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정책제언
주파수 정책 변화의 요인과 패러다임 변화
주파수의 분배와 할당에서의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

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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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관련한 논의에 생소한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데 필요한 몇 가지 용어 정의를 먼저 하고자 한다. ‘주파수(radio frequency)’는 안테나에 전류를 흘려 발생시키는 전자기파에서 전자기 스펙트럼의 일정 부분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는 FM라디오에서 방송국마다 몇 십 또는 몇 백 MHz의 방식으로 개별적인 숫자로 표시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주파수 분배’는 특정한 주파수의 용도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든 FM라디오 방송국들이 존재하는 주파수대를 FM라디오 방송용으로 지정하거나 이와는 다른 주파수대를 TV방송용으로 지정하거나 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파수 할당’은 특정한 주파수대에서 일정 부분을 특정한 사용자에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파수 정책의 목표
주파수 정책의 목표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다음의 몇 가지는 여러 나라의 주파수 정책에서 공통적인 목표다. 첫째는 주파수 혼신(interference)을 방지하는 수준에서 최대로 이용되도록 하는 기술적인 효율성의 달성이다. 둘째는 한 사회의 경제적 편익을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용도와 사용자에게 주파수를 분배, 할당함으로써 경제적인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셋째는 기술적 또는 경제적 효율성과 배치될 수도 있는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보장하려는 공공 정책의 목표들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국경 사이의 혼신을 방지하고, 무선통신 서비스들의 호환성 보장 등도 중요한 목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파수 이용의 효율을 높이는 신기술의 개발 등과 같은 노력과 더불어 정책 목표 달성에 적절한 주파수 분배와 할당이 필수적이다.

주파수 수요의 증가
주파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던 무선통신의 초창기에는 혼신(같은 주파수에 여러 개의 방송국이 방송을 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을 피하기 위해 주파수 할당을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가 행하는 정도에서 주파수 관리의 역할은 멈추었다. 하지만, 다수의 방송국들이 존재하고, 이동통신의 경우에서처럼 이용자가 많아지고 또한 여러 세대의 기술이 동시에 이용되고, 무선식별(RFID)을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주파수 공급(회수와 재배치를 통해서 또는 사용하고 있지 않은 주파수를 추가 분배 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공급 부족이라는 상황의 인식하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국가가 행정적 판단에 따라 수행하던 주파수 분배와 할당의 영역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경매제와 같이 시장 원리에 기반을 둔 할당 제도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시장을 통한 주파수의 거래가 희소한 자원인 주파수가 경제적으로 가장 최적의 용도에 그리고 최적의 이용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에는 국가를 통한 중앙 집중적인 통제 방식이 느리고 비효율적(정보의 부족 등에 기인한)이라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국가(경매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도 여전히 안보, 안전, 공적방송 등의 공익적, 비상업적 용도의 이용에 대해서는 주파수 거래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비상업적 용도의 주파수에 대해서도 비효율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디지털화와 융합 현상
통신과 방송 영역에서 디지털화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서비스의 제공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주파수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많이 거론되는 인터넷TV(IPTV)와 같이 인터넷망을 통해서 방송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화에 따른 융합 현상은 주파수 분배를 통해 특정한 주파수의 용도를 지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디지털화에 따라 디지털 압축 기술을 이용해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아날로그 기술을 이용할 때에 비해 전송하려는 정보량 대비 차지하는 대역폭이 줄어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며, 이러한 가능성에 따라 주파수의 적극적인 회수와 재배치가 필요하다.

저출력, 적응형 또는 지능형 무선 기술의 등장
일반적으로 무선기기의 출력이 낮으면 그 도달하는 거리가 짧고 이에 따라 좁은 영역 안에서는 혼신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무선 단말기가 충분히 지능적이어서 기기의 주변의 주파수 이용 환경을 감지하고 이에 맞추어 출력을 조절할 수 있다면 혼신의 가능성이 감소하는 동시에 서비스 가능 공간의 동적인 확장과 축소도 가능하다. 다른 형태의 지능성은 현재 이용되고 있지 않은 주파수를 감지하여 이를 자신의 서비스에 이용하고, 다른 서비스나 단말기와 충돌을 동적으로 피함으로써 혼신을 막는 것도 가능하다. 동시에 무선 단말기가 일종의 중계기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무선 단말기로만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구성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기술로는 현재 초광대역확산무선, 스마트 안테나, 메시 네트워크, SDR(Software-defined radio)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서비스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파수의 희소성이라는 전제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까지는 ‘멍청한’ 무선 단말기에 의해 이루어진 주파수의 배타적 할당이나 분배가 기본적 전제가 되어 이루어져 왔지만 이러한 신기술의 도입에 따라 주파수 환경을 인지하고 출력, 거리, 주파수, 이용 시간 등을 동적으로 조정하는 단말기를 전제하면 주파수의 이용은 거의 무제한 늘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면적인 배타적 주파수 이용을 전제한 할당이 아닌 이용권자의 서비스를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대역을 다른 서비스나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국가나 시장에 의해 통제 받지 않고 접근이 가능한 주파수 대역의 설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단말기에 부과되는 기술적 제한 조치들이 최소한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이 글을 통해 무선 통신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을 중심으로 주파수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기하였다. 요약한다면 주파수 이용 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것은 주파수 정책의 유연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주파수 이용자(주파수를 할당 받은 사람, 대부분 무선 통신 서비스 제공자), 무선기기의 개발자, 무선기기와 무선 서비스의 최종 이용자(독자나 나와 같은 사람들)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문가 또는 산업계 중심의 정책 결정 과정에 더 많은 영역의 관련자들(소비자, 지방자치단체, 잠재적 서비스 제공자 등)이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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