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2호 미디어의난
라디오 ‘운동’을 실천한다

박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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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가 처음 들어왔던 1920년대... 우리나라의 첫 라디오 방송국은 1926년 11월 설립된 경성방송국이었다. 당시 라디오는 대체로 일본어 해독이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는 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던 고가의 최첨단 뉴미디어였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한 지식인은 한탄한다. 라디오 방송국을 한국인이 주도하여 설립하지 못하는 엄혹한 정치 현실과 값비싼 수신기를 구입할 수 없었던 어려운 경제 사정...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해방이 되었다고 변하지는 않았다. 일본인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웠던 것은 국가권력과 자본이었다.

한 나라의 방송 구조가 정착하는 데에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이라는 근대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이 불행하게도 일제 식민지 시기, 미군정기, 독재 정권 지배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우리나라의 방송 구조는 끊임없이 왜곡되어왔다. 방송이 국가 소유로 여겨지고 보통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전문적인 분야로 여겨지면서 라디오는 일방향적인 방송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 도입 이후 라디오가 TV의 부수적인 요소로 전락하고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방송미디어를 중앙에서 집중통제 해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동체 라디오 운동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

‘시범방송’. 첫걸음이 아니라 운동의 결실

그런데 2000년 변화가 찾아왔다. 이때에 라디오를 참여적인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2000년 통과된 통합방송법에서 시민들의 미디어 액세스 권리를 보장한 법안이 제도화되면서 가시화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로 TV 신문 등 매체를 감시하는 모니터 운동이 활발하였으나 매체를 직접 활용해서 수용자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데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국민주 방송 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소유한 방송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외국의 다양한 미디어 운동 사례들이 소개되었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 세계의 활발한 공동체 라디오 운동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미디어 운동의 역사는 비록 짧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들이 지역에서,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2004년 11월 ‘방송위,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 사업자 8곳 선정!’ ‘라디오 방송이 도입 된지 80여년 만에 최초로...’ 운운하는 것이 너무 거창할 지도 모르지만,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은 한국의 미디어사(史)에서 획기적인 사건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정부기관의 관료들은 특히 모른다. 그들에게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은 주파수 배정해야 되고, 허가 내줘야 하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당신들이 전파에 대해서 뭘 알아?”(정통부와의 면담자리에서 사무관이 내뱉은 말)라고 말하는 권위적이고 거만한 태도에 대항해서 “그래요. 모릅니다. 당신들이 전파를 독점해 왔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요. 전파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라고 되받아칠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견인한 힘은 무엇이었나? 정책의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주적 매체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와 그러한 미디어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대중적 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었고, 그러한 요구와 실천을 바탕으로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동체라디오 제도화,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은 제도적 차원에서나 운동적 차원에서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공영, 민영방송이 아닌 공동체라디오라는 새로운 제3의 방송영역의 출현이 제도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국면을 마련하였다면,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라디오운동’이 촉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시범방송에 대한 결과 평가를 통해 공동체라디오 방송 법제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시범방송 자체가 제도화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로 고려되었기 때문에 시범방송의 결과가 이후의 제도화 과정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1년(더 짧게는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시범방송이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 내에 향후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칠 법, 제도적 내용들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시범방송에 대한 세부정책이 부재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시범방송 이후에 결정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이번에 발생한 방송위와 정통부 사이의 허가논쟁을 지켜보면서 보다 분명해진 것은 제도화되기 이전이더라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은 계속적으로 요구해서 바꿔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각 공동체방송국들은 시범방송 기간에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것에 온힘을 기울여야겠지만,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제약 없이 활발하게 제작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라디오가 ‘방송’만으로 그치지 않고 ‘운동’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방송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방송,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 라디오 프로듀서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활동가가 더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합법화 되었던 것은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풀뿌리 기반은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는 움직임에서부터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한 지속적인 개입-공동체 라디오를 알리는 활동, 홍보 등-이 필요하며, 지역 사회 단체가 연합하여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제 8개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자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지역, 공동체에서도 소출력라디오 전파를 쏘아 올릴 준비를 천천히 해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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