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사이방가르드
대중문화를 조롱하는 악동들
개미농장의 10여년

이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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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텍사스 아마릴로의 루트 66번 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드넓은 황무지 한가운데에 희한한 광경이 눈에 띤다. 이 곳엔 얼핏 보아 한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스무 대 정도의 골동품 캐딜락들이 나란히 한 줄로 땅 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다. <캐딜락 목장 (1974)>이라 이름 붙여진 작품인데, 개장 이후 매년 3만여명이 꾸준히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미국 자동차 문화의 성지가 되어버린 이 캐딜락 목장을 기려, 볼보나 클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들이 이 곳을 배경으로 광고를 찍고, 노동자 가수로 알려진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이 전시 작품을 기념해 곡을 붙였다고 한다. 가히 미국 대중문화의 명소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캐딜락 목장>은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축학과 디자인을 전공했던 더그 마이클스, 칩 롤드, 그리고 커티스 쉬라이어, 이들 셋이 주축이 되어 세운 ‘개미농장’ (Ant Farm)의 작품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보헤미안 히피 문화와 베트남 반전운동, 대항문화, 성적 자유운동, 그리고 텔레비전 등 매체문화 등이 한데 뒤섞여 만개하던 곳이었고, 지금도 게이 등 성적 소수자 운동이나 저항문화의 근원지를 꼽으라면 샌프란시스코가 게 중 으뜸이다.

개미농장은 6, 70년대 이 모든 비주류 저항 문화의 세례를 고스란히 받았다. 60년대 당시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다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처럼, 개미농장은 체제 바깥에서 사유하고 활동하던 예술가 그룹이었다. 60년대 자본주의 번영과 부를 상징하던 주류 건축양식에 도전하여, 개미농장은 <50대 50 베개 (1996)>, <세기의 집 (1971)>, <자유의 땅 (1973)>, <돌고래 대사관 (1977)> 등 미래지향의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이들은 한편에선 공동 작업, 관람객의 참여를 유발하는 작품 설계, 주류 건축양식의 냉소를 통해 상호주의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 미래 지향의 기괴한 건축 양식물들을 추구하여,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와 기 드보르류의 상황주의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 집단으로 불린다.

실지 개미농장의 가치는 건축보다는 당시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등과 함께 반매체 비디오 운동에 불을 붙인 장본인들로 널리 알려졌다. 세라의 73년 6분짜리 문자 비디오, <텔레비전은 사람을 배달한다>는 광고주에게 상품으로 팔리는 소비자를 묘사해, 당시 텔레비전에 의한 자본주의 상품 소비문화에 경종을 울린 작품이다. 이미 세라의 작품이 나오기 전, 텔레비전과 상품 문화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개미농장의 시연, <불타는 미디어 (Media Burn, 1972)>에서 극대화한다. 피라밋 모양으로 쌓아올려진 텔레비전 더미 한가운데로 특수 제작된 캐딜락이 충돌하며 뚫고 지나가는 장면은 당시 지역언론들에 생방송될 정도로 큰 문화적 파문을 일으켰다.

개미농장에게 <캐딜락 농장>과 <불타는 미디어>에 소품으로 이용된 캐딜락은 포디즘으로 집약되는 자본주의 번영을, 산산이 조각나는 텔레비전은 70년대 미국 대중 문화를 가름하는 상징물들로 연출된다.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미자본주의와 이미지 조작과 최면의 거대한 브라운관이 서로 충돌해 파괴되는 장면은 상징 이상의 전복적 의미를 담고 있다. 멍키렌치로 가격해 조각난 브라운관의 설치 작품, <더러운 접시들 (1970)>은 아마도 개미농장이 이같은 <불타는 미디어>를 낳기 위해 거쳤던 기초 작업으로 보인다.

<불멸의 장면 (Eternal Frame, 1975)>은 <불타는 미디어>와 함께 개미농장의 대표적 비디오 예술 작품으로 회자된다. <불멸의 장면>은 케네디 암살 장면을 직접 연출해 비디오에 담아 반복해 보여줬던 작품이다. 개미농장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매체를 통해 구성해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어떻게 현실이 매체를 통해 극화되는지, 그리고 실제 현실을 어떻게 대체하는지를 확인한다. 게다가 케네디가 텔레비전을 통해 선거를 승리한 첫번째 미 대통령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그의 암살에 대한 연출은 역전된 상황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2003년 6월 호주 시드니에서 개미농장의 주요 일원이던 더그 마이클스가 사고로 숨을 거뒀다. 이를 기념해, 개미농장의 지난 10여년간의 작업일지가 지난 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78년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하고 모든 공식적 활동을 접은 지 얼추 25년만의 일이다. 가면 갈수록 소비, 독점, 물신, 신화 등 주류 대중매체의 질곡들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이들 개미농장의 반매체 저항 예술작품들은 아직도 미디어 운동가들에게 중대한 의미를 던진다. 비록 일회성 퍼포먼스로 미디어에 대한 즉자적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쳤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생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까지 이어지기 어려웠으나, 개미농장은 물신화된 대상들을 조롱하고 그 가치를 역전하는데 있어서 전술적으로 대단히 탁월했다.

자본주의의 신주단지들을 그저 소품으로 박살내며 즐거워하던 6, 70년대 이 사악한 아이들의 맥이, 이미 오늘 우리 전자 문화의 악동들에게 신내리고, 무한 복제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알튀세르의 말대로 ‘사악한 주체’(bad subjects)없이 현실의 전복은 없다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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