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만화뒤집기
고우영 선생의 궂긴 소식
다시 나온 “삼국지” 대 새로 나온 “수호지”

김태권  
조회수: 3088 / 추천: 51
고우영 선생의 궂긴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다. 한 시대가 이제 지나갔구나.

선생의 대표작은 역시 <고우영 삼국지>. 70년대 천박한 유신 시절의 검열로 누더기가 되었던 삼국지를, 딴지일보 등이 21세기에 이르러 복간한 것은, 그 자체로 일대 사건이었다. 군부 독재정권의 작태, 오늘 다시 생각해도 역시 놀랄 일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복간해 나온 <고우영 삼국지>가, 요즘에 읽어도 너무나 참신하고 재미있더라는 것.

박재동 선생 가로되 “난 <삼국지>를, 순전히 고우영 선생의 만화 삼국지를 통하여 알게 된 사람이다”. 이것이 어찌 박 선생만의 고백이랴? 좋아도 싫어도 ‘삼국지’ 이야기란, 우리 세대의 망딸리떼에 영향력을 행사한다(한 소설가는 밝히기를 “원래는 삼국지를 쓸 생각이 없었다. 삼국지는 아버지들의 이야기여서 나는 어려서 무척 싫어했다”고 하였다). 어려서 직접 <고우영 삼국지>를 읽었건, 아니면 <고우영 삼국지>를 읽던 부모님한테 삼국지 이야기를 들었건, 결국 우리 세대의 심성사에는 고우영 선생의 독특한 해석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독특한 해석의 기원은 무엇일까? 선생은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해 아주 외우게 되어버린 삼국지”라고 밝힌 바 있거니와, 최근 복간한 故 김용환 선생의 <코주부 삼국지>가 혹시 그 실마리를 주고 있지는 않을지. 1950년대 전반(前半)을 풍미한 <코주부 삼국지>는, 조조를 악인으로 그리지 않았고, 도원결의 이전 유비의 행적을 그럴 듯하게 지어내고 있다(사실 ‘조조악인론’에 대한 재검토 주장은, 16세기, 명나라의 비판적 지식인 이탁오의 글에도 보인다. 보수 논객 이문열이 조조를 ‘신선하게’ 재평가했다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그 선전이 사람들한테 먹힌다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책을 멀리 하는가를 반증할 따름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코주부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를 나란히 놓고 읽어보면 이 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코주부 삼국지>에서 직접 비롯하였을지, 아니면 두 편의 만화 삼국지가 함께 근원으로 삼았을 제3의 텍스트가 있었을지는 아직 모를 일. 하지만 둘의 가족 관계는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고우영 삼국지>는 ‘영웅’을 평가하면서, 한발 더 나아간 독특함을 선보인다. 예컨대 유비의 경우, <코주부 삼국지>는 그를 ‘만민의 설움을 위해’ 들고 일어날 사람이라 묘사한다. 그러나 <고우영 삼국지>에서 그는 단지 속이 검은 야심가라는 냉소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조조도 손권도 마찬가지이다. <고우영 삼국지>에는 영웅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 겉과 속이 다른 야심가일 따름. 그러고 보면 선생의 <초한지>니 <열국지>니 하는 많은 작품들에도, 야심가만 있지 영웅은 없다. 선생은 권력을 철저히 조롱한다.

그러니 검열과 부딪칠 밖에. 최근 다카키(한국명 박정희)를 다룬 영화와 만화를 두고 어느 마약중독자가 소송을 걸었다던데, 검열 본능은 혹시 희귀한 유전 질환인가? 아니, <태백산맥>을 고발했던 독재자의 아들은, 사실 그의 ‘양자’였다고 하니, 꼭 유전자의 문제만은 아닌가보다. 아마 가풍 같은 것이 있겠지. 아무튼 다카키와 그 후계자들은 풍자를 금지하였을 뿐 아니라, 그 에로틱하고 기발한 입담까지도 가로막았다. ‘국민’들을 저급한 지적?문화적 수준에 묶어놓기를, 우리가 자기들과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기를, 간절히 바라던 그들. 선생은 그에 굴하지 않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 나갔다.

검열만이 선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니었다.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다시 <십팔사략>을 그렸는데, 이번에는 출판사측에서 만화원고를 전량 분실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복간 작업과 병행하여, 창작의 끈도 놓지 않았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 한두 점이 아니라 예술에 매진한 그 삶”이라는 어느 미술사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최근 새로 그린 <수호지>를 보면, 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과거의 그 유명한 <고우영 수호지>가 복간되었는가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았더니, 웬걸. 이번에 새로 그린 만화였다. 그림은 역시 달필, 따라올 자가 없다. 그러나 (<십팔사략>때도 그러했지만) 풍자는 없었다. 입담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주요 캐릭터 송강의 얼굴은, 박정희로 그려져 있었다. 왜 하필? 아시다시피, 송강은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지른 인물로, 이상적인 인격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만큼은 발군이니, 만일 그가 없었다면 양산박 108두령은 모이지 않았으리라는 설정.

박정희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묘하게도 선생의 세대에는 이런 의견이 적지 않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유신을 지지하던 분들이라면야, 정신과 상담을 권할지언정, 질문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박정희와 그 졸개들에 주로 불이익을 당하던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만화가도, 문인도, 학자도, 정치가도, 그러하다. 이러니 한국은 계급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우리 모두 이런 경우를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유신정권에 대한 분노는 어디로 갔는가? 유신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고통 받던 분들이, 왜 지금 와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가? 불이익 때문은 아니리라. 유신과 전두환 시절에 받던 불이익은 지금보다 컸다. 한때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던 어른들이, 지금 와서 소시민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세대의 책임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왜 오늘의 진보진영은, 선생의 세대를 끌어안는 데 실패하였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럴 지면은 아닌 것 같으니 다음으로 미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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