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0호 Cyber
소리바다 항소심 판결문 뜯어먹기

양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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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소리바다’(www.soribada.com) 운영자에 대한 민·형사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안그래도 저작권 문제로 시끌시끌한 판에 소리바다 판결이 나오자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런데 형사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부)은 음반사의 복제권, 배포권 침해를 방조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 반면, 서울고법 민사부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대한 소리바다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여, 당사자인 소리바다측은 물론 인터넷 업계 전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용자를 연결만 해주는 P2P 서비스 소리바다가 저작권 침해를 방조했다고 인정하는 판례가 굳어질 경우 온라인서비스업체가 직접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웹스토리지 서비스 등은 당연히 걸려들어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죄인데 손해배상은 하라?

두 판결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이유는 뭘까? 두 판결은 이용자의 저작권 침해행위를 선별하여 침해방지조치를 취할 의무가 소리바다 운영자에게 있는가에 관해 상반된 판단을 내놓았다. 민사재판부는 그런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반면 형사재판부는 부정하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저작권 침해행위를 일일이 점검할 의무는 없고 저작권자로부터 구체적인 침해 내용을 통지받아 알게 됐을 때만 이를 방지할 의무가 있다”며 양씨 형제가 “피해자로부터 구체적인 저작권 침해사실을 통보받았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소리바다 이용자들의 복제권 침해를 방조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사판결문에는 인용되지 않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 제한을 규정한 저작권법 제77조를 형사판결에서는 인용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과실에 의한 책임까지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고의책임만 인정하는 형사책임과는 구별되지만, 두 판결이 견해를 달리한 부분은 고의냐 과실이냐가 아니라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어떠한 법적 의무가 있는가라는 점이어서 상고심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리바다측은 형사판결에 힘입어 민사판결에 대한 상소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대법원의 명예훼손사건에 대한 기존 판례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게재된 것을 방치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까? 대법원에 따르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명예훼손 피해자로부터 문제된 글의 삭제 또는 시정조치 요구를 받아 이를 삭제할 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이를 방치한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한다(2002다72194). 명예라는 인격적 가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명예훼손적 표현이 게시판에 올라오기만 하면 책임을 진다고 해서야 영업활동 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저작권침해사건에 관하여 유사한 하급심 판결도 있다. 이른바 칵테일 사건인데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업로드와 다운로드가 자유로운 중앙대학교 홈페이지 자료실에 멀티미디어 제작프로그램인 칵테일98이 94년 8월경 업로드되었다. 11월 20일 칵테일주식회사가 항의하자 학교측은 자료실 게시판을 폐쇄했으나 그 때까지 조회수는 400여건에 이르렀다. 칵테일측이 학교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서울지방법원은 학교법인측이 불법행위를 사전에 일일이 통제할 수 있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자료등록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서 게시물의 내용을 미리 검토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학교법인측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였다.

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소리바다의 경우를 검토해 보자. 소리바다 서버에는 MP3파일이 직접 저장되지 않고 이용자들의 아이디 정보만을 관리하기 때문에 운영자가 개별 이용자들의 구체적인 불법 MP3파일 공유 및 다운로드 행위를 인식하기 어렵다. 음악저작권협회로부터 구체적인 침해사실에 대한 통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따라서 소리바다 프로그램 이용시 소리바다 서버에의 접속이 필수적이라거나 P2P 프로그램에 의하여 저작권침해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이유로 소리바다 운영자에게 이용자 행위를 개별적으로 모니터링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

한편 판례들을 보면 감시가 기술적으로 용이하기만 하면 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기술적 감시가 가능하다는 것과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정보를 감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는가의 문제는 별개이다. 후자는 통신의 비밀이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다른 기본권과의 이익형량이 필요한 문제이다. 저작권은 재산적 이익이고 금전보상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전에 침해를 방지해야 할 요청이 통신의 비밀이나 표현의 자유만큼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작권과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가 충돌할 때 이익형량의 저울은 후자로 기울어야 하지 않을까.

소리바다 이용자 저작권 침해일까?

결론을 달리하는 소리바다 민형사판결에서 공통된 점은 소리바다 이용자들의 다운로드 행위를 음반사의 복제권 침해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소리바다측은 다운로드가 MP3파일의 복제에 해당하지만 저작권법 제27조에 따라 사적 이용목적의 복제로서 허용되는 것이므로 복제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하려면 그 복제행위가 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②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에서 이용하는 경우이어야 한다. 법원은 ①은 인정했지만, 이용자가 다운로드할 때 다운로드폴더와 공유폴더가 동일하므로 다운로드 행위에 다른 이용자와 파일을 공유할 의사가 인정되므로 개인적 이용이 아니고, 소리바다 이용자들이 다수집단이며 그들간에 인적 결합이 존재하지 않아 ‘한정된 범위에서의 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②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운로드폴더와 공유폴더를 같게 설정한 것은 소리바다 프로그램의 기본설정에 따른 것이지 공유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법원은 ‘다운로드 행위’와 ‘다운로드 후 방치행위’를 공유의사에 지배된 하나의 행위로 파악하고 있는데, 두 행위는 의사를 달리하는 별개의 행위라고 봐야 맞다. 다운로드 후 방치행위는 설경 공유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다운로드‘ 자체는 자신이 MP3파일을 개인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일 뿐이지 ’다운받아서 공유해야지‘라는 적극적 의사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다운로드 받은 후 파일의 위치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극히 ’의식적인‘ 소수의 이용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소리바다 판결, 인터넷 문화 바꿀 수도 있어

인터넷 상에서 복제와 전송이 자유로와져서 저작권 침해의 가능성이 기술적으로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작권보호를 위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와 같은 제3자에게 모니터링 의무를 널리 인정하는 것이 신중해야 한다. 저작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와 정보교환의 자유가 인터넷을 성장시켰던 초석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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