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1호 리눅스야놀자!
최초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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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빨라짐과 동시에 근원적인 구조변화가 지금도 매일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기업들의 권한은 점점 강해지는 경향 속에서 산업 자체의 근본적 형상이 바뀌고 있다. 기존의 질서는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고 있다. 상품의 점유에서 시작한 거대 기업들의 시장 점유는 공공재와 사회 인프라스트럭처까지도 관리하게 되어 사람들은 점점 더 기업에 종속되고 지배된다.

자본은 이제 거대산업이 된 지식산업과 문화산업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 내용과 표현방식마저 지배하려 한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생산수단의 변화이다. 생산의 수단과 가치의 기준이 바뀌면서 지적재산권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생산의 중점이 물적 자산의 생산과 관리에서 지적인 자산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다. 생산수단은 토지, 산업시설과 같은 실체에서 저작권과 같은 무형의 그 무엇으로 변했다. 당연히 경제 활동의 중심도 제조업에서 지적인 생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저작권, 특허, 상표권, 문화컨텐츠 등의 비중이 높아져 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지적인 생산에 필요한 데이터들과 산물들이 모두 제한을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한마디로 ‘돈’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해킹’이란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기기 시작했다. 원래 해킹이란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과 조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프로그래밍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해킹이 있으며, 프로그래머는 곧 해커라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수정을 통한 버전업도 해킹과 원리상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킹은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심각한 문제도 아니다. 해킹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경제적 맥락이며, 또한 법률적 문제가 개입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1970년대에 이러한 본래적 의미에서의 ‘해킹’을 자연스레 접해왔던 해커,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은 현재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리더로서 해커 문화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논쟁적인 성품을 가진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는 자유소프트웨어를 활성화 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엔유(GNU)’ 프로젝트를 통해 지적 재산권의 중요한 형태인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문제를 제기하고, 강력하고 비타협적인 대안을 ‘GNU선언’을 통해 제시했다.

GNU는 프로그래머들에게 생산의 수단과 권리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일깨우며, 특정 회사에 종속되지 않는 보편적 환경과 도구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용자에게 당연한 권리인 소스코드 열람과 사용 및 개작의 자유를 자각케 하고, 소프트웨어 저작권이 타인의 사용을 억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지적 생산의 도구이다. 이러한 도구가 없이는 독립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는 공동체의 노력으로 지엔유리눅스(GNU/Linux) 커널, 지시시(gcc) 컴파일러 같은 ‘생산재’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툴들이 상당수 갖추어졌다.

스톨먼은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그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뉴욕시의 무분별한 재개발 반대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 시설인 탁아소와 복지 개선을 위해 정치적 투쟁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전 남편과 이혼하여 어린 스톨먼과 함께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면서 소외계층을 도외시한 채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진행되는 뉴욕시의 재개발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얼마 후 베트남전 참전에 반대를 위해 군대에서 사직한 남자와 재혼하였고, 이것으로 인해 스톨먼 가정에서 베트남전은 항상 중요한 화제 거리가 되었다. 스톨먼에게 베트남전은 공포와 혼란, 무력감을 불러일으켰고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또한 환각제, 음악 그리고 기술에 대한 편견과 같은 당시의 비합리적인 반전문화와 반문화에도 적응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문제 해결능력을 보여 주었고 과학 영재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던 스톨먼은 물리와 수학에 탁월했다. 하버드 재학 중에는 수학적 명석함으로 유명했고 정치적 활동에도 참여했었다. 그 후 스톨먼은 엠아이티(MIT) 인공지능 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해커의 길을 걷게 되고. 후에 MIT의 관료화와 인공지능 분야의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리스프처리언어(LISP) 관련 프로그램들의 상업화에 저항하면서 GNU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냉전시기에 태어나 영재아로 크면서 스푸트니크 쇼크의 영향을 받고, 20대 전후로는 정치운동과 반전운동에 참여했으며, 30대에는 컴퓨터 산업의 폭발과 상업화를 보았으며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였다. 40대에는 자유 소프트웨어를 전도하러 세계를 돌아다녔으며 이제 50대가 되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그래머는 많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자유’라는 개념을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이를 이념으로 들어올린 최초의 인간은 오직 스톨만 뿐이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만약 스톨먼이 없었더라면 그를 만들어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대중화시키고 전파하고 있는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어떤 모습일까? GNU선언을 통해 오픈소스 운동을 일종의 개량주의적 음모로 비판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대립과 고립도 불사하는 스톨만의 혁명가적 모습을 보며, 여타 사회주의, 중도 좌파들과 달리 선명한 노선을 선언하고 현실의 모순과 정면 대결했던 맑스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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