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영화
8년이 걸리는 문자전송
별의 목소리(신카이 마코토, 2002)

함주리  
조회수: 3774 / 추천: 54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걸어 다니면서 집 밖에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친구를 만나고, 연애를 하기도 하며, 일도 했다. 전화기 앞에서 전화가 걸려오길 애타게 기다리기도 하고, 약속이 어긋나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약속을 어긴 친구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살아갔다. 밤새워 편지도 쓰고, 조마조마해 하며 우체통에 편지를 넣기도 하며 연애를 하기도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은 기다림이 있던 시절인 듯하다. 휴대폰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든 요즘은 기다림이 그때 같지 않다. 사실 휴대폰이 대중화 된지 채 10년도 안되었는데, 우리 일상에 휴대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며 일상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연락할 길이 없어 어긋난 약속에 애타하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전, 한 달 전에 만날 약속을 잡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에 별 구애 없이 연인과 통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휴대폰 문자 서비스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연인과 사랑을 소삭이기도 한다. 연인들 사이의 기다림은 많이 생략되고 즉각적인 반응과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다.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의 목소리>(2002)는 25분의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감독이 혼자서 PC를 이용해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DVD로 판매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별의 목소리>는 작업 방식, 서정적인 영상과 감성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기대를 모았던 그의 첫 장편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가 2004년 11월에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현재 한국에도 DVD로 발매가 되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는 원거리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2046년 중학생인 미카코와 노보루, 국제연합 선발대원이 된 미카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노보루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2047년 화성에서 훈련하는 미카코는 노보루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하지만 미카코가 우주 멀리 갈수록, 문자의 도착은 점점 더 늦어지게 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우주와 우주선, 외계인이 나오는 SF지만 우주전쟁이 중심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의 소통의 지연과 성장을 그린다, 짧은 런닝타임 안에서.



미카코가 보내는 핸드폰 문자는 요즘과는 다르다. 즉각적으로 주고받을 수 없다. 어디서든 언제든지 통화를 할 수도 없다. 문자 전송 메시지 화면에는 예상 전송일 1년, 8년이라고 뜬다. 미카코가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노보루의 기다림은 길어진다. 애니메이션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익숙한 핸드폰을 매개로 한다. 그리고 핸드폰의 등장으로 변화는 일상의 문화를 그대로 투영하지만, 여기에 전달의 지연, 기다림을 넣어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세계란 휴대폰의 전파가 도달하는 곳이라는 마카코의 나레이션과 문자를 보내고 외롭다는 전화를 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 시작은 너무도 익숙한 모습니다. 이젠 사람들과의 소통은 핸드폰에 의존한다. 핸드폰이 없는 일상생활과 관계를 생각하기 힘들다. 급속하게 변화한 소통의 문화는 디지털 문자체에 녹아들어 속도를 기반으로 둔다. 하지만 <별의 목소리>에서 당연한 듯 여겨지는 즉각적인 문자의 전송은 몇 년의 시간 속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속도에 빠져 급해진 소통에 대해 묻는다. 나의 문자가, 목소리가 8년 뒤에 누군가에게 도착한다면 1분에 몇 자를 찍는다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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