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리포트
이름과 얼굴에도 독점배타적 권리를?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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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심화되면 될 수록 과거에는 상품이 아니었던 것들의 상품화가 확산된다. 문화산업이 확대되면서 국내에서도 ‘퍼블리시티권’이라는 새로운 독점배타적인 권리가 대두되고 있다. 소위 퍼블리시티권이란 ‘성명이나 초상 등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상업적인 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예컨대 어떤 회사가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나 이름을 자신의 상품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허가를 맡고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국내 모 의류업체가 ‘제임스 딘’의 얼굴과 이름을 자사의 상품에 사용한 것 때문에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다.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인격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초상권이나 프라이버시권과 비슷하지만, 후자가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는데 초점을 둔다면,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인격을 적극적으로 상품화하여 재산적 이익을 얻는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3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아십니까? - 도둑맞는 한류에 대한 보호대책’이라는 이름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주최자인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남형두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퍼블리시티권의 입법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이미 여러 판례를 통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법률적 근거가 없어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며, “한류에서 보다시피 우리나라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퍼블리시티권의 강화를 통해 산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오승종 교수(성균관대 법학)는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검토하며 국내 법체계 상 힘든 부분이 있어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보공유연대 남희섭 대표는 “창작성을 전제로 한 저작권법에 퍼블리시티권을 도입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저작인접권 형태로 도입하는 것도 논리상 맞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그 외에 초상, 이름 이상으로 권리의 보호 대상을 확대할 것인지, 권리를 양도 혹은 대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등의 다양한 쟁점이 제기되었다. 또한, 퍼블리시티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시작 전부터 많은 국회의원과 기자들이 북적거렸다. 그 이유는 인기가수 보아가 토론자로 참석했기 때문인데, 이들은 토론회 시작 전에 사진 촬영을 한 후에 자리를 비웠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보아, 이수만 이사(SM 엔터테인먼트), 신현택 대표(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등은 실제 토론의 쟁점과는 상관없이 ‘짝퉁’에 의해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음을 개탄하였는데, 이는 이번 토론회가 유명 연예인과 한류 열풍에 편승해서 법안의 졸속 개정을 위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박찬숙 의원은 토론회 말미에야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혀 빈축을 샀는데, 남희섭 대표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시론적 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법안을 추진 중이었다면, 법안을 내놓고 토론회를 개최했어야 마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퍼블리시티권이 국내 법제에 도입되려면 아직 수많은 논란을 거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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