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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Cyber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통과, “훌륭하다!”
통신사실확인조회 법원영장발부해야

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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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도 가끔 밥값을 한다. 물론 같이 상정된 누더기 과거사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세간에는 빛이 바랬지만, 지난 5월 4일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요청할 때 원칙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헌법이 보장한 통신과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법률인데, 이 법에는 일정한 요건 하에 예외적으로 수사기관 등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 제한조치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우편물을 검열하거나, 통신을 도청 또는 감청하는 통신제한조치가 있다. 이는 원칙적으로 미리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만 집행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 볼 통신사실확인자료 (통신을 한 일시, 시작?종료시간, 로그기록, 상대방 번호 등의 자료를 말한다)의 제공요청이 나머지 제한조치이다. 종전의 규정에 의하면 검사장의 승인만 얻으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있었다.

개정법에서는 이 조항을 삭제하고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할 때에도 반드시 법원의 영장을 받도록 했다. 또한, 긴급한 사안일 경우에 한해 법원 허가 없이도 통신사실을 조회할 수 있도록 했지만, 즉시 법원에 추후 허가를 받도록 해 남용 여지를 줄였다. 그리고 공소제기를 할 것인지 결정한 뒤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조회사실을 통보하는 규정도 신설하여 도청, 감청 등의 통신제한조치와 거의 같은 급의 법원에 의한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한마디로 훌륭하다.

사실 개정 전의 통신사실확인조회는 수사기관에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더없는 무기였다고 한다. 물론 검사장의 승인이 있어야 했지만 동일한 수사조직의 상급자에게서 남용의 위험을 통제하라고 하는 것은 있으나 마나 한 것. 도청, 감청 등 통신제한조치에 대한 규율이 강화되자 최근 몇 년간 통신사실확인조회수가 급증해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우리도 우선 이 법안을 끝까지 반대했던 대검찰청이나 국가정보원의 하소연을 들어볼 여유도 생긴다. 사실 이들은 통신사실확인자료라는 정확한 법률용어가 잘 사용되지 않는 것을 매우 억울해했다.

대검 과학수사과(과장 김종률 부장검사)는 3월 24일 ‘통화내역’ 또는 ‘통화내역조회’라는 용어 대신 ‘통화사실’ ‘통화사실조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관련기관 등에 권고했다. 김 부장검사는 이날 "’통화내역 또는 통화내역조회’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일반인이 느끼기에 통화내용까지 확인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내역’이라는 용어 대신 ‘사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통신비밀보호법 관련 법령이나 정부 공식문건에서는 법률용어로 개념화된 ‘통신사실확인자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수사기관과 언론 등에서 ‘통화내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앞으로 ‘통화사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각 수사기관에 전파하고 언론기관에도 용어사용에 유의해줄 것을 당부했다. (법률신문 2005. 3. 25일자)

수사기관의 주장처럼 통신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확인자료를 요청하는 것은 좀 지나친 거 아닌가라는 반문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헌법이 보호하는 통신비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통신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떠한 통신매체인지, 당사자가 누구인지, 회수나 시간이 얼마인지 등에 관한 일체의 내용이 통신의 비밀과 자유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 헌법학계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헌법재판소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여 그 단초를 열어두고 있다.

헌법 제18조에서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 즉, 통신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통신의 중요한 수단인 서신의 당사자나 내용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공개될 수 없으므로 서신의 검열은 원칙으로 금지된다.(헌법재판소 1998. 8. 27. 96헌마398결정)

물론 여느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제한은 가능하지만 그 제한은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됨이 없어야 한다. 적법절차의 대표적인 구현형태가 바로 법원의 영장주의이다. 검사장만의 승인을 얻으면 거의 제한 없이 통신사실확인조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적법절차원칙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 때문에 개정 전에 이미 이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청구된 상태였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여기저기에 산적한 인권침해를 막아내느라, 정작 이 문제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판하실 틈이 없었나 보다. 2년 동안 묵혀두어 그 공을 국회에 넘기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밥값을 한 김에 ‘180일 이내에 결정을 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법 제37조는 훈시조항이다.’ 라고 헌법재판소법을 바꾸어주던지, 아님 헌법재판소의 심판업무를 대폭 줄여라. 경로우대 모르나. 과로로 돌아가시겠다.)

칭찬을 하고 시작하려니, 첫 글부터 맹숭맹숭해졌지만 오래 살기 위해선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 다만 다음과 같은 일들은 늘 있을 수 있으니 너무 좋아하지는 말고.

지난 5월 4일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KAIT)에 따르면 KAIT 한문승 팀장은 최근 정보통신부 가평 수련원에서 경찰청 등 수사당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수사당국이 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법규에 따라 수사를 위해 고객 개인정보 등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 관할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승인을 얻어 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합통신 2005. 5.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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