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3호 미디어의난
DMB 사업, 배제된 '수용자'의 입장은 무얼까?
주체적 액세스 권리를 위한 정책을 생산해야

조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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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논란 속에서 지속되어 온 디지털 방송 전환정책과 위성 및 지상파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IP-TV, 휴대인터넷(wibro) 등은 디지털 기술 수렴에 따라 속속 등장하고 있는 뉴미디어다. 그 이름만 보더라도 알 듯 모를 듯 어렵기만 하다. 단적인 예로, 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는 핸드폰이나 전용 단말기를 사서 자동차와 기차, 집과 사무실에서도 2.1인치에서 7인치의 화면으로 뉴스와 드라마를 볼 수 있고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IP-TV는 인터넷 하는 것처럼 방송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고, 광대역 접속이 가능한 그 인터넷을 또한 이동하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휴대인터넷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다. DMB의 경우, 위성DMB와 지상파DMB가 별개로 추진되어오면서 그 (휴대폰) 단말기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위성DMB 전용단말기를 구입한 사람은 지상파DMB를 보기 위해선 80만원을 상당하는 새로운 전용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휴대인터넷 역시 새로운 전용 단말기가 필요하다. 지상파DMB를 빼면 이용료도 별도다. 돈만 있으면 아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TV도 못 볼 날이 올 수 있다. 이는 최근 디지털 뉴미디어 산업, 정책을 ‘난개발’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이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수용자들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디지털 뉴미디어 산업?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과 정책 추진, 사업자 선정 과정이 이에 대한 비용을 대고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용자의 입장과 의견이 배제되어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부와 기업에 대고 ‘수용자’의 의견과 권리가 배제되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이러한 디지털 뉴미디어의 도입 과정에 수렴되고 반영되었어야 할 수용자의 의견과 입장이 무엇인지 사실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수용자의 의견과 입장은 단일하지도 않지만 무엇인지 잘 알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별적으로라도 혹은 시민사회단체 차원에서도 이러한 디지털 뉴미디어가 도대체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어도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최신 기술의 발달 수준을 못 좇아간다면 논의 자체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바로 그런 이유로 더 세심해야 할 담당 부처나 기관들은 폐쇄적 추진 방식으로 논의의 민주적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는데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래서 기업들의 시장 확대와 정부의 막무가내식 정책 추진, 그에 영합하는 학계, 장밋빛 환상을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의 사자동맹(정부-기업-언론-학계)에 대한 아주 강력한 비판과 개선에 대한 요구를 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와 함께, 소비자/시청자/수용자/이용자/생산자로서의 우리 입장이 뭔지, 우리가 제기해야 할 의견과 정책대안은 무엇인지, 정말 더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면 이를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이제 우리 스스로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올해 온갖 뉴미디어들에 사업자들이 선정되고 단말기들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개시되는 시점을 맞아, 시민사회의 자기 (재)조직화가 시작되기도 했다. 지난 3월 말 대대적으로 발족하여 활동을 시작한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는 다양한 방송 정책 사안에 대해 70여 개 회원단체들 내부의 편차를 줄이기 위한 내부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4월 말 이후 방송융합시대의 시청자주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를 중심으로 한 월례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프로듀서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방송통신구조개편위 TFT가 구성되어 주로 방송통신융합 규제기구 구성방안 및 법제도 정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다른 한편,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미디액트 등은 미디어정책포럼을 구성하여 뉴미디어정책과 사업 추진 과정에 대한 개입, 공개 세미나(진보적 컨텐츠, 미디어교육, 퍼블릭액세스 구조, 공공적 성격의 프로그램제공자 혹은 콘텐츠제공자 등), 융합규제기구를 통한 법제 대응을 주요 활동으로 계획하고 있으며, 이미 3월 말에 “뉴미디어 난개발과 배제된 수용자권리를 찾아서”라는 공개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미디어 진보를 위한 모임(가칭)은 디지털 뉴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진보적 콘텐츠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대안활동을 펼치기 위한 정보통신운동, 미디어운동, 그리고 문화운동이 각 운동의 의제들과 성과들을 공유하고, 공동 활동 구조를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두가 2005년 벽두부터 불과 4개월이 지나지 않은 기간 동안 조직된 것들이다. 새로운 조직, 연대 혹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기대는 무엇인가? 새로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대체의 통합적 흐름으로 이어질 것인가? 사실 새로운 조직(화)은 기간의 각 분야와 영역에서의 자기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공유하고, 또한 상호 비판을 통해서 반성하며, 나아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그 변화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한 단계 더 발전된 운동의 방향과 프레임을 모색하는 계기이자 현장이어야 한다. 막무가내의 (뉴)미디어 난개발을 막아내고 정책대안과 진보적 콘텐츠를 생산하여 참여하는 운동을 모색할 뿐만 아니라, 바라건대 각 운동 간의, 전체 사회운동 내부의 활발한 상호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미디어에 대한 기술적 접근 장벽이 낮아졌고,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의식의 고양과 맞물려 인터넷 등의 대중적 공공 영역의 출현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알려내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진 대중들이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보다 민주적인 미디어 수용?이용의 가능성은 생산자와 수용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제작 주체들의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높아졌다.

이러한 자율적 기술의 활용과 문화 활동은 디지털 뉴미디어가 대안적이고 독립적이며 공동체를 위한 우리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이는 공공적인 차원의 디지털 뉴미디어 정책 속에서 활성화 되어야 하고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한 전략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기술결정론과 신속주의, 실적주의에 경도된 정부와 기업에 대한 비판은 보다 더 강력해야 하며, 동시에 미디어에 대한 참여적인 액세스 권리가 보다 중요하게 보장되고, 그리고 조직된 우리의 힘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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