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3호 표지이야기
인터넷 종량제는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얘기?
보편적 서비스 관점에서 접근해야

오병일  
조회수: 2807 / 추천: 42
네티즌들에게 인터넷 종량제는 ‘요금인상’의 다른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네티즌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에는 KT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있다. 이는 KT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원가구조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제시하지 않은 채, 종량제의 필요성만 언론에 흘려왔기 때문이다.

초고속인터넷 원가분석이 선행되어야...
종량제 도입의 대표적인 근거는 ‘인터넷 트래픽은 급증하는데 반해, 이용자 증가는 정체 상태이므로 신규 망 건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 그러나 최근 유출된 KT의 ‘메가패스 사업 경제성 분석’보고서는 KT의 초고속인터넷 영업이익 흑자는 증가하는 추세인 반면, 투자비는 감소하는 추세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가 ADSL이나 VDSL 등에 한정된 투자비를 산정한 것이며, 기간망 투자 등 회사 전체적인 투자나 수익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KT 초고속인터넷 영업이익이 2004년 223억원 적자에서 2005년 2240억원 흑자, 2008년에는 9961억원으로 그 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 반면, 코넷 백본 투자비용은 2003년 384억원, 2004년 500억원, 올해 585억원 등 한해에 100억원 남짓 증가하는데 그쳐 백본 투자 비용이 수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초고속인터넷 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도 종량제 주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보고서를 인용,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하향접속속도 1Mbps 당 비용이 월 3.88 달러(약 3,900원)로 일본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가계 소득을 반영한 비용은 월평균 소득의 0.08%로 조사대상 10개국 중 한국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KT의 모든 서비스를 위한 신규 투자비용을 전부 부담해야하는가 하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대정부 질의에서, 무소속의 류근찬 의원은 “담당 부처인 정보통신부가 KT의 서비스 원가 분석조차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지난 해 7월 초고속인터넷이 기간통신역무로 편입되어 올해 4월부터 관련 사업의 영업보고서를 받게 되면 원가분석이 가능해진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KT가 초고속인터넷 원가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객관적으로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인터넷 종량제가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 전망이다.

종량제는 정보격차를 심화시킬 것
종량제 옹호론자들은 헤비 유저(heavy user)와 일반 이용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상위 5%의 이용자가 전체 트래픽 40%를 차지하고 있다(혹은 상위 20%가 80%의 트래픽을 점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KT 이용경 사장도 블로그에 쓴 글에서 “쓰는 만큼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 아닐까요?”라고 반문하고 있다. 전기, 수도, 전화 등이 종량제로 요금이 부과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논리대로라면 종량제로 변경될 경우 대부분의 가입자는 요금이 크게 내려가야 하지만, KT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이 가격 하락을 감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종량제가 시행되더라도 개개인의 요금 부담이 커지는 방향으로만 시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인터넷을 전기, 수도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기, 수도의 경우 이용을 통해 소비되어 없어지며 새로운 소비를 위해서는 계속적인 생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은 소비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은 도로와 같이 초기 구축비용은 많이 들지만 한번 건설되면 계속적인 이용이 가능하며 관리?유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한정된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하는 문제는 존재한다. 지금도 속도에 따라 차등화된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종량제는 정보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부유층에게는 추가적인 요금이 큰 부담이 아니지만, 서민층의 인터넷 이용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망에 대한 접근을 단지 시장 논리가 아니라 보편적 서비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즉, 단순히 ‘수익자 부담 원칙’이 아니라 이용자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량제 시행으로 인한 부정적 외부효과를 고려해야
종량제를 시행하기 위해 해결해야할 기술적, 제도적 과제도 만만치 않다. 네티즌들은 종량제를 논하기 전에 지역별로 회선 서비스 품질에 차이가 존재하는 불합리함이나 현행 계약상의 속도가 나오지 않는 문제 등을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기나 수도와 달리, 트래픽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이 원치 않는 스팸 메일이나 바이러스 등으로 야기된 트래픽, 혹은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트래픽 등을 포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내용에 따라 과금하기 위해 이용자의 트래픽을 분석한다면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요금부과를 명분으로 이용자가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나 콘텐츠 등에 관련된 내용이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량제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부정적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만일 종량제로 인해 인터넷 이용 자체가 위축된다면 네티즌의 접속에 기반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인터넷 콘텐츠, 게임 등의 산업과 전자 상거래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사회, 문화적으로도 인터넷에 기반한 민주적 참여나 자발적 문화 생산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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