있어왔고, 이제 한국에서도 라디오는 기존에 우리가 알았던 것과 다른 미디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류 언론에서는 이를 ‘지역 밀착형 동네방송’이라며 (자기 구역을 침범하지 않을 듯하니) 비교적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미디어운동 진영에서는 올해의 지역 공동체 라디오 시범방송이 전체 방송 미디어 구조의 혁신을 가져올 뇌관이 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 실험은 한편으로 공영방송을 강화하고 사영방송을 규제하는 방송 개혁과 함께 제3의 영역(tier)으로서의 ‘공동체방송’(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대안 미디어의 제도적 보장)을 제기할 수 있는 현실 논리가 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점점 디지털 미디어의 수렴이 자본과 시장의 수렴으로만 전면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공적 개념의 확대를 통한 미디어의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구체적인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하, 디지털 방송 전환의 쟁점, 독립·대안 미디어 활동, 국제 연대, 그리고 민중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운동의 종합은 다음 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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