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3호 사이버
내가 ‘싸이질’을 할 수 없는 이유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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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인터넷에서는 미니홈피와 블로그 바람이 불면서 몇몇 사이트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중 싸이월드(www.cyworld.com)는 미니홈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싸이월드에 접속해서 글을 쓰고 친구를 방문하며 논다”는 의미의 ‘싸이질’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학교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쓰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백여개의 모니터 90%이상에서 싸이월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싸이월드의 무엇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도록 했는가?

싸이월드는 가입하게 되면 개인이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을 퍼나 놓을 수 있는 ‘미니홈피’라는 작은 홈페이지가 주어진다. 글과 사진, 이미지 그리고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일촌맺기’라는 기능으로 가까운 친구, 동창, 가족, 애인, 직장 동료 등의 사람들과 일촌 관계를 설정하고, 웹에서 활발하게 관계를 맺는다.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람찾기’ 기능에서 ‘실명’과 ‘출생연도’ 또는 ‘이메일’ 등을 통해서 연락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다가 만나기도 한다. ‘세상은 일곱 다리만 건너면 누구든 알 수 있다’는 것을 실현시켜 주는 공간이다. 자신의 홈피에 글을 남긴 사람의 홈피를 방문해서 글인사를 하고, 그 사람의 미니홈피를 보다가 다른 사람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면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드나든다. 또한 커뮤니티에 가입하면, ‘클럽회원 파도타기’라는 기능을 통해 클럽에 속해있는 다른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구경가고 글을 남길 수 있다.

미니홈피는 주인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포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온?오프라인에서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홈피를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체계가 잘 짜여져서, 사람들의 자기 표현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리고 관계망을 넓히도록 기능한다. 하지만 이것에 불편함을 느껴면서 ‘싸이질’을 접는 사람들도 한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 실명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불특정 다수를 비롯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묘하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쉽게 자신을 열수가 없다. 싸이월드는 그런 기능이 많은 공간으로 ‘사람찾기’ 기능은 ‘실명’과 ‘출생연도’, '이메일'을 통해서 사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헤어진 애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을 뒤지거나, 스토킹을 하고 싶은 사람의 미니홈피를 몰래 훔쳐보면서 쾌락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성애자, 한부모 가정, 이혼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냈을 때 혐오적 시선이나, 차별적 상황에 놓이기 쉬운 이런 공간에서 자신의 ‘실명’을 드러내며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 나의 여자 후배는 싸이월드를 즐겨 이용하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지만 자신이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예전 직장에서 만난 사이기 때문에 둘 모두를 아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알게 될까봐 철저히 위장을 한다는 것이다. 애인과 함께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도 애인이 올리면 자신은 올리지 않음으로써 함께 가지 않은 것처럼 위장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실명으로 운영되며, 오프라인에서 맺은 관계를 온라인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경우,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다. 연락이 끊어졌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싸이월드에서 만나서 반가워하기도 하고, 반가운척 하며, 자신의 행복한 모습은 보이지만, 이혼을 했거나, 트랜스젠더이거나, 동성애자라고 싸이월드에 올리기는 어렵다.

실명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파생되는 문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가부장적이고, 기득권 중심의 사회체계에 잘 편승해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편안하게 이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고, 이혼, 비혼, 한부모 가족으로 그리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은 더 없이 불편하고 숨막힌다. 싸이월드에는 ‘잠수’문화가 존재하는데, 간혹 친구들 중에 미니홈피를 닫고 싸이월드에서 사라지면, 사람들은 그 친구가 힘들어서 당분간 이 공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임을 짐작한다는 것이다. 그 공간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즐거운 모습만을 공유하는 아이러니한 곳이다.

최근 싸이월드는 미니홈피 등을 통해 스토킹이 일어나거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불만사항들이 접수되면서 사생활 보호기능을 추가했다. ‘방명록 비밀글 기능’ 등을 추가해서 본인의 사생활을 좀더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체계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는 이곳저곳을 클릭하고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정보통신부에서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를 권고하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주민번호 사용금지와 익명성 보장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싸이질’과 같은 유행어를 만드는 거대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어떻게 구성해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문화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익명의 특성이 남성들에 의해 이용되면서 폭력적으로 변화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스팸, 온라인 성폭력 등) 그렇다고 폭력적인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깨끗한 인터넷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소수자의 입을 막아버리는 방식 또한 폭력적이다. 익명성을 보장하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 나가느냐가 핵심이다.

실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가 늘면서, 소수자들은 솔직한 ‘나’를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명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실명을 사용하지 않을 때의 대안도 고민할 때이다. 소위 사회의 정상 범주만을 수용하고자하는 인터넷 문화는 지양하고,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도 편안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성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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