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3호 Cyber
표현의 자유 VS 명예훼손, 법은 누구 손을 들까
사기업에 의한 표현의 자유규제, 정당한가

양희진  
조회수: 3922 / 추천: 58
인터넷의 등장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갈등과 긴장의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 누구나 정보의 발신자와 수신자의 지위를 겸할 수 있게 되면서, 언론이나 출판물에 버금가는 위력적 매체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 통신의 동시성은 국가권력에 의한 사전검열을 무력화시켰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글쓰기를 하고 등록(업로드)을 하는 순간 표현은 이미 발표되어 버리므로, '행정부에 의한 내용심사 없는 표현의 발표 금지'라는 의미에서의 검열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규제방식의 변화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한 때는 그러한 우려가 터져나왔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서 인권침해적 표현물이 범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칼날로 인터넷 상의 표현들을 규제하려고 하는 공권력의 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더 자주 문제되는 것들은 다른 개인들의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저작권 침해와 같은 것들이다. 따라서 규제의 방식도 정부 수사권에 의한 강압적 방식에서 행정적 단속이나 사법적 판단이 매개된 규제 방식, 또는 심지어 사기업에 의한 규제로 변화하고 있다.

명예훼손분쟁의 급증
특히 명예훼손의 문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 새로운 법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명예훼손 분쟁은 매년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다. 검찰에 적발된 온라인 명예훼손 사범은 2000년 97명(구속 27명)에서 2002년에는 273명(구속 18명)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개인들 간의 분쟁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형사처벌은 행위자에게 가해지고 있는 반면 권리침해로 인한 민사적 손해배상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에게 이루어지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명예훼손한 개인보다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금전적 손해배상능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국통신하이텔에 대하여 손해배상이 청구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서비스이용자의 명예훼손 행위와 관련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일정한 책임을 부여하다보면 서비스제공자로서는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알아서' 이용자들의 표현을 규제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한 사례가 있다.

2003년 1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약관을 개정하여 "종교적, 정치적 분쟁을 야기하는 내용으로서 이러한 분쟁으로 인하여 다음의 업무가 방해되거나 방해되리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공개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약관 개정의 발단은 이러하다. 2002년 한 종교단체가 다음카페 상에서 동 종교단체를 비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안티카페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동 카페의 폐쇄를 요청해 왔다. 처음에 다음쪽에서는 종교적 논쟁에 대하여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는 점과 명예훼손 사안에 대하여는 불개입정책을 취한다는 이유를 들어 법원이나 검찰을 통하여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서 해결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종교단체 회원들이 일주일간 전화 및 회사방문으로 항의를 전개하게 되어 회사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자 다음은 동 종교단체의 안티카페가 회사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안티카페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안티카페가 직접 업무방해행위를 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하이텔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7년 한국통신공사노동조합이 파업기간 중에 올린 게시물을 하이텔이 서비스약관에 근거하여 삭제한 바 있었다. 문제가 된 약관은 다음과 같다.

「이용자가 게재 또는 등록하는 서비스 내의 내용물이 ① 다른 이용자 또는 제3자를 비방하거나 중상모략으로 명예를 손상시키는 내용인 경우, ②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의 정보, 문장, 도형 등을 유포하는 내용인 경우, ③ 범죄적 행위와 결부된다고 판단되는 내용인 경우, ④ 다른 이용자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 ⑤ 게시 시간이 규정된 기간을 초과한 경우, ⑥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내용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회사가 이용자에게 사전 통지 없이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형식적으로는 계약에 따른 조치이지만 서비스 이용자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행정부의 행정처분에 의한 것은 물론 행정부에서 제정하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의하여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부터 정부에 의한 행정편의적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었다. 나아가 헌법은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이 이렇게 엄격하게 제한하려고 하는 기본권 제한이나 침해가 기업에 의하여 또는 개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위 하이텔 사건에서 한국통신공사노동조합이 하이텔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 대법원은 하이텔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된 약관과 비슷한 규정이 당시 전기통신사업법 등에도 있다는 점, 약관 해석에 합리성이 인정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하이텔의 조치는 적법하다고 보았다. 즉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약관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그 약관은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이버가처분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이버가처분제도란 ‘이용자의 공개게시물로 인한 법률상 이익 침해를 근거로 제3자가 이용자 또는 다음을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법적 조치와 관련된 게시물의 삭제를 요청해 오는 경우 다음이 동 법적 조치의 결과가 있을 때까지 관련 게시물에 대한 접근을 잠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안티성형카페가 표현의 자유침해를 이유로 법원에 인터넷동호회폐쇄금지가처분 신청했으나 법원은 기각하였다. 다음은 법원의 이런 결정을 사이버가처분제도의 적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가처분은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고 법원의 정식 판단 이전에 다음이라는 사기업에 의하여 다른 사인의 권리가 적극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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