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Cyber
효율적이므로 합헌이다?
지문날인제도 합헌판결에 대해서

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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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달전 일이 되었지만 좀 짚고 넘어가자. 작년 이름만 알고 있었던 경국대전이 헌법해석의 기준이 된다는 교시를 해 주시어 독일과 일본법 연혁만을 앵무새처럼 외우던 우리들의 식민지성을 일갈하시던 헌법재판소가 이번엔 헌법해석의 원리를 넘어서는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는 사건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5년 5월 26일 주민등록법시행령 제33조 제2항에 의한 별지 제30호 서식 중 열손가락 회전지문과 평면지문을 날인하도록 한 부분 및 경찰청장이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에 날인되어 있는 지문정보를 보관, 전산화하고 이를 범죄수사목적에 이용하는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이 규정하고 있는 헌법소원을 거칠게나마 살펴보자. 국가공권력이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심사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우선 그 공권력의 행사가 대한민국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이를 법률유보의 원칙이라 한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에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여 시행령이나 시행규칙과 같은 하위법령에 위임할 수는 있다.) 법률에 근거한 것이 확인된다면 기본권을 제한하는 공권력의 행사가 목적이 정당한지, 그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지, 피해가 적은 다른 제한조치가 존재하지는 않는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침해당하는 기본권 당사자의 이익이 더 큰 것은 아닌지 세부적으로 따져보게 된다. 이 과정의 원칙을 일컬어 과잉금지의 원칙 내지는 비례성의 원칙이라 한다.

먼저 이번 판결을 논하기 전에 필자의 무능력에 대해 고백하고자 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하루 꼬박 투자하여 읽어보았으나, 기존의 법해석학에만 익숙한 나머지 새로운 해석학을 모색하고 있는 6인 합헌의견이 전업을 심각히 고민할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오더라. 그래서 미쳐 그 고수의 경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쓴다. 앞으로 두 배의 노력을 더 하겠다.

우선 법률유보의 원칙을 판단함에 있어, 헌법재판관들의 꼼꼼함은 빛을 발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지문정보를 수사기관이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찾으려 노력했건만 수포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들은 역시 다르더라. 국회에서 제정한 주민등록법이 아니라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 행정자치부 사무관들이 만든 시행령, 그것도 본문이 아닌 별지의 서른 번째 서식이 열손가락 지문날인이라는 기본권제한의 헌법상 근거가 된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아직 멀었다. 다시 한번 읽어보아라. 숨은 그림찾기 하듯 즐겁게 놀이하면서 말이다.

기왕에 놀이를 시작한 김에 문제 나간다. 지문이 날인된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를 경찰청장이 전산화해서 활용하는 근거가 되는 법률은 무엇일까? 비슷한 법이라면 다 써도 좋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등에 관한 법률’이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이용등에 관한 법률’이 아니다. 그런 법 없다. “굳이 직접적으로 규정된 법률이 없다면 비슷한 이름을 가진 법률에서 근거를 찾아라.” 헌법재판소가 공권력 행사의 법률상 근거를 찾는데 제시한 새로운 해법이다. ‘보호’라는 말과 ‘이용’이라는 말이 동의어로 국어사전에 수록될 날 멀지 않았다고 감히 예언하는 바이다.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헌법재판소의 눈부신 법해석학은 계속된다. 다시 문제 나간다. 주민등록법 제1조의 입법목적 “주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상시로 명확하게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이외에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된 숨겨진 목적이 있다. 무엇일까? 이 두 줄만 읽고 또 읽어 대답하기 바란다.

답은 치안유지와 국가안보다. 이 경우 날인된 지문을 범죄수사목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다. 사법시험을 붙어버려 우쭐해져있던 필자도 입법목적 100번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 시간 있으신 분들 매직아이 될 때까지 읽기를 권해본다. 이해가 된다면 그 사람은 헌법재판관의 자질이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매우 부럽다.

‘행정의 효율성이 뛰어난 공권력 수단들은 대개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행정의 효율성과 시민의 기본권과의 관계는 긴장관계다.’ 이 말은 이제 과거에나 통용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범죄자 등 특정인의 지문정보만 보관해서는 모든 국민의 지문정보를 수집하여 이용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신원확인기능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 ‘사진, 유전자, 홍채, 치아 등 다른 여러 신원확인수단 중에서 정확성, 간편성, 효율성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현재까지 지문정보와 비견할만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문날인제도를 합헌이라 하였다. 요약하건대 효율적이므로 합헌이다. 라는 뜻이다. 아직 공부가 덜 된 필자. 이런 학설을 들어보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배운 근대서구중심의 법학에서 벗어나 이제 진정한 우리만의 법률해석론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뭇 떨려온다. 단언컨대 박정희 씨의 ‘한국적 민주주의론’ 이후 우리 현대사의 몇 안되는 사상적 성취가 될 것이다.

다만 지문정보가 아주 효율적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왜 그 유용함만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에 대해 나름의 설명을 기대했다. 허나 이내 마음을 고쳐잡았다. 여러분,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화두를 던져주고 스스로 고민하고 터득하게 하는 것이 그분들의 교수법 아니던가? 눈빛이 책 뒤 껍데기를 뚫을 때까지 읽고 또 읽어 그 불가능한 경지를 가늠해보자.

다만 마지막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한 헌법재판관들의 독보적인 학문적 성취를 모르는 우매한 시민들이 비난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늘 겪어오던 일들이라 익숙하시겠지만, 원래 선각자들은 늘 외로운 법이고 고귀한 학문의 길은 배고프고 고달프다. 바라건대 지금이라도 이 뻘같은 세상에서 벗어나 당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즐겁게 남은 여생을 마치시라 고언드린다. 남은 일들은 아직 공부가 덜 되어 필자같은 범인들이 쉽게 이해하는 판결을 내는 소수의견 3인 재판관들과 그 비슷한 무리들에게 맡겨도 좋겠다. 물론 그 곳에서는 홍체인식이나 유전자 정보도 공유하시길 바란다. 그것도 지문정보만큼이나 효율적이므로 합헌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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