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영화
씁쓸한 청춘, 절망도 없다
<마이 제너레이션> (노동석, 2004)

함주리  
조회수: 3197 / 추천: 62
씁쓸한 청춘, 절망도 없다. <마이 제너레이션>(2004)은 흑백 화면 가득 그렇게 청춘을 그리고 있다. 아름다운 청춘도, 꿈꾸는 희망에 찬 외침도 이 영화에는 없다. 그저 자본에, 그리고 신용 카드에 침잠하는 그들만 있을 뿐이다. 노동석 감독의 첫 디지털 장편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은, 그래서 우울하다, 군더더기 없이 우리 자신을 투영하기에.

신용카드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 병석은 결혼식 비디오 촬영을 하며 고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의 여자 친구 재경은 우울해 보이는 인상이라는 이유로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하루 만에 해고당한다. 그래도 병석과 재경은 자신들 몫의 생활을 살아가지만, 아끼는 카메라를 팔아야 하고, 카드깡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 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은 폭발할 것 같은 청춘 영화는 아니다. 유연한 이야기 구조 속에 절정과 결말로 가지도 않는다. 영화는 담담하게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다. 높낮이가 있을 뿐, 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뚝뚝 끊어지는 하루가 모여 나의 생활이 삶이 되듯 재경과 병석의 모습이 에피소드로 모여 한 줄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마이 제너레이션>은 우울하며, 불편하다. 되새김질 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 제너레이션>을 우울하다고, 불편하다고 외면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일상을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시선을 붙잡는 영화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스며드는 울림이 있다. 영화는 우리 시대를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로, 그리고 소수일 수밖에 없는 근사한 모델로 채우지 않는다.

감독은 답답해 한숨만 나오고 구질구질하기까지 한 인물들에게 드라마틱한 반전도 해피엔드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대 담론을 나열하며 자본에 매몰되어 가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이 사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건조하게 우리 세대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유 경쟁의 환상 속에 갇혀, ‘신용’으로 무엇이든지 소비할 수 있는 우리 세대에, 나의 세대에 말이다.

그래서 <마이 제너레이션>의 청춘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감정이입도 할 수 없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청춘이기에 절망조차 할 수 없는 그 청춘에 동정도 할 수 없다. 흑백화면과 디지털화면 속 인물들에게 계산된 감동이나 감정이입은 거칠게 내몰린다. 그러나 배나무 아래에서 배 떨어지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자조스러운 유머를 발견하고 또 다른 나를 <마이 제너레이션> 속에서 목격한다. 우리 자신의 일상을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재경과 병석을 동정할 수 없다. 영화가 끝나도 내 일상이 지속되듯 재경과 병석의 일상도 지속될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내 자신이 우리 자신이 과장되지 않은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 한편이 우리 세대 앞에 마주 서있다.

텔레비전에서 떠드는 청년 실업, 피라미드 사기, 카드깡, 신용 불량자라는 말이 더 이상 텔레비전 속의 사건, 나와 동떨어진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이젠 나와 우리의 생활 속에 있는 이야기다. 오히려 말끔한 차림으로 씩씩하게 출근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사건이고 낯선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영화는 총천연색의 화려함으로 우리 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환상으로만 그려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자본과 어울려 신용 카드를 꺼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마이 제너레이션>은 환영 뒤 날아오는 청구서를 건넨다. 씁쓸하게 바라보는 청구서, 부인할 수 없는 청구서를 받아 본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