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0호 영화
퍼즐 같은 영화, <21그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03

함주리  
조회수: 3436 / 추천: 56
<영화 <21그램>은 퍼즐같다. 흩어진 조각 하나하나는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지만, 그것들이 모여면 전체 그림이 드러난다. 이냐리투 감독은 흩어진 그림들이 순서 없이 나열되어 있듯 신들을 배치했다. 이 영화는 전작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주목 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첫 장면 후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각나고 분절된 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는 알 수 없고 이어지는 장면 속 인물들이 다른 장면으로 반복된다. 게다가 시간도 뒤섞여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이 장면이 다음 장면 후에 일어난 건지, 아니면 더 과거인지, 중반이 지날 때까지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 그러나 유기적 관계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장면들과 인물들이, 그 분절된 신들이 점점 쌓이면서, 이야기와 관계가 점점 윤곽을 찾아가고 지금까지 봐왔던 장면들이 점점 퍼즐을 맞추듯 내러티브가 구성된다. 그림 맞추기에서 오는 관객의 혼란스러움은 긴장감으로 변하고 마지막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면 죽는 수학 교수 폴, 두 딸과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크리스티나, 어릴 때부터 교도소를 드나들었었으며 신앙에 집착하는 잭, 각기 다른 공간에 있던 이 세 명의 인물들이 교통사고를 매개로 만나게 된다. 잭은 크리스티나 가족을 차로 치고, 폴은 크리스티나 남편의 심장을 이식 받는다. 그리고 이식을 받은 폴은 심장기증자를 찾아, 크리스티나와의 만남을 만들어 간다.

<21그램>의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그리고 진부하다. 또한 반복되는 ‘삶은 계속 된다’의 대사는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냐리투 감독은 이것을 순차적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고 조각난 장면들을 연결 지워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이러한 편집은 각기 흩어진 인물들에 집중하게 한다. 세 인물-크리스티나, 잭, 폴-은 영화를 끌어가는 중심인물들로 플롯의 동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들을 차례대로 연결지으며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만들어 갔다면, 인물의 집중도는 약해졌을 것이다. 주요 인물과 부수적 인물로 나뉘었을 것이고, 관객의 동정이나 미움을 받는 인물로 나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 순서가 어긋난 장면 속에 각 인물이 중심이 되며, 관객은 영화 속 인물에 상투적인 감정적 몰입보다 그들의 비극적 상황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인물들과 이야기를 풀어 놓는 방식이 <21그램>의 낡은 듯한 주제를 새롭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냐리투 감독의 <21그램>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는 영화는 아니다. 대개의 경우처럼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 가며 이야기를 순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영화도 아니다. 마지막에 ‘21그램’이 사람이 죽을 때 줄어드는 무게라는, 죽음을 목전에 둔 폴의 내레이션이 흐를 때쯤 돼서, 관객은 영화 제목의 의미와 주제를, 그리고 전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게 난해하거나 모호하지 않다. 복잡한 퍼즐 속에 인물들이 살아있고, 그들과 함께 퍼즐 맞추기가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으로 끝까지 관객을 잡아두게 하는 매력이 영화에 있다. 그 매력 속에 빠져 어느덧 영혼의 무게와 여전히 지속되는 삶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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