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2호 과학에세이
결핵의 날을 지나며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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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은 세계결핵의 날이었다. 신문에서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새로 발생하는 결핵환자가 3만명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1등이고, 작년에는 그 전년도에 비해 2.2%가 늘어난 3만1천503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여, 그동안 줄어들던 추세가 반전되었다고 한다. 인구 10만명당 결핵환자가 91명으로 일본 33명, 미국 5명, 영국 12명, 프랑스 14명 등 선진국들에 견주어 아주 높은 수준이며, 2003년에 결핵으로 죽은 사람은 3,331명(인구 10만명당 6.9명)으로 사망원인별로 11위를 차지해서, 호주 0.1명, 미국 0.3명, 독일 0.5명, 영국 0.6명, 프랑스 1.0명, 일본 1.8명 등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이별로 보면 0-19세까지 7.4%, 20-39세 37.5%, 40-59% 26.3%, 60세 이상이 28.8%로 20-30대의 생산연령층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후진국형 패턴을 보여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기사를 읽으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80년대 초반에 농민들의 삶을 연극의 소재로 삼아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과 약의 오남용 실태까지 들여다보게 되면서, 결핵이라는 질병의 심각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은 질병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결핵은 전염성이 높아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에이즈나 당뇨병, 알코올 중독 등으로 인하여 면역기능이 특별히 저하되지 않는 한 6-9개월의 지속적인 투약으로 거의 완치될 수 있는 질병이다.

정작 문제는 자신의 노동력에 의지해서 삶을 지탱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경우 결핵은 해고와 생업 중단을 뜻하므로, 6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약을 복용하거나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곧 발병 사실을 아예 감추거나, 단기간의 약물치료 후 증세가 완화되면 그냥 버티고 보는 환자들을 양산했고, 결국 내성결핵균에 의한 재발 등으로 죽음을 초래한다. 병을 몰라서도 아니요 약이 없어서도 아니라, 그들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병을 키웠고, 사회가 그들을 죽도록 방치한 것이며,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비단 결핵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노동현장에서 일년에 3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산재사망, 그리고 IMF 이후 급등한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소외로 말미암은 자살 또한 사회적 타살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 직업, 소득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른 사망 불평등은 도처에 엄연하고 섬뜩한 현실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최근 연구(강영호, 2004)에 따르면, 교육수준이 고졸 미만인 사람은 고졸 이상인 사람보다 사망할 위험이 1.90배 높고, 하류계층에서의 사망 위험은 다른 계급에 비하여 1.67배 높았으며, 상위소득군에 비하여 하위소득군에 속한 사람들의 사망위험이 62%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혹여 모든 죽음은 평등하다고 믿은 동지가 있다면, 지금부터는 평등한 죽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겠노라고 한번 다짐해 보지 않겠는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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