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나와
우리의 월경, 우리가 관리한다!
피자매연대(http://bloodsisters.gg.gg) 느림님

임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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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애: 피자매라는 이름이 도발적이에요.

느림: 사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블러드시스터즈(bloodsisters)를 번역해 사용했어요. 생리라는 것이 여성에겐 숨기고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피’라는 것도 무섭고 혐오스런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걸 반대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거죠. 왜 피라는 것이 공격적이고 폭력적 상징이 되어하죠? 여성에게 생리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또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도 바로 피잖아요. 피는 삶이고 생명이고 따뜻함인데 말이죠. 그런 의미를 지켜가겠다는 거죠.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젠 점점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임정애: 피자매연대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느림: 처음엔 생각을 같이하는 몇몇 친구들이 소모임을 만들어 지내다가 2003년 월경페스티벌 때 처음 공개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월경페스티벌에서 ‘탐폰은 독이다!’는 이슈를 들고 나왔죠. 아마 저는 2004년부터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공부도 하게 되고 「꿈꾸는 지렁이들」 같은 책도 읽으면서 에코페미니즘에 관한 고민들을 하게 되었어요. 책을 보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대안달거리대를 쓰다 보니 좋아서 공부하게 됐는데, 이게 하나의 대안점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2004년에는 거의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어요. 대학 4학년이면 졸업반이잖아요. 딴 애들은 취직준비 때문에 바쁜데, 저는 한 달에 4-5번씩 지방에 내려가 워크샵을 뛰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무슨 홍보나 광고를 특별히 한 건 아니지만 믿음을 기반으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게 바이러스처럼 퍼지다보니 그때부터 운동이 커 갔던 것이죠. 아무튼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임정애: 처음부터 이 활동에 동의했나요?

느림: 처음엔 이 운동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또 우리에게 바느질과 빨래를 시키는 것인가’, ‘이런 건 돈 많고 할 일 없는 아낙네들이나 만들어 쓰는 것 아닌가’, ‘나처럼 게으르고 일상적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에겐 불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거부심이 들었죠. 그러다 그 해 겨울, 돕이라는 친구에게 달거리대를 선물 받으면서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써보니까 좋더라구요. 나처럼 게으른 인간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원래 저는 생리통이나 피부트러블 같은 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써보니 느낌이 너무 좋은 거에요. 그래서 아... 그 동안 속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정애: 기존 생리대를 반대하는 이유가 뭐죠?

느림: 예를 들어, 한 달에 5-6일정도 생리를 하고 하루에 생리대를 적어도 4-5개씩 쓴다고 해봐요. 그럼 한 달에 20-30개, 일년이면 240-360개 정도죠. 앞으로 생리를 35-40년 정도 하면 12,000-15,000개정도 쓴다는 계산이 나오죠.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300-500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면 태우면 되지 않느냐... 태우려면 석유를 뿌려야 하는데 그러면 또 거기서 다이옥신이 발생한다는 거죠. 그러면 결국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결론이 나오죠. 그리고 더 가슴에 와 닿았던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생리대가 제3세계의 숲과 노동의 착취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유한킴벌리가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만 외치면 뭐하냐는 거죠. 남의 나라 숲은 다 황폐화시키면서 말이죠.

임정애: 이주노동자운동 후원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는 건가요?

느림: 자본주의라는 것이 결국엔 제3세계에 대한 착취,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제1세계의 풍요를 더욱 공고히 만드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잖아요. 처음엔 생리대랑 이주노동자가 무슨 관계냐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고, 여성이 무슨 소수자냐라고 반문하는 분도 있었어요. 우리가 주로 집중하는 부분은 제3세계 운동과 연계되고 소수자들이 자본주의 질서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억압당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미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운동과 함께 하는 것이죠. 우리는 주로 소수자운동과 결합해 운동을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은 양심을 위한 병역거부자운동과 연대해 기금을 준비하고 있어요.

임정애: 달거리대 처음 만들면서 어려운 건 없었나요?

느림: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죠. 쪼만해 보이는 거 그대로 다운받아 만들었다가 다 새버리고... 하하하...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됐어요. 근데 만들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있죠. 그래서 혼자 40개 정도를 만들게 됐어요. 바느질이라는 게, 자신의 필요에 의해 시작하고 예쁜 천을 골라 작업을 하다보니 재미있더라구요. 그게 많이 쌓이니까 판매를 고민한 것이죠. 그러다 ‘언니네’ 후원주점에 대안달거리대를 가져가서 판을 벌였는데, 친구들이 쓸만하다고 하더라구요. 얼마 뒤 워크샵이 있어서 한번 갔더니만 25명이 넘는 사람을 우리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매닉 혼자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때 매닉이 나에게 ‘달거리대 만들 수 있겠냐’라고 해서 만들 수 있다니까 ‘그럼 한번 가르쳐봐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그게 피자매 활동의 처음이에요. 얼떨결에 가서 얼떨결에 시작한 거죠. 하하하...

