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2호 사람들@넷
디지털 속 꽃피는 노동문화
디지털 노동문화복지센터 (www.samchang.or.kr)

김은주  
조회수: 3086 / 추천: 57
이름 없이 스러져간 …

열사는 196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75년 서울 배문중학교 중퇴 후 구두닦이, 신문팔이, 페이트공 등을 하다가 83년 경기도 시흥의 ‘동도전자’에 입사, 임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84년 7월 ‘동일제강’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85년 3월에 해고, 같은 해 10월에 ‘신흥정밀’에 입사하여 동료 노동자들과 현장활동을 전개했다. 열사는 임금인상 투쟁 중이던 86년 3월 17일 “노동운동 탄압 말라, 노동삼권 보장하라”를 외치며 분신, 다음날인 18일 새벽 3시에 27세를 일기로 아픈 생애를 마쳤다.

81년 대학입학 후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85년 대학졸업 후, 인천으로 내려가 ‘한비실업’, ‘(주)한양목재’, ‘글로리아가구’ 등에서 생산직 사원으로 일하며 해고와 구속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조 건설운동에 매진했던 동지는,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와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등에서 교육선전부장, 조직부장으로 일하다 95년 ‘민주노총’결성이 후 동 조직국 조직 1부장으로 활동했다. IMF가 닥친 98년 넘쳐드는 일거리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다 과로로 쓰러져 98년 2월 24일 가족, 친구, 동지들의 오열을 뒤로하고 숨졌다.

박영진 열사와 최명아 동지의 ‘간추린’ 일대기다.

동지여!

1997년 6월 어느날, 서울 구로지역에서 일하던 아날로그 노동문화활동가들 몇이 모였다. 모인 이들은 상업문화의 범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일터의 문화, 공동체의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7-80년대 활발했던 민족민중문화예술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진보적인 출판문화운동을 하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디지털 노동문화복지센터(이하 센터)가 태동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고민과 대화 끝에 맺어진 실천의 열매로 그들은 정기 간행물을 택했다.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매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격월간 진보생활문예지를 설립, 창간을 다짐한 것. {삶이 보이는 창} 은 현재 50명의 문화활동가들이 자원활동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다. 1998년 1월 창간호를 낸 후, 현재까지 격월간지를 내고 있고, {삶의 시선}이라는 시선집 및 박선영 열사 평전을 비롯하여 이주노동자 보고서 {말해요 찬드라} 등 다양한 단행본 사업을 하고 있다.

박영진 열사와 최명아 동지 등, 피뿌리고 살다간 수많은 노동 동지들의 치열하고 뜨거웠던 생애를 되살려내는 ‘살아남은 자들’의 진혼곡들은 이렇듯 조용히 재생되어 나오고 있다.

가다보면…

센터는 2001년 7월, 5년째에 접어들면서 얻어진 성과들을 더 확대하기 위해 그간 함께 했던 벗들의 총의를 모아 좀더 디지털(?)한 문화운동체를 만들기로 했다.

“가다보면 좋은 일이 있지 않겠냐는, 가다보면 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가다보면 정말 우리가 바랐던 좋은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는,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아날로그! 그 첫 마음으로 작은 일이나마 더불어 사는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갈 계획입니다.”

마음은 아날로그, 기술은 디지털

80년을 회상하는, 혹은 끌어안고 사는 이들에게 디지털이 갖는 이미지란, 어쩌면 무정(無情) 그 자체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진보세력은 디지털을 꿈꾸는 게 인지상정인가보다. 센터 역시 디지털 공간 안에서 건전하고 생산적인 문화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30여년전 우리네 언니들을 기억하며 이주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파렴치한 인권 유린을 본다면 아날로그적 정서가 먼저 발동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돕는 센터는 디지털 환경을 적극 활용한다. 세상을 보는 동화된 노동자적 시각에 ‘그녀’들을 동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들 역시 노동자며 가발공장과 가방공장을 전전했던 ‘우리 언니’들의 후배이기에 그렇다. 돕고자 하는 맘은 같되, 달라진 풍토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방법만을 다양화한 것이다.

센터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삶을 나누고 싶다. 최종적인 오프라인 결실(책)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온라인에서도 지속적으로 끈끈한 삶을 나누며 연계해 나가고 이후 계간지나 단행본 등을 통해서도 서로를 만나는 것이다.

2002년 1월 19일 노동부 사단법인을 취득한 센터는, 2003년 3월부터 내부 정비를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자체 내 노동문화 방송국을 설립했고 회원사업, 그 외의 다양한 기획사업들을 준비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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