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3호 나와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이 행복했을까?
다큐멘터리 ‘노가다’ 준비중인 김미례 감독

임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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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애: 요즘 어떤 촬영을 하세요?

김미례: 어제, 그제는 덤프연대 파업한 거 따라다녔어요. 계속 찍고 있는 건 ‘노가다’죠. 주로 노동현장, 투쟁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어요.

임정애: 카메라는 언제 처음 잡으셨나요?

김미례: 그게 아마 IMF가 막 시작될 쯤일 거에요. 그 때 가정주부로 있다가 독립을 했어요. 나로서는 독립선언을 한 거죠. 그때 수년간 쌓여있던 게 한꺼번에 폭발했어요. 그동안 못 봤던 영화를 다 봤어요. 혼자 종로, 대학로 영화관을 쏘다니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같은 영화를 봤죠. 그러다 꿈을 꿨어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리고 시나리오 습작을 시작했어요. 숨통을 조이던 억압이 풀리는 거 같았죠. 하하하... 처음에는 홈비디오를 들었어요. 그때가 디지털화가 막 시작될 시기였죠. 그때 영상장비가 많이 저렴해지기 시작했죠. 직접 편집장비를 구입해서 영상작업을 하면 되겠다 생각을 했죠. 처음에는 푸른영상이나 노동자뉴스제작단에 가서 영상장비들을 빌려 편집하고 그랬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참 행복했어요.

임정애: 촬영 후에 컴퓨터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김미례: 주로 편집 작업을 하죠. 전체 스토리 라인을 만져요. 소스를 캡쳐 받아 그림을 붙여나가고 이야기를 만들죠. 증편하거나 CG작업 같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제가 못해요. 외부 전문가들에게 부탁을 해요. 제 작업실에 있는 컴퓨터로는 컷 편집, 이야기 흐름만 딱 잡아내죠. 이것만해도 사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리고 작업을 하다가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참세상 속보를 서핑하기도 하죠.

임정애: 다큐멘터리 ‘노가다’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김미례: 아버지가 목수라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소위 ‘노가다’라는 노동을 하시는 분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그분들 굉장히 선량하고 성실하고 똑똑하시거든요.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그분들에 대해서 좋지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인식의 근간에는 사회적 차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차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것을 밝혀내기 위한 작업이죠. 현재 촬영은 90%정도 끝났는데, 워낙 촬영분이 많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임정애: 아버지를 카메라로 찍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김미례: 아버지는 늘 같아요. 집에서는 항상 술에 취해 있거나 피곤에 지쳐 돌아오지만,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선한 사람. 현장에서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 진짜 성실한 사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다가, 술이나 좀 마셔야 욕이라도 한마디 하는 사람. 일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찍고 싶었어요. 그냥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사회에서 무시와 천대, 설움이 있는 한 노인네로.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현장을 떠나야하는 늙은 아버지. ‘노가다’의 모습이면서 늙은 아버지의 모습...... 그런 걸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이 행복했을까. 이 시대, 한 평생 건설현장의 목수로 살아오면서, 이제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고 곧 있으면 생을 정리해야하는 저 인생이 과연 행복했을까. 그 설움과 한이 무엇이었을까. 이런 걸 스스로 반문해 가면서 아버지에게도 질문을 하죠.

임정애: 아버지가 대답을 잘 해주시던가요?

김미례: 제가 카메라 대고 질문하면 “모 그런 질문을 해!”, “서럽지!”, “더 이상 뭐가 있어, 내가 배운 게 없어 그렇지!” 그렇게 말하세요. 그럼 나는 “왜 그게 아버지 탓이에요? 왜 못 배운 게 아버지 탓이에요? 사회구조의 문제에요...”라고 말씀을 드리죠. 내가 보기에는 착하고 선한 사람들인데 배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이런 사회의 모순에 대해 영상으로 만들어 그런 인식을 깨주고 싶어요. 모든 것을 다 깰 순 없지만, 하나하나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고 확신해요. 하하하....

임정애: 왜 하필 노동자를 선택하셨나요?