임정애: 달거리대 워크샵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느림: 일단 바느질만 하거나, 강의만 하지 않아요. 우선 왜 대안생리대를 만들어야 하는가 부터 시작해 실제로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면서 직접 만들어 보죠. 보통 3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죠. 사실 이 활동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지만, 실제 만드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죠.

임정애: 지방에서 워크샵을 하면 반응이 어떤가요?

느림: 반응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거의 비슷해요. 작년에 전북대 총여학생회에서 워크샵을 진행했었어요. 이후에 연락을 해보니 그분들 자체적으로 이런저런 모임들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대구의 경우는 고산성당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신부님이 초청을 해주셨고 생협활동을 하시던 어머님들을 중심으로 워크샵을 진행했죠. 지금은 스스로 만들어 판매도 하시고 스스로 학교에서 워크샵도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임정애: 어려운 점은 없나요?

느림: 사실은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가야 하는데, 기반이 너무 부족해요. 연결이 되지 않고 있는 부분도 많아요. 그렇다고 중앙 집중적으로 다 모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시간여유를 좀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기의 지혜를 저쪽으로 모으기도 하고 건네기도 하는 작업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임정애: 현재 피자매연대 활동가는 얼마나 되나요?

느림: 한 5-6명쯤 되는 거 같아요. 사무실에 돌아가며 상근 하는 친구는 돕, 나니, 저 정도고 옹제나 곤 같은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업팀도 있어요. 이 활동에 공감을 하고 함께 달거리대를 만드는 것이죠. 사실 손바느질 1시간정도 해서 3,000-4,000원에 판매한다는 게 굉장히 불합리할 수 있거든요.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하고 계신분도 있어요.

임정애: 대안 달거리대 홍보는 어떤 거 같아요?

느림: 아직은 잘 모르는데, 이제 곧 알게 될 꺼에요. 하하하. 제가 작년에 전국 가정교사 직무연수 때, 직접 가서 강연을 했고 어제도 보건교과 선생님들 연수 때도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반응이 좋았어요. 학교에서 직접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만들어 보겠다고 하시더군요. 작년에는 민우회에서 하는 초경캠프나 월경캠프에서 진행을 했고 좀더 교육적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임정애: 달거리대를 처음 만드시는 분들은 어려워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느림: 어렵지 않아요. 일단 견본을 사이트에 올려놨고 만드는 방법도 자세히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천을 구해 바느질을 하고 단추를 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인터넷으로 재료를 주문하거나 완성품을 원하면 보내주기도 해요. 재료는 주로 융을 사용하는데 어떤 융은 쓰다보면 확 줄기도 하고 털 같은 것이 빠지기도 해요. 그런데 쓰다보니 안정적으로 오래 쓸 수 있는 융이 따로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융을 종류대로 구해놓고, 직접구입하기 어려운 분들은 저희에게 주문을 하면 저희가 원가 그대로 보내드리기도 하죠.

임정애: 홈페이지에서 여러 가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겠군요.

느림: 사실 월경에 대한 이야기는 어딜 가도 쉽게 할 수 없는 부분이고 혼자만 늘 간직했던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타인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받았으면 그걸 나눴다는 것 자체로도 너무 기쁜 거에요. 그래서 내가 해 본 경험에 대해 누군가 물어보면 너무 대답 해주고 싶은 거죠.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가다보니 사이트가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러다 생리에 대한 기존 담론에 대해 비판적 의견들도 나누게 되었죠.

임정애: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느림: 항상 이동하면서 바느질을 해요.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가끔 물어봐요. 그럼 ‘생리대 만들어요’라고 말하죠. 그럼 귀속말로 조용히 ‘어 이게 그거에요?’ 그러죠. 주변에서 얘기만 듣고 직접 써본 적이 없다는 분들에게 한 세트 선물로 드리고 직접 바느질을 하고 단추를 달라고 하기도해요. 얼마 전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 그냥 누워있으면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바느질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하든지 말든지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2-3일 동안 지내다보면 너무 심심하잖아요. 같은 병실에 있는 분에게 ‘혹시 이게 뭔지 아세요?’라고 제가 먼저 말을 건냈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길래, 면생리대라고 하니깐 관심을 가지시더라구요. 그러면, 바로 즉석 워크샵에 들어가는 거죠. 간호사언니들도 ‘이게 뭐에요’라면서 관심을 갖더라구요. 이렇게 해서 움직일 때마다 설명을 시작하고 바로 워크샵 들어가고 그랬죠. 직업병이죠. 하하하...

임정애: 궁극적으로 꿈꾸는 건 어떤 것인가요?

느림: 저는 한국에서 목화를 심어서 유기농으로 면생리대 만드는 게 꿈이에요. 사실 지금도 융을 쓰고 있지만 천연재료라 해서 다 유기농도 아니고 중국에서 대량 경작하는 거 싸게 사와서 우리가 쓰고... 그쪽 농민들은 또 힘겹게 살아가거든요. 우리도 대안을 지향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손으로 재배한 유기농 면화로 값싸고 편하게 쓸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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