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영화
분명, 함께 살아가야 한다
<배고픈 하루>, <아빠>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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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에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는 2003년부터 그해 수상작들을 엮은 DVD를 발매하고 있다. 영화제라는 행사아닌 행사를 통해 소비되어져버리는 독립영화들을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하려는 반가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올해도 두 번째 발매인 2004년의 수상작들이 묶인 DVD가 출시되었다. 그 중 대상을 수상한 <배고픈 하루>(김동현/2004)와 한국영상자료원장상의 <아빠>(이수진/2004)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어린 딸과 함께 며칠째 방안에서 굶고 있는 종석은 걸음이 불편한 목디스크 환자이다. 먹을 것이라곤 수돗물뿐이며 배가 고파 하루 종일 누워있는 딸아이를 보는 종석의 마음은 편치 않다. 굶고 있을 수만은 없던 종석은 동냥을 하러 밖으로 나가지만 어쭙잖은 동냥질과 자기 모멸감에 동냥질을 그만둔다. 집으로 돌아온 종석은 강도질을 하기 위해 다시 칼을 들고 나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높은 담들과 닫혀진 대문 앞에서 장애를 가진 종석은 번번히 좌절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종석은 우연히 대문이 없는 집에 들어섰다가 마음 좋은 할머니에게 물 한잔을 얻어 마시고 거사를 포기한다. 영화 <배고픈 하루>의 줄거리이다. 맨몸을 밑천으로 정직한 노동의 대가만으로 살아가던 노동자 종석과 그의 배고픈 어린 딸의 그야말로 ‘지독히도 배고픈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자칫 진부한 이야기로 보여 지기도 한다. 이미 우리 모두가 익숙하게 알고 있으며 또한 알고 있기 때문에 외면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20분인 상영시간이 실제 물리적인 시간보다 더욱 길게 느껴지는 것은 리얼하게 그려지는 종석의 고단함이 이입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둠 속에서 쫓기는 종석이 몸이 불편해 지니고 있던 지팡이도 내던지고 뛰어가는 판타지로 끝이 난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러한가. 장애도 가난도 그리 쉽게 벗어던지고 뛸 수 있게끔 호락호락하던가. 온 세계가 전쟁으로 혹은 자연대란으로 폐허가 되어도 항상 부는 한곳으로 집중되고 집중된 부를 가진 이들은 그 부를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혹은 아무리 국가경쟁력이 향상되고 국민총생산(GNP)이 몇 배로 치솟는다 하여도 하루 한 끼마저 해결할 수 없는 극빈층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진리이며 그 진리를 진리가 아닌 가설로 몰아붙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마저 좌절로 돌아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뛰어가는 종석의 발목이 잘리지나 않을까 애처로운 순간이다.

<배고픈 하루>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극빈층의 이야기라면 <아빠>는 장애인의 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성적욕구를 느끼기 시작한 중증장애아 민주는 욕구의 표출로 자신의 몸에 자해를 가한다. 그런 딸의 모습이 안타까운 아빠는 민주를 ‘사랑’해줄 남자를 찾는다.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지만 매번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핀잔을 듣고 길을 지나는 남자들에게 ‘호객행위’를 하지만 민주를 사랑해줄 남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아빠가 택한 방법은 아빠 자신이 민주를 사랑해주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영화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한쪽의 반응조차 ‘이해한다’가 아닌 ‘그럴 수 있겠다’라는 반응이다. 아빠가 딸의 성적상대가 되는 마지막 장면을 부성으로 말하는 감독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관객이 부지기수다. 감독이 말하려는 것이 부성이든 아니든, 그런 부성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 이 영화에 있다. 이미 오랜 시간 전부터 우리와 공존해있던 장애인의 성이 그것이다. 요즘 들어 조심스레 대두되고 있는 장애인의 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동정심으로 봐야하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사조차 민주를 무성의 인간으로 취급하고 영화를 관람하고 근친상간이라 역겨움을 토로하는 관객들도 장애인의 성에 대해 외면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물론 이 영화는 불편한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근친상간으로 매도되는 사건들이 혹은 ‘사랑’일수도 있다는 전제로 이 영화가 출발되었다면 나 또한 위험한 발상이라 말하고 싶다. 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된 소재(장애인의 성)가 그저 대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소비되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독립영화의 미덕을 기발하고 재기발랄함이라 말한다. 혹은 아직도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미덕은 짧은 시간 안에 기발하고 재기발랄함을 이용하여 관객이 바라는 강펀치를 날리는 것에 있지 않다. 최근 많은 독립영화에서 리얼하게 보여주는 지금의 현실, 그 현실을 재조명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미덕중 하나이며 순기능이다. <배고픈 하루>와 <아빠>에서 보여 지는 인물들과 우리는 분명, 이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고 그저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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