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정책제언
성폭력범죄 및 피해자인권의 현주소
전자팔찌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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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가해자인권에 대한 보편적가치 주장이 가지는 위험성

한나라당의 법안 도입이 발표됨에 따라 많은 단체와 언론에서 이 법안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는 우려의 지점은 ‘가해자인권침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를 말하겠다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협박이 될 수 있는 현실,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음을 입증해내도록 요구받는 현실, 자신의 생명권을 포기할 각오로 저항하지 않는 한 피해자로 인정될 수 없는 현실들이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피해자의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들은 반대로 우리 사회 속에서 성폭력가해자들이 얼마나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를 반증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해자 인권침해 우려에 대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피해자 인권의 소외를 초래할 수 있으며, 가해자의 특권에 대한 보호주장에 다름 아닐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구체적 현실 속에서 그 권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미 차별적인 권력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 현실적 토대 속에서 그 권리가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가 하는 사실에 대한 구체적 검토없이, 단지 명제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로서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권력적 구조의 차별과 폭력을 재생산해내는데 기여할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번 한나라당의 전자팔찌제도에 대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가해자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사법적 처벌의 현실

한나라당은 이번 법안 도입의 배경과 취지를 밝히면서, 성폭력이 재범율이 매우 높은 범죄라는 사실을 중요한 현실적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형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성폭력 가해자들의 재범으로 인한 피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재범율을 낮추고 성폭력범죄로부터의 사회적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는 부분의 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폭력 범죄는 분명 재범율이 매우 높은 범죄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통계수치 속의 한국사회가 아닌. 실제하는 현실 속에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남성중심적인 성문화에 대한 관용적 자세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성폭력범죄의 경우 수사, 공판과정에서의 피해자에 대한 억압적이고 2차 가해적인 문화 속에서, 신고율은 실제 성폭력 발생율의 1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설령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하였다 하더라도, 신고된 10%의 사건 중 경찰조사와 검찰조사를 거쳐 기소판정을 받는 경우는 그 중 45%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게 기소가 되어 정식 재판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가해자에게 실형이 부과되는 경우는 또한 매우 적다.

그러한 까닭에 많은 가해자들이 버젓이 우리 주변을 다시 활보하고, 다시 또 다른 피해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아무런 반성이나 성찰 없이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폭력은 재범율이 매우 높은 범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분명, 우리사회 속에서 성폭력 문제의 제도적 대안에 대한 고민의 방향을 한나라당이 근거로 한 통계수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져가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나라당이 성폭력범죄를 근절하고, 성폭력가해자로부터의 사회적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하겠다며 만든 이번 법안은, 그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취지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형량 완화 효과에 대한 우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두 번째로 가지게 되는 우려의 지점은 전자팔찌 제도가 오히려 성폭력범죄자의 형량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전자팔찌제도의 인권침해논란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인권친화적인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까지 있다. 이 주장의 근거는 가해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구금하는 방식이 문제해결(가해자의 교화)에 실효성을 갖기 어려우며, 오히려 더 인권침해적이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가해자를 격리시키기 보다는 사회로 통합시키면서 이들을 감시하는 것이, 가해자의 인권에도 보다 친화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자팔찌 제도를 형량의 대체나 일부보완으로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안 그래도 낮은 성폭력가해자에 대한 양형정도를 더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전자팔찌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외국 중에는, 전자팔찌 제도가 형량의 대체나 완화의 조건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한나라당이 이번 법안의 제정배경 중 하나로서 밝히고 있는, ‘성폭력범죄의 형량이 비교적 낮으며, 따라서 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자가 사회에서 활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도 배치된다.

성폭력가해자에 대한 통념 강화의 우려

세 번째는 전자팔찌제도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며, 전자팔찌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법안제정 배경 취지 중 세 번째로 성폭력범죄는 성향범죄로서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더불어 이번 전자팔찌제도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던 거의 모든 찬반논의들은 이러한 전제를 그대로 가져와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나라당 측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전자팔찌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가해자는 전자감시가 아니라 정신과적 치료나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의들 속에서 성폭력범죄자는 정신병적이고 이상행동적인 존재로서 매우 특수화된다.(실제로 한 인권단체의 사무국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폭력 가해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너무나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성폭력은 분명 범죄이고, 그들의 여성과 성에 대한 인식적 태도와 관점은 매우 문제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정신병이나 성향범죄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성폭력을 조장하고 관용하는 우리사회의 성폭력적인 사회문화적 문제들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으며, 더불어 가해자를 병자화시킴으로서 일정정도 그들의 책임을 묻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가해자가 결코 특수한 몇몇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범죄인 까닭에, 가해자에 대한 이와 같은 통념의 강화는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오히려 많은 여성들을 피해에 보다 쉽게 노출시킬 우려를 갖게 한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정보독점과 통제권의 확산 및 남용 우려

마지막으로 전자팔찌 제도에 대한 보다 심각한 우려는,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정보취합을 통한 감시 및 통제의 기술이 다른 범죄와 영역으로 보다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이다. 개인 정보취합을 통한 감시 및 통제는 국가 차원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관리감독의 방식으로서 유용성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이의 시도들이 이루어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보기술력의 발전에 관한 우려 중 하나로서 이미 숱하게 지적되어왔던 것처럼, 이는 이러한 국가의 관리 감독 및 통제의 기술이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그 효율성의 관점 속에서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상기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문제는, 국가가 이러한 정보권력과 통제권을 남용할 수도 있다는 데에 놓여져 있다. 따라서 현재 이에 대한 아무런 보완적 방안도 마련되거나 고민조차 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전자팔찌제도의 도입은 이 제도 자체에 대한 우려로서만이 아니라 이를 시초로 한 해당 기술의 타영역으로의 확산에 대한 우려까지, 매우 위험스러워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법안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경우에도, 가해자의 위치추적정보 자료의 수집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보관하며, 누가 열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법안이 나와 있지 않으며, 가해자의 정보수집과 열람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의 정보가 노출될 우려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보완이 이야기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나라당 전자팔찌 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내세우기 이전에, 우리사회의 성폭력범죄 및 피해자 인권의 현 실태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보다 실효성 있고 현실적합적인 정책적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가능한 우려들만을 내세우며, 이 제도로 부분적이나마 그들의 권리와 위험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인권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그리고 현재 우리가 이 법안을 두고 고민해야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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