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2호 장애없는
통신중계서비스의 정착을 바라며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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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알렉산더 벨에 의해 전화가 발명된 이후 유선전화를 이용한 통신이 일상화 된지 오래다. 오히려 요즘은 통신업계에서 다양한 행사를 통하여 유선전화 사용을 유도할 정도로 유선전화사용이 감소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청각·언어장애인들의 경우는 듣거나 말하는데 자유롭지 못하여 유선전화를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청각·언어장애인의 경우 상호간의 전화통화는 물론이고, 가족이나 주변인들간에 전화를 통한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전화를 통해 민원을 해결하거나 긴급 상황을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전화의 음성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각종 정보에 접근도 불가능하다. 이런 유선전화 사용의 어려움은 지금까지 의사소통의 장벽으로 인하여 일반인들과의 차별을 심화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하여 왔다. 참고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벨이 개발한 전화가 청각·언어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정보를 차단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한 일이다.

이처럼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유선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팩시밀리를 주로 이용하여왔다. 삐삐라 불리던 무선호출기가 유행했을 때에는 단문이지만 이 기계를 통하여 의사를 교환하였고, 이동통신이 발달되어 요즘은 문자통화 기능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문자채팅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팩시밀리나 무선호출기, 휴대폰의 문자 송수신은 충분한 전화통화의 갈증을 풀어주기는 어렵다. 인터넷을 통한 채팅 역시 장소에 대한 제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 청각장애인이 30%내외(한국정보문화진흥원, 2004)며, 인터넷을 이용하는 계층이 30대 이하에 몰려있는 것을 볼 때 보편적인 통신수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 등 복지제도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청각·언어장애인의 통신문제를 해결하고자 통신중계서비스(TRS: Telecommunication Relay Service)를 실시해오고 있다. 통신중계서비스란 청각장애인의 전화이용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말하는데, 청각장애인이 문자전화기(TTY: Teletypewriter)로 통화를 하고자 하는 일반인의 번호를 입력하면 중계요원이 일반인과 연결한다. 그런 다음 청각장애인이 통화하고자 하는 내용을 문자로 전송하면 중계요원은 그 문자를 음성으로 일반인에게 전하고, 일반인의 답신을 문자로 청각장애인에게 전해주는 형태로 통화를 지원하는 서비스다.

전화중계서비스를 제일 먼저 실시한 미국의 예를 보면, 통신에 불편을 겪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하여 1970년 이후 보청기 호환 환경과 통신중계서비스를 위한 단말기 제공근거를 만들었으며, 1988년 통신법개정, 1990년 미국장애인법(ADA) 제정으로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전화중계서비스가 정착되었다. 이 서비스는 현재 미국 전역에 24시간 실시되고 있으며, 통신중계서비스에 필요한 단말기의 보급, 통신요금의 감면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서비스는 또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가들인 영국,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에서 24시간 서비스가 되고 있고, 그 밖의 국가들도 일부 실시하고 있다.

통신망의 발달과 영상압축기술의 발달로 전화중계서비스는 이제 문자서비스 만이 아니라 청각·언어장애인이 영상전화기나 PC를 통하여 수화나 구화(독순술)로 의사를 전달하면 수화나 구화를 훈련받은 오퍼레이터가 일반인에게 음성언어로 의사를 전달해주는 영상중계설명(Video Relay Interpreting)서비스와 언어장애가 심한 장애인을 위하여 독순술이나 제스처를 이용한 스피치투스피치(Speech-to-Speech) 중계서비스까지 포함하는 통신중계서비스까지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전화중계서비스 실시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들이 번번이 묵살되다가 지난 2000년 장애인·노령자에게 정보통신서비스 등의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정보격차해소에관한법률(이하 격차해소법)이 제정되고, 이 법률을 근거로 정보통신접근성보장권장지침이 만들어지면서 논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법률이나 지침도 현실적으로 규제력이 약해 통신중계서비스 시행을 위하여 통신업체를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농아인협회가 지난 2001년 이후 격차해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추진하고 있는 격차해소법의 주요 내용은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기타 공공단체가 청각·언어장애인, 기타 정보통신에의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 노령자를 위하여 원활한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하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즉 정보통신사업자가 서비스 제공시 청각·언어장애인, 기타 정보통신에의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 노령자를 위하여 정보통신에의 접근과 이용편의 증진이 가능하도록 통신중계서비스센터 설치 등의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며", "장애인·노령자를 청각·언어장애인, 기타 정보통신에의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 노령자로 개정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신서비스의 종류·지침, 장비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 장애인의 범위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개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통신 등 통신업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법률개정안은 상임위에 상정되지 못하고 지난 2002년과 2003년 두 차례나 무산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농아인협회의 활동으로 이 문제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공약의 하나로 채택되었으며, 2003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아·태 지역 장애인10년과 우리나라의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 등 정책에 반영되면서 실현 가능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올해 정보통신부가 영상과 문자통신을 주요 통신수단으로 하는 통신중계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기반을 마련 한 뒤 2006년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평가를 통하여 통신중계서비스를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 사업이 실시가 되면 전국의 20여만명 이상의 청각과 언어장애인들,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과 주변인들이 전화통신에 많은 편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실시하는 기반 연구사업들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향후 사업으로 진전되어 장애인의 통신접근과 정보접근에 일익을 하기 위해서는 농아인협회가 주장하여온 격차해소법이 개정이 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이 사업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어야 하며, 통신사업자의 적극적인 참여유도, 운영 예산확보 등의 방안이 세워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러한 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도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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