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기획
위기의 퍼블릭 액세스 채널, 민중의 힘으로 “날자”
R에는 방송혁명이 없었고, TV에는 액세스가 부족했다는데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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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재)시민방송 RTV(이사장 백낙청)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개국을 했을 때조차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았을까 싶다. 하지만 최근 RTV에 대한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은 RTV가 아니라 조선일보로 인해 발생했다. 지난 4월 RTV가 조선일보 콘텐츠로 제작되는 ‘갈아만든 이슈’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 RTV의 결정에 반발했고 RTV는 ‘갈아만든 이슈’와 ‘한겨레 인사이드’ 두 프로그램의 종영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퍼블릭 액세스(공적 접근)라는 꽤 오래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익숙치않은 운동의 실제 적용 방식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을 부여잡아야 한다는데 있음을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김영철 상임이사, “RTV가 정체성 확보에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RTV의 행보 때문인지 지난 6월15일 57개 단체들이 모여 ‘시민방송 RTV개혁을 위한 연대’(이하 개혁연대)를 발족시켰다. 개혁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RTV가 개국 초기부터 퍼블릭 액세스 채널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부각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부상하고 있던 독립영화진영이나 일반 시민들 혹은 시민단체들과의 연대와 제휴를 성사시키지 못한 채 또 다른 주류 방송국의 모델만을 되풀이한다는 비판을 들었다”고 지적하고 “3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방송 편성의 원칙은 물론이고 방송의 이념과 장기적인 비전도 제출하지 못하는 등 퍼블릭 액세스 방송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 상황에 처해있다”며 RTV를 강하게 비판했다.

개혁연대 기자회견문에서 알 수 있듯이 RTV에 대한 가장 큰 지적은 액세스 채널로써 정체성 확립의 실패다. 그러나 RTV 김영철 상임이사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영철 이사는 “정체성 확보에 실패 했다고 지적 하는 분들께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 되물어 보고 싶다”고 말하고, “‘갈아만든 이슈’ 같은 방송의 편성을 요구 했을 때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거부해야 옳을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액세스 채널의 운영은 보다 정밀한 판단 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김영철 이사의 주장이다.

‘갈아만든 이슈’의 편성은 그간 RTV가 운영되어 오면서 내재되어 있던 문제점이 폭발력 있게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작년부터 한겨레신문과 공동으로 제작해 왔던 ‘한겨레 인사이드’ 역시 똑같은 문제제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RTV의 인지도와 영향력 증대를 위한 무원칙한 편성에 있었다는 것이 단체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RTV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는 단순한 운영의 문제가 아닌 편성을 위한 원칙과 네트워킹, 총체적인 시스템 교체와 미디어운동의 비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개혁연대의 발족으로 이어진 것이다.

액세스 채널 원칙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그런데 문제가 쉽지 않다. RTV라는 액세스 채널운영은 꽤 많은 난맥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영상미디어센터 이주훈 사무국장은 편성 원칙에 대해 “외국 액세스 채널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예가 있는데 기존 RTV에는 그냥 시민이 참여한다 정도의 원칙만 있다”고 지적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가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제작시스템이 필요하며 프로그램의 선택과 제작 주체를 다양화하는 수준에서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RTV 김영철 이사는 액세스 프로그램의 요건을 강조했다. 김영철 이사는 “‘갈아만든 이슈’가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의 콘텐츠라서 방영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이 액세스로서의 조건을 갖췄는가라는 잣대를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퍼블릭 액세스의 원칙이 단순히 언론 시장 장악력으로 그 기준을 삼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도 김영철 이사의 판단이다. 김영철 이사는 “이번 ‘갈아만든 이슈’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액세스 원칙과 관련한 진전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조선일보가 왕성한 발언권를 가졌기 때문에 액세스에 맞지 않다는 논거도 진전된 논의이기는 하지만 이 논의도 더 들어가 보면 신문시장의 몇 %를 장악해야 적극적인 영향력이 있는 매체로 볼 것인가가 남는다. 그 문제로 잣대를 대면 문제가 모호해 진다. 그래서 그 문제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액세스의 요건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고 방영 여부의 기준을 제시했다.

김영철 이사는 덧붙여 액세스 프로그램 편성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RTV 밖의 액세스를 직접 편성하는 집단이 아닌 쪽에서는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객관적이고 누가 봐도 납득할 기준을 내세워서 불가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막강한 영향력이 기준이 아닌, 액세스로서의 요건을 가졌는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이다.

