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1호 장애없는
우리도 영화를 보고 싶다
영화진흥법을 개정하라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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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한국농아인협회 회원 150여명이 파고다공원 일대에서 호각을 불며 시위를 한 바 있다. 시위에 참여한 청각장애인들은 말로써 외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요구를 호각소리를 통하여 세상에 호소를 하였다. 이들이 길거리까지 나와 가며 호소했던 이유는 지난 정기국회에서 처리가 되지 못하고 묶여있는 영화진흥법, 도로교통법, 선거관련법, 방송법 등 관련법률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각장애인의 실업율은 20%에 달하며, 취업분야도 농업(25.6%)과 단순노무직(23.4%)에 편중되어 있다. 더욱이 취업한 재가(在家) 청각장애인의 월평균 소득도 67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보건복지부, 2000) 이처럼 청각장애인의 경우 생계문제도 심각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 또한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농아인협회 조사에 의하면 사회활동을 하는데 차별을 받는다고 응답한 청각장애인이 80%를 넘어서고 있다. 이 조사에서 보듯이 청각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의 문제에서부터 정보·통신접근, 방송접근, 교육접근, 문화접근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농아인협회는 법률개정운동을 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발의된 영화진흥법개정안이다. 발의된 개정안은 “영화상영관 경영자로 하여금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경우에 대통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한글 자막을 함께 상영하도록(안 제28조 제2항 신설)”하고 있으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영화 관람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영화진흥금고에서 지원 받을 수 있도록(안 제 35조 제6호 신설)”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99년 영화 ‘쉬리‘를 시작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한국영화는 지난 해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힘입어 단일 영화관객 1천만 시대를 돌파했다. 또한 지난해 1/4분기 한국영화 점유율 72.8%라는 유례없는 기록까지 세웠다(영화진흥위원회, 2004). 지난해 연말 한국영화 시장이 잠시 주춤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국영화는 점유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영화의 음향이나 대사를 듣지 못하여 영화를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영화관람이 불가능한 문제는 청각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1,200여개의 스크린 가운데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 많지 않아 이동장애인들은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다. 또한 영화의 화면내용을 알 수 없어 영화를 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 영화관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자폐·정신지체장애인들, 이들에게 보편적인 문화시설인 영화관은 한낱 도시의 구색을 맞추는 건물에 불과할 뿐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영화진흥법에서도 ‘영화산업 발전을 통한 국민의 문화생활 향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400만명의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경우는 발전하는 영화시장의 혜택은커녕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문화접근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무시당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영화관람 서비스가 잘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이동장애인들의 영화관 접근이나 휠체어좌석배치는 물론이고 청각이나 시각장애인들의 영화감상을 위한 배려도 한다. 청각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하여 자국영화를 개방자막으로 상영하거나, 청각장애인 관객만이 자막을 볼 수 있도록 폐쇄자막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폐쇄자막형태의 서비스로는 반투명 패널을 이용한 리어윈도캠셔닝시스템(Rear Window Captioning System)과 휴대 가능한 퍼스널캡셔닝글래스(Personal Captioning Glass)등이 있다. 또한 돌비디지털자막(Dolby Digital Subtitling)에서 플레이어가 영상, 자막, 오디오를 동시에 재생하여 상영하는 시네마자막시스템(Cinema Subtitling System)도 있다. 이와 함께 난청인이나 노인 등 보청기 사용자들이 영화의 음향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FM보청기기 등 보청장치도 지원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영화화면을 성우가 더빙을 한 후 별도의 수신채널을 통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한 디브이에스(Descriptive Video Service) 상영도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청각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한 Rear Window Captioning System과 DVS Theatrical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플로리다, 조지아 등 22개 주(州)이며, 4천 5백만에 달하는 미국 전역의 시·청각장애인들이 개봉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현재 시·청각장애인 이외에도 6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국내에서도 장애인들의 영화관람 문제해결을 위하여 농아인협회가 매년 장애인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장애인영화제를 통하여 한글자막 도입, 시각장애인화면해설 기법을 국내 극장에도 도입하고 있으며, FM복합보청장치를 개발하였다. 이 행사를 통하여 신체적인 장애로 인하여 영화를 보는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편히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글자막영사의 필요성과 이동장애인의 영화관접근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사도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장애인들의 영화관람 환경 마련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청각장애인들이 호각시위를 통하여 외쳤던 것처럼 영화진흥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2월 임시국회 개원에 맞추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기부·봉사활성화 법안성사’, ‘민생·경제관련법 개정’이라는 국회활동방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방향이 정치적인 결정이 아니길 바라며, 힘없고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장애인 관련법률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회는 얼마 남지 않은 회기를 좀더 알차게 활용하여 영화진흥법안을 개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우리나라도 ‘영화를 마음놓고 볼 수 있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국회는 장애인들에게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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