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여기는
블로그는 사적 영역인가?

이강룡  
조회수: 5834 / 추천: 50
지난 12월 <조선일보>의 문갑식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노동과 중동’ http://gsmoon.chosun.com)에 올린 글이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신문 시장이 망하게 된 이유’ 라는 글에 KBS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표현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문갑식 기자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소나 개나 ‘조중동’을 씹어대고 있는데 이 ‘소나 개’ 라는 표현은 ‘인생의 쓴 맛 한 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하는 국영방송의 한 심야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것’이라고 적고 있다. 다 알다시피 그 프로그램은 최근 ‘조중동’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시사투나잇’ 이며 그 여성 아나운서가 누구인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문갑식 씨는 자신의 글이 이슈가 되자 이를 해명하며, 전체 맥락과는 상관없이 여성 아나운서 비하발언에만 초점을 맞춰 기사화한 <프레시안> 등의 매체를 비난했는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었다. 문제가 더 커지자 문갑식 씨가 KBS 아나운서실을 방문해 사과하고 블로그에 다시 사과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이 문제는 법정까지 가게 됐다.

이 사건 직후 블로그 사용자들의 많은 의견이 있었는데 이 중 두 가지를 소개한다. 블로거 김도연님(http://www.mithrandir.co.kr)은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가 올린 글의 가장 무서운 점’ 이라는 글을 통해 그가 갖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을 지적하고 있다.

“‘진보’ 언론과 ‘진보’ 세력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편견, 나이가 어린 사람에 대한 편견. 편견만으로 끝났다면 모르겠지만, 그 근원에는 자신과 자신이 몸담은 언론에 대한 우월 의식이 깔려있다. 인생의 후배는 깔보아도 되고 자신과 ‘같은 급’의 사람들하고는 적당히 술 마시면서 풀면 된다고 생각하는 안이함. 자신만이 옳고 다른 이들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자신이야 말로 탄압받는 약자이며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는 현실 의식의 부재와 자기 정당화.
이번 사태는 진보나 보수의 문제 이전에 이성과 양심의 문제, 또한 사실 왜곡에 대한 문제이고, 그리고 그 이전에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기자로서, 성인으로서, 좀 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가 된 그의 글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소위 ‘사과문’을 읽을 때마다, 환멸과 분노가 동시에 치민다.”


블로거 아거님(http://gatorlog.com)도 ‘오만과 편견’이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두고두고 블로거들 사이에서 회자될 이번 문갑식 사태의 핵심은 ‘공인의 개념’이니 ‘블로그라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니 하는 것들보다는 바로 김도연님이 지적한 문갑식 그리고 넓게는 그가 속한 조직체의 오만과 편견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명 사과문이라고 올라온 글이 처음 문제가 되었던 그 글보다 우리를 더욱 슬프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서 회장과 KBS 아나운서 실장께는 추후 제가 술 한 잔 권해드리려 합니다’라는 그런 정신 나간 발언을 자칭 ‘1등 신문’이라는 매체의 중진 기자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고 그대로 방치해 둔다는 점이다.”

문갑식 씨의 해명 글에는 하루에 다섯 명 정도밖에 방문하지 않는 ‘사적 영역’ 이기에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는 부분이 있다. 과연 블로그는 사적 영역일까? 개인의 목소리가 담기는 곳임은 분명하지만 사적 영역으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블로그에 어떤 자료를 올린다는 것은 웹을 통해 모든 이에게 공개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다섯 명이 방문하든 5만 명이 방문하든 본질적으로는 같다. 블로거 아거님의 말처럼, 하루에 다섯 명 정도만 방문하던 이 블로그는 졸지에 댓글만 70개 이상이 달린 ‘인기’ 블로그가 됐다. 어제는 사적 영역이었다가 갑자기 공적 영역이 된 것인가? 아니다. 이미 블로그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공적 영역의 성격이 담겨진 공간이며 블로그에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블로그를 보다 보면 간혹 사생활 침해를 당했다는 글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은 본인이 예전에 블로그에 공개했던 정보로 인한 피해인 경우가 많다. 블로그에 전화번호를 공개해놓고 모르는 누군가가 전화를 걸었을 때 ‘당신, 왜 함부로 전화하는 거요’ 라고 화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본인이 정보의 노출 여부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 문제로 보기엔 어렵다. 전자태그(RFID) 처럼 본인도 모르게 정보가 새나가는 것의 문제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사적 영역이 아니다. 내가 올린 글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 내가 쓴 글은 내가 모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블로그 사용자들은 ‘문갑식 사태’를 통해 또 한 번 경험한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