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2호 최현용의
네트워크의 무법자, DRM(2)
황야의 건맨은 누구인가

최현용  
조회수: 3508 / 추천: 61
인터넷, 그것은 원초적으로는 0과 1의 전기적 신호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불확정적이다. 반면에 수많은 패킷들이 질서정연하게 나름의 질서를 유지해야만 인터넷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존재론적으로 숙명적이라 하겠다. 이런 불확정적인 동시에 숙명적 존재인 인터넷에 그 존재적 위상을 확고히 하는 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디지털권리관리시스템(DRM) 바로 그것이다.

전기적 신호는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일때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자명함은 자신의 탄생부터 “저작권”이라는 굴레 아닌 굴레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 디지털뉴스 저작권 보호 공동 보조”(http://www.kona.or.kr/bbs_v.htm?board=notice&type=pds000&idx=111)에서 말하는 것처럼 ‘펌글’인가 아닌가 혹은 ‘직접 링크’인가 ‘딥 링크(Deep Link)’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하는 말과 생각들, 그 표현들은 그 누군가의 것이라는 ‘소유’의 딱지가 붙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자본주의의 굴레이다. 생각해 보라. 네트워크에서 ‘표현’이라는 단어를 벗어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이 모든 근본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 모든 모순들이 단지 네트워크상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백보양보한다 하더라도, 즉 모든 표현들이 누군가의 소유임을, 하늘이 생긴 이래 새로운 것들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네트워크에서 그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기술적인 가능성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No”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한때 모든 모니터가 CPU없는 단말기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PC의 등장 이후로 모든 것이 혁명적으로 변했다. SF영화에서나 보아야 했던 ‘슈퍼컴’을 이제는 개인마다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microsoft라는 회사가 지금 떵떵거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그 혁명적 변화에 잘 끼어 들었다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기술적으로는 그들이 자신보다 이전의 선배들보다 잘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데에 나는 한표를 던진다.) 그것은 CPU와 RAM이라는 존재가 개인에게 구속되게 되었고, 또한 지금 현재 바로 그렇게 존재하는 CPU와 RAM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한, 결국 기술적인 경로를 알고 있는가 아닌가와는 무관하게 복사(COPY)는 무제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국 아무리 DRM이라는 수사를 덧붙여 가며 복사를 막으려 해도 최종심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리고 당신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DRM은 애초부터 시찌푸스처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그 도전이 현실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돈많은 기업들에 의해 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리 계산해봐도 도달할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달리는 수레바퀴속에서 소위 ‘저작권자’라는 존재들이 돈을 벌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돈을 벌어도 그걸 가지고 보통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몇명, 또는 단지 몇개의 회사가 돈을 억수로 번다는 쇼케이스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그 쇼케이스에 해당될 수 있다고,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나머지 대다수의 소외된 저작권자들을 내세워 ‘내 음반을 만원에 사줘’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일 뿐이다.

너무하다고? 공상적이라고? 그렇다. 나는 공상적이며 낭만적이며 동시에 황당하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그런게 어디 있냐고?

LINUX 바로 그것이 여기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렇다. 너도나도 복사할까 두려워 노심초사 대륙별로 국가별로 lock을 걸었던 DVD가 만인의 DivX가 된 것도 리눅스 때문이다. 그렇다. GPL(General Public License:http://korea.gnu.org/people/ chsong/copyleft/gpl.ko.html)이 또한 그렇다. 돈이 아니라 소스(sources)를! 돈이 아니라 자유를(no money, just free)! 리눅스는 그렇게 자유의 상징이고 또 해방의 구현체였다.

다만 그것이 당신에게는 너무 멀리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직접 느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당신이 M$-windows을 처음 접할 때와 동일하다.(http://linuxshop.ru/linuxbegin/win-lin-soft-en/table.shtml) 당신이 M$-windows를 배웠던 기간만큼만, 아니 그보다 짧은 기간만큼이 필요할 뿐이다. 아니라면? 리눅서들에게 항의하면 된다. http://bbs.kldp.org는 그 항의를 잘 받아서 해결해 줄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항의하는만큼 리눅스는 당신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생각나는 궁금한 것 한가지 - 사실은 저번 호에 말하기로 했던 것데 가 있다. 리눅스에는 DRM이 없나? 과연 자유의 수호자 리눅스에서 억압의 상징인 DRM이 존재할 수는 있는건가?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존 밀턴, 아레오파기티카)


문제는 현실이고 문제는 구체적이며 또한 문제는 계급투쟁이라는 식의 답변은 내가 할 얘기가 아닌 듯 하다. 그건 철학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맞붙어 싸우’기 위해서는 바로 당신이 필요하다고. 기술은 현실에서 항상 누군가에게 편향적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중립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소스는 만인에게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DRM이란 존재를 리눅스세계에서 추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참여하면 추방할 수 있다. 그 출발과 끝에 리눅스가 있다.

오늘, 지금, 당신에게 리눅스를 권한다. 그렇다면 DRM이란 무법자를 쓰러뜨리는 황야의 건맨은 바로 당신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