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블로거TO블로거
네 입술의 까슬함과 도드라짐
Lucifer님의 블로그 (http://llll.egloos.com)

개울  
조회수: 2508 / 추천: 48
요즘 ‘블로그 시대’니 뭐니 하면서 블로그에 대해 말들이 많다. 블로거의 수가 얼마라느니, 블로그가 미디어라느니 아니라느니 하면서 블로그와 블로거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블로그’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블로그 세상이 지금과 같이 넓어졌다는 점이 굉장히 놀랍기도 하다.

블로그를 하면서 링크에 링크를 타고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매우 다양한 블로그들을 만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블로그 주인들의 관심사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블로그 가운데에서 나와 관심사가 일치하는 블로그, 편안하게 느껴지는 블로그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솔직히 말하자면 눈살을 찌푸리고 도망치듯 나오게 되는 블로그들도 많다. 온라인 공간에도 오프라인에서의 권력 관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 여성들의 목소리나 성적 소수자,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고, 올블로그(http://allblog.net)나 블로그코리아(http://blogkorea.org)와 같은 곳에서 담론을 형성해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블로그의 운영자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이다. 화제가 되는 글들도 최근의 이슈나 트렌드, 얼리어답터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진지하고 훌륭한 글, 주목을 확 끄는 글이지만 내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거나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글들도 많다.

일상 속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소소한 생각과 삶의 흔적들을 보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Lucifer님의 블로그 <네 입술의 까슬함과 도드라짐>(http://llll.egloos.com)이 참 매력있게 다가온다. 특별한 전문 지식을 주제로 일관된 글을 써내는 것도 아니고, 다방면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 이 블로그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왜 그런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더니, Lucifer님이 주는 사람 냄새와 친밀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Lucifer님은 가끔 직접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예쁜 글씨와 그림이 들어간 쪽지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고,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놓고 그림을 올려놓는 장난을 치기도 하며, 사랑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쓰고, 외모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방문자들이 이름을 줄여서 ‘루시’라고 부르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Lucifer님의 블로그에 덧글이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편안한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 하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방문자들의 덧글에 답하는 Lucifer님의 덧글에는 다정다감함과 친밀감이 넘쳐난다.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법을 아는 이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리라.

이곳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고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Lucifer님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성찰하기도 하고(‘스스로에 대한 기술’), 성평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남녀평등 신호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감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장애인의 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 돌이켜보기도 하고(‘손이 없다고 밥 먹을 권리마저 없는가 - 섹스자원봉사’), 여성비하적인 성적 농담에 대해 화를 내기도 하며(‘입닥쳐’), 성적 소수자로서 삶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다수자’로서의 삶과 ‘소수자’로서의 삶이 동시에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자기성찰로 이어지고, 방문자들은 이곳에 흐르는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고 쉽게 Lucifer님의 글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성적 소수자로서 커밍아웃하는 것이 지금도 금기시 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는, 개인이 ‘소수자’의 위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Lucifer님은 성적 소수자 블로그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있다. 다른 여러 분들의 의견을 구해서 이름도 QBig으로 정했고, 더디지만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주위의 도움도 구해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사이트를 만들어가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QBig이 생기고 나면 지금껏 잘 드러나지 않고 묻혀있던 성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매우 기쁘다. 또한 아직도 게이들보다는 취약한 위치에 있는 레즈비언들의 목소리도 조금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더불어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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