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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기획
그래도, 지문날인은 위헌이다!
헌법재판소, 지문날인제도 합헌 판결에 비판 줄이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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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공현 재판관)는 5월 26일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열 손가락의 회전지문과 평면지문을 날인하도록 한 부분 및 경찰청장이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에 날인되어 있는 지문정보를 보관·전산화하고 이를 범죄수사목적에 이용하는 행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선고했다.

반면 소수의견을 개진한 송인준, 주선회, 전효숙 재판관은 다수의견이 ‘행정의 편의성을 국민의 기본권보다 앞세운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문날인반대연대를 비롯한 39개 인권사회단체들은 다음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헌재의 결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학계와 법조계의 전문가들 역시 헌재 다수의견의 논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

주민등록법은 치안유지·국가안보 위한 것?

헌재는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으로 “주민의 거주관계 파악 및 행정사무의 적정, 간이한 처리라는 주민등록제도 일반에 관한 입법목적 외에도 치안유지나 국가안보가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된 것이고, 이러한 입법목적에는 날인된 지문의 범죄수사목적상 이용도 포함”한다고 밝혔다. 즉 주민등록법의 본래 목적이 범죄수사와 불순분자색출을 위한 것이므로 이를 위해 지문을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가 말한 치안유지·국가안보의 목적은 법조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등록법 제1조(목적)에는 “주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거주관계등 인구의 동태를 상시로 명확히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치안유지·국가안보라는 목적은 다수의견을 개진한 재판관들의 주관적인 법해석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일반인은 알 수 없었던 주민등록법의 숨은 목적인 셈이다.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헌재가 주민등록법이 전국민을 범죄인 또는 불순분자로 간주하고 감시통제하기 위한 법이라는 걸 인정한 셈”이라고 실소하기도 했다.

한편, 그러한 목적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전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이 효과적이고 필수적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지문날인반대연대의 윤현식 활동가는 “어느 덜떨어진 간첩이 지문감식으로 적국의 공안기관에 체포되는가?”라고 반문하며 “헌재는 지문정보만으로 간첩이나 초범을 잡은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나 자료 없이, 아마도 필요할 것이다라는 추측에 근거해 판결이 아닌 소설을 썼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우무인’ 특정 간과, 실수인가 악의인가?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헌재의 법률 해석에 누가봐도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는 것이다. 주민등록법에는 경찰청의 열손가락지문의 수집, 보관, 이용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주민등록증’ 수록사항의 하나로 ‘지문’을 포함하고 있고, 자세한 내용은 시행령과 서식에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헌재는 “‘지문’을 규정하고 있을 뿐 ‘오른손 엄지손가락 지문’이라고 특정한 바가 없기 때문에 열손가락 지문날인의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발표한 정책논평은 헌재가 언급한 바로 그 주민등록법시행령 제33조의 제5항에 ‘우무인’, 즉 오른쪽 엄지손가락 지문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헌재가 과도하게 지문날인의 법적 근거를 끼워맞추면서도, 단순한 사실도 확인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묵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성명서에서 “주민등록법 본문에서도 아닌 시행령 저 뒤쪽 별첨 30호 서식란에서야 발견되고 있는 것을 헌법이 요구하는 기본권 제한의 명시적인 법률적 근거라는 논법을 납득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주민등록증에 수록되는 지문에 대한 사항이지 경찰이 전국민의 열손가락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활용하는 것에 대한 사항은 아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개인정보 침해의 근거?

소수의견이 말하는 바와 같이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를 경찰청장이 전산화하여 임의 활용하도록 하는 근거가 주민등록법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 근거를 이번 헌법소원의 대상인 주민등록법이 아닌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서 찾고 있다. 이 법률에는 “행정기관이 소관업무를 수행하는 범위 안에서 개인정보를 보유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헌재는 이를 두고, 경찰은 자신의 소관업무인 범죄수사목적을 위해서 지문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보유·활용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법률의 명칭에서부터 나와있듯이 이 법률은 개인정보의 보호를 위한 법이다. 개인정보의 보호를 위한 법률이 개인정보 침해가 합헌이 되는 근거 법률로 돌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률은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는 수집자체를 금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원칙적으로 적용하자면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지문정보의 수집 자체가 불법인 것이다. 다수의견이 언급한 해당 조항 역시, 그 의도는 소관업무를 수행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개인정보를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앞서의 논평에서 “경찰이 전국민의 지문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소관업무를 수행하는 범위’에 해당한다면, 헌재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범죄자이거나 범죄와 관련을 맺고 있거나 또는 실종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39개 인권단체 역시 공동성명서에서 “다수의견은 법률제정의 취지와 목적조차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문날인제도로 인한 정보주체의 불이익 크지 않다?

위와 같은 논리로 다수의견은 지문날인제도가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는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다수의견은 지문날인제도가 “과잉금지의 원칙의 위배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등 모든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말해 지문날인제도가 합헌임을 최종 결정했다. 그 판단의 근거는 크게 두가지, 국가안보와 효율성이다. 헌재는 체제대립이 상존하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의 신원확인을 완벽히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는 열손가락지문날인제도만큼 효율적인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너무도 간단히 이 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하고 있다.

민변은 이에 대해서 “온 국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세계에 유래없는 이 비문명적 제도가 과연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여전히 유지되어도 좋은 것이냐”고 질문하며, “헌재는 사실상 ‘효율적이므로 합헌이다’라는 대답 아닌 대답, 경찰청은 할 수 있을지 모르되 헌재가 하여서는 아니되는 그러한 종류의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헌법 이념 수호, 헌재에게 맡길 수 없다”

헌재는 근래 들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 기각, 행정수도 이전 위헌, 국가보안법 합헌 등 수차례 걸쳐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때마다 그 결정을 두고 여러 비판이 있었지만, 헌법이념의 최후의 보루로서 헌재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것, 즉 국민의 민주주의적 동의의 구현물은 헌법이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이 아니다. 현재의 헌법재판소는 민주화투쟁의 성과로 1988년에 처음 만들어져 고작 20년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국가기구일 뿐이다. 민주화 투쟁을 통해 헌법재판소를 세우면서 국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공권력으로 인해 침해되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기관, 말 그대로 인권의 최후 보루였다. 그러나 지금의 헌재는 그 소망에 부응하고 있는가?

정보인권활동가모임의 한 활동가는 “헌재가 이렇게 자의적인 판단으로 권위를 남용한다면, 이제 더 이상 헌법 이념과 인권의 존엄성을 헌재에게 맡길 수 없다”면서 “이번 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지문날인제도가 위헌적인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지문날인제도의 철폐를 위해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문날인반대연대는 ‘지문날인제도 폐지/5?26 헌재판결규탄 선언하기’ 웹페이지(finger.jinbo.net/526)를 만들어 각계각층의 선언을 촉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준비해왔던 주민등록법 개정안의 입법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주민등록법이 국민감시와 통제를 위한 법이며,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 전혀 국민의 개인정보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법임을 재확인했다”면서 주민등록법의 개정과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보다 강력한 법제를 마련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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