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2호 Cyber
링크 위에서 벌어지는 법의 줄다리기

양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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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초기 사이버법학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사이버세계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기존의 법개념이나 법이론이 사이버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현실공간에서 적용되는 법개념과는 전혀 다른 법개념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입장은 사이버세계 역시 인간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이버세계의 법현상을 기존의 법개념이나 법이론을 통해서 충분히 해명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 중 굳이 어느 한 쪽을 택하라면 필자는 후자의 입장을 취할 것 같다. 인간의 창조물 가운데 기존 세계와 분리된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이버세계에서 법률문제의 출발점은 사이버세계의 현상들을 기존 법개념으로 포섭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버세계에는 현실의 세계와 다른 '새로움이나 다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차이들은 법률해석을 어렵게 하거나 새로운 법률 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형사처벌 법규는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해 엄격한 해석이 요구되므로, 그 해석의 어려움이 더 크다.

디지털 영상물은 음란한 ‘물건’이 아니다

일례로 형법 제243조를 보자. 이 규정은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판매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행위를 처벌한다. '즐거운 사라'나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들을 처벌한 근거 규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조문은 형법 제정 당시부터 있던 것이고, 인터넷의 발전을 예상하지 못한 규정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지배가능한 '물건'의 음란성만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규정이다. 그렇다면, 음란한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을 인터넷 상에서 판매한 경우에 위 조문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관건은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을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음란한 표현을 형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는 별론으로 하고, 음란한 표현을 규제하겠다는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을 그러한 물건으로 보아 처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대법원은 부정했다.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BIG'이라는 사설게시판을 개설하여 수수료를 받고서 음란한 영상화면을 수록한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을 컴퓨터 통신망을 통하여 전송하는 방법으로 판매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형법 제243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법의 입법 취지보다는 형사사법에서의 법적 안정성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서 볼 때 타당한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런 음란한 디지털 정보를 전시하는 행위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얼마전에도 야후, 네이버 등 주요 포털 관계자가 음란한 디지털 영상물을 판매한 협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를 처벌하기 위한 법규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이하 망법)에 있다. 이 법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ㆍ문언ㆍ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ㆍ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제65조 제1항 제2호).

음란한 링크 = 음란물 전시?

만일 음란한 사진이나 소설을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게시하면 불특정ㆍ다수인이 실제로 음란한 부호 등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으로서, 음란한 부호 등을 공연히 전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위 조문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직접 게시하지 않고 링크하였다면 어떨까? 링크는, 기존의 법개념으로 사이버공간의 법현상을 포섭해 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이다. 기술적 차원에서 링크는 다른 사이트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도록 주소 정보를 담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링크를 하는 행위만으로는 링크된 사이트의 정보가 복제되거나 전송이나 전시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마우스 클릭만으로 링크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복제되거나 전시된 것과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링크를 규범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링크하는 행위를 전시행위와 마찬가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실제 판례에서 문제된 사안이 있다. K씨는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아이뉴스(Inews)에 개설한 인터넷 신문인 '팬티신문'에, 음란사진과 음란소설이 게재된 사이트로 바로 연결되는 링크를 걸어 두었다. 검찰은 K를 망법 위반죄로 기소하였다. 이 사안에서 원심 법원은 링크를 전시와 같이 볼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인터넷상의 링크는 링크된 웹사이트나 파일의 인터넷 주소 또는 경로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여 그 링크에 의하여 연결된 웹사이트나 파일의 음란한 부호 등을 전시하는 행위 자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링크를 형식적으로만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링크는 인터넷 이용자가 별도의 노력없이 '마우스 클릭'이라는 간단한 방법만으로 다른 문서나 웹페이지에 손쉽게 접근 검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의 발달에 따라 그 마우스 클릭행위에 의하여 다른 웹사이트로부터 정보가 전송되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링크는 단순한 연결 기능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링크된 웹페이지의 내용을 이용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링크행위를 음란물의 전시와 같이 보아도 형사처벌규정의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K씨는 유죄.

대법원의 입장은 기술적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규범적 차원에서 링크를 평가한 것으로 보아 일응 수긍할 수 있지만,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는 원심 판결이 더욱 충실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무단복제물 링크하면 저작권침해인가

링크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실질적 수준에서 하다보면 자칫 인터넷 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염려도 있다. 1999년 미국 유타주의 지방법원은 몰몬교회칙편람 내용을 무단으로 전재한 웹사이트의 주소를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게시한 탠너부부의 행위를 저작권 '기여침해'로 판시한 바 있었다. 저작물의 내용을 직접 복제하거나 전송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침해로 인정한 것이다. 서울지방법원에서도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자지도검색서비스를 프레임 링크한 행위가 실질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와 같아서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영업적 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나, 전자의 사례는 탠너부부가 몰몬교를 비판해 왔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에 관련된다.

링크는 월드와이드웹 방식의 사이버공간의 근간을 이룬다. 링크는 인터넷의 생명줄과 같다. 링크에 대하여 어떠한 법적 평가를 할 것인가는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에 대한 규제의 정도와 밀접하게 연관되므로 보다 신중한 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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