영상미디어센터 김명준 소장은 <열린미디어 열린사회> 2005년 여름호에서 ‘다양한 액세스 구조 상상력 필요...’라는 글을 통해 “한국의 퍼블릭 액세스는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조건 속에 처해 있으며 현실에서 서서히 잠복해 있던 혹은 새롭게 등장한 각종 쟁점을 전략적이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해결해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다른 나라의 퍼블릭 액세스가 지닌 개념과 철학을 다시 한번 짚어 보면서 동시에 지금까지의 액세스 개념의 한계를 짚어보고 지난 5년여의 실천에서 얻어진 성과를 기반으로 그 정의를 풍부하게 살찌워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퍼블릭 액세스와 가장 연동되어 있는 프로그램 편성 문제는 향후 RTV 정체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기 준비위 과정에서 논의 되어야 할 액세스 원칙은 단지 편성의 문제가 아닌 RTV 운영 전반에 대한 논의 속에서 만들어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TV의 다양한 운영의 문제와 쟁점들
개혁연대가 RTV 2기를 준비하면서 드러나는 문제는 현재 RTV외부 성원이 RTV의 운영에 대해 정밀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9일 미디액트에서 진행된 ‘RTV 혁신을 위한 시민사회토론회’에서 RTV는 방송발전기금 사용 세부 내역을 공개한바 있다.(방송발전기금의 세부 사용내역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최초였다고 한다) 이날 공개된 방송발전기금 세부 내역 중 방송발전기금의 68%인 12억 2천 여 만원이 제작과 기술 인력의 인건비였으며, 시청자지원 및 방영사례비는 총 10% 정도였다. 이러한 방송발전기금 사용 내역은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을 불러왔다. 그동안 RTV와 함께 했던 많은 미디어 활동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열악한 재정 속에서 제작에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RTV는 상당히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운영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단법인 시민방송에서 분리된 (주)참여방송 RTV의 문제를 들여다본다면 이 문제는 훨씬 쉽게 이해된다. RTV는 방송발전기금을 받지만 이 기금을 인건비로 사용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기금의 68%를 인건비로 사용해 방송위원회의 지적을 받았고 이는 (주)참여방송 RTV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재단법인 시민방송은 주식회사를 통해 수급된 퍼블릭 액세스물의 후반 작업 및 방송프로그램화 작업 등을 최초 2년 동안 재단의 방송사업 전체에 대한 독점 제작지원 계약을 맺기로 했다. 그러나 주식회사를 만들 때부터 독립영화 진영이나 많은 미디어 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RTV가 제작이 가능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네트워킹 하고 자체 제작 비율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풀이 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과 관련해 개혁연대와 RTV측의 이견은 상당히 큰 것으로 확인 되었다. RTV는 지난 6월 1일 주식회사와 재단을 완전히 분리 했다. 김영철 이사는 “재단법인과 주식회사의 분리는 시민사회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자체 제작인력, 즉 군살을 빼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시민사회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 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2기 준비위 구성을 석달 앞으로 놔둔 상황에서 완전한 분리를 한 것에 대해 개혁연대는 비판적이었다.

영상미디어센터 이주훈 사무국장은 “주식회사와 재단법인의 이원적 체계에 대한 평가부터 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참여를 고려하면서 새롭게 방송을 하기위한 인적 구성 분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주식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액세스 채널의 핵심 - 네트워킹
‘갈아만든 이슈’의 종영을 두고 조선일보가 “한겨레는 되고 조선일보는 안된다”며 개혁연대를 비판한 것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 윤성효 사무처장은 “한겨레가 RTV에서 방영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처음 한겨레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얘기는 어찌 되었든 언론단체 마저도 RTV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RTV에 대한 무관심이 ‘한겨레인사이드’나 ‘갈아만든 이슈’와 같은 편성을 가능케 했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무관심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제작주체들과의 네트워킹의 실패에 있어 보인다. 다양한 제작 주체들과의 네트워킹 실패는 액세스 채널 운영에 어려움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은 RTV 운영진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자체제작 비율을 높이는데 일조하게 된다.

영상미디어센터 이주훈 사무국장은 “액세스 채널의 핵심은 네트워크”라면서, “방송국이 모든 것을 하려는 것을 벗어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네트워킹을 위해서 RTV 피디의 역할은 기존의 피디의 역할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훈 사무국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아직까지 독립방송이라는 고민을 해보지 못해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하고 “따라서 RTV의 피디들이 상상력을 제안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그룹과 접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디들이 노숙인 단체나 노인, 실업자 단체 등과 같은 방송에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이 RTV를 통해 자신의 매체를 갖도록 할 수 있으면 된다”면서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추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RTV 김영철 이사는 네트워킹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시민방송 탄생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있는 바람에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합의를 아래로부터 만드는데 실패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네트워킹이라는 문제는 사실시민사회진영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관심을 소홀히 했던 측면도 있다”고 네트워킹 실패의 원인을 시민사회의 무관심 측면에서 찾기도 했다. 네트워크 확보의 실패보다는 확보에 제약이 있었는데 그 제약은 안팎 모두의 잘못이라는 설명이다.
김영철 이사는 또 “시민방송 2기 준비위원회 자체를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교두보로 삼아 나갈 계획”이라며 “운영위를 각 부문 네트워크의 허브역할을 하는 곳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며 준비위 자체에서 그런 구성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방송 2기 준비위원회 구성 중, 퍼블릭 액세스의 새로운 전형으로
시민방송은 지난 5월 19일 이사회를 열어 임원진 구성 등 9월에 시작할 2기 이사진 준비를 논의할 위원회 구성 권한을 운영위원회에 위임한 바 있다. 또한 6월 21일에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2기 준비위원회는 시민사회, 언론 및 미디어 운동 진영, 학계의 대표성을 갖춘 사람과 시민방송 RTV의 전, 현직 이사 및 기타 제2기 시민방송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 등을 포함하여 모두 15명 안팎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준비위원회 인선은 운영위원회 부위원단장과 시민방송 RTV 도정일 부이사장과 김영철 상임이사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또한 외부 추천 인사가 최고 1/3이상이 되도록 하며, ‘RTV 개혁연대’의 추천을 우선적으로 받는다고 결정했다.

이같은 시민방송의 결정에 대해 개혁연대 운영위원회는 △ 준비위원 인선은 (재)시민방송측 인사와 RTV개혁연대측 인사를 동수로 구성한 협의기구에 위임 △ 준비위원회 구성은 시민방송 외부 추천 인사가 최소 50% 이상이 되도록 하며 RTV개혁연대의 추천을 우선적으로 받는다는 내용을 전제로 시민방송과의 실무협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9월로 예정된 2기 이사회 구성은 퍼블릭 액세스에 대한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권력과 자본의 소유였던 방송에 민중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방송으로의 파열구를 내는 것. 이렇게 RTV에 던져진 과제는 RTV 내부 몇몇 사람들만의 몫이 아닌 방송을 보다 민중적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 진영 전체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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