김미례: 진보넷 사람들은 왜 돈도 안 되는 그 일 하세요? 하하하... “현장 조직가들에게 왜 노동운동 하세요?” 라고 묻는 거랑 똑같은 거 같아요. 우선은 제 태생부터가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얼떨결에 서울로 올라왔죠. 아버지는 먹고살기 위해 노가다 판에 뛰어든 목수고 저는 그 아버지의 딸로 학교를 다니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당연히 이런 생각들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임정애: 촬영하면서 어떤 게 힘드신가요?

김미례: 사실 건설현장을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큰 벽이에요. 아저씨들은 싫어하지 않아요. 문제는 현장 관리자들이에요. 촬영을 못하게 하거든요.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게 다 고소, 고발 건들이에요. 들어가는 입구부터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철근과 콘크리트 기준치 미달, 부실한 공정과정 등. 현장 밖에서만 보아도 문제가 많죠.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망조차 없고, 아시바도 두줄로 해야 하는데 외줄로 하거나, 아예 발판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너무 많죠. 또 다큐라는 게 일반방송과는 많이 달라요. 방송은 필요한 부분을 정해서 찍기 때문에 별로 일이 많지 않죠. 근데 다큐작업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진실된 이야기가 우러나올 때까지 계속 카메라가지고 찍어야 되니까. 그 부분이 힘들어요.

임정애: 현장의 노동자 분들은 촬영에 잘 응해 주시나요?

김미례: 파업현장에서 카메라 들이대면 아저씨들이 KBS냐 MBC냐 물어요. “방송국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찍지 말라고 하죠. 그러면 저는 “아저씨, 이게 더 중요해요. 아저씨 억울한 거, 이렇게 몇 천 명 모이는 거, 이거 쉬운 일 아니에요”라고 설득을 하지요. 찍다보면 폭력적인 장면들도 있어요. 거기에 카메라 들이대면 더 싫어해요. 왜 이런거 찍냐고. 그러면 “아저씨! 어떻게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죠?”라고 되물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말고 계속 투쟁하시라고 그러죠. 하하하... 이건 일종의 믿음 같은 거에요. 자신감 같은 것이기도 하고. 그건 아마 나는 당신들 편이라고, 나를 믿으라고 얘기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내 스스로 자신이 있으니까. 절대 당신들에게 해가 되거나 당신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임정애: 독립다큐멘터리를 선택하신 계기가 있나요?

김미례: 막 화려하고 극적인 거 보다 심플하고 길게 감정을 끌어내는 게 좋아요. 촬영하면서도 고민하는 거죠. 어디에 내가 의도한 이야기를 숨겨야 하고 사람들이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뭔가를 심어놓아야 하나. 알 수 없이 팍 젖어들게 하면서 감정을 막 끌어내는 뭔가, 그 뭔가가 무엇일까. 그걸 아직 찾지는 못했는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긴 하지만 의도하는 걸 넣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해요.

임정애: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요?

김미례: 기존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이죠. 기존 뉴스보도 방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노동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사회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기 때문이죠. 가난한 노동자들이 정말 많아요. 그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데 세상의 미디어들은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죠.

임정애: 얼마 전 있었던, 비정규직철폐를 위한 영상프로젝트팀은 어떻게 제안하게 되었나요?

김미례: 작업하다보니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작업을 나 혼자만의 것으로 가져갈 것인가. 그걸 내 작업으로 가져가는 것 보다 전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이러한 작업을 하는 건 현실의 부당함을 알려내고 어떻게 현실을 바꿔가느냐에 관심을 두고 하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반응할 수밖에 없고 혼자보다 같이 해내는 것이 힘이 더 된다고 생각했어요.

임정애: 온라인을 통한 독립영화상영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미례: 일단 그 안에서 발언하고 싶어 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기록한다는데 의미가 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관심을 별로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차곡차곡 쌓여 정말 필요한 순간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너무나 많은 진실들이 왜곡되어 있어요. 진실을 밝히는 작업들은 계속 진행되어야 해요.

임정애: 더 찍고 싶은 게 있나요?

김미례: 다음에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사회가 여성에 대해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들, 관습들, 굴레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근데 일단은 아버지, 아버지와 딸로서의 이 이야기 먼저 끝내 놓고 나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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