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3호 표지이야기
‘실체’는 없고, ‘논란’만 무성한 인터넷 종량제
인터넷 회선에 대한 원가 분석과 구체적인 정책 제시 필요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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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종량제란 초고속 인터넷 이용 요금을 ‘이용시간’이나 ‘전송량(트래픽)’에 따라 부과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시간이나 전송량에 관계없이 매월 일정한 요금을 내는 정액제가 시행되고 있다.

종량제 도입 시사, 네티즌의 반발, 논란 잠식...
논란의 발단은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의 발언이었다. 그는 3월 10일 한 인터넷 언론사가 주최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현재의 정액제 하에서) 5%의 네티즌들이 40%의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어 덜 쓰는 분들이 손해를 보는 면도 있다”며 인터넷 종량제를 검토할 필요성을 처음 언급했다. 3월 22ㅊ일 진대제 장관은 KT, 하나로 등 통신사업자 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다음날 23일 KT 주주총회에서는 KT 이용경 사장이 “정부와 사업자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며 인터넷 종량제 도입이 본격화되었음을 시사했다. 또한 3월 27일 이용경 사장은 자신의 블로그(blog.paran.com/lyk)에서 “수입은 늘어나지 않는데 인터넷 트래픽 량은 매해 두 배씩 늘어나고 있”으며, “망에 지속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얼마 안 있어 인터넷은 초고속이 아니라 초저속이 될 것”이라며, “인터넷종량제를 전면적이 아니면 일부라도 시행하여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인터넷 종량제가 시행되면 요금 부담으로 전자상거래나 동호회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종량제의 문제점이 성토되었으며, ‘종량제 시행 이후에 홈페이지에 그림은 사라지고 텍스트만 남게될 것’을 풍자하는 등 갖가지 패러디도 인기를 끌었다. 이용경 사장의 블로그에도 며칠 사이에 수백개의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다. 또한, KT 상품 불매운동, 종량제에 반대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 등 KT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도 이루어졌다. 케이블망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방송업체들도 3월 14일 종량제 도입 반대 입장을 밝혀 KT에 대한 견제에 끼어들었다.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종량제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종량제는 정보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 “당 차원에서 현행 정액제의 유지를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KT 사업전망 보고서, KT 주장과 달리 초고속인터넷 흑자 예상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대제 장관과 이용경 사장은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3월 30일 국내 게임업체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진대제 장관은 “아직 확정된 정책이나 추진하는 제도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4월 8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네티즌 등 여론 향배와 통신정책, 인터넷 강국의 위상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KT 역시 거듭되는 토론회 요청에 대해 확정된 입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한편, 이용경 사장 역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4월 14일 KT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전망 보고서가 한 언론사에 의해 유출, 보도된 후 논란은 더욱 가라앉았다. KT 초고속사업팀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KT 초고속인터넷 영업이익이 2004년 223억원 적자에서 2005년 2240억원 흑자, 2008년에는 9616억원으로 그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투자비는 2003년 5235억원에서 올해 2948억원으로 감소하고, 2008년에는 2400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지 않아 망에 투자하기 힘들다는, 그래서 인터넷종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급격하게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이다. 일단 인터넷 종량제 논의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 종량제 논란이 지난 몇 년동안 반복해서 제기되어 왔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인터넷종량제 논의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채 필요성만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며, 이는 KT의 무책임한 여론떠보기라고 비판한다. 최고경영자까지 나서 종량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상황에서 KT의 공식적인 입장과 계획이 없다는 것은 국내 인터넷 기반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인터넷 회선에 대한 투자비와 수익 등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과 정확한 통계없이 논의를 하는 것은 감정적 대립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예 논란이 불거진 김에 현재 3~5만원 수준인 인터넷 요금의 수준과 체계가 적절한지 따져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최근 정보통신부가 국회에 보고한 OECD 국가들의 인터넷 요금제 현황에 따르면 현재 한국을 포함하여, 미국, 일본, 프랑스 등 16개국이 정액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영국, 호주 등 11개국이 정액제와 종량제를 병행하고 있으며,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포르투갈 3개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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