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북마크
네트워크 구조에 대한 해박한 분석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의 <링크>

이규원  
조회수: 3362 / 추천: 52

최근에 종종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결과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정 인물에게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오직 사람들 간의 전달을 통해 편지를 보낸 실험결과가 평균 12명이었다는 고전적인 분석에서부터, 임의의 한국인 사이에는 평균 5.5명 정도의 연결 관계가 있다는 작년 나온 분석에 이르기까지, 소위 ‘네트워크 이론’은 현재 사회과학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이론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라바시의 <링크>는 이러한 네트워크 이론을 다루고 있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네트워크 이론의 역사적인 형성과정을 초기부터 자세히 기술하면서 동시에 인터넷과 웹, 사교클럽, 신경세포에 이르기까지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영역들이 ‘노드’와 ‘링크’로만 이루어진 ‘네트워크’라는 구조의 공통적인 속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바라바시는 해박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통하여 설득력 있게 개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네트워크 이론이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을 비롯한 다양한 현상과 분야에 응용되어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의 주장은 사회연결망 이론과 사회자본의 사회학적 분석에 의해 현재 이미 현실이 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현대 사회학에서 가장 유행하는 담론을 꼽으라면 아마 당연히 ‘사회연결망’ 이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연결망 이론의 기원은 거슬러 올라가 고전 사회학자인 짐멜로부터 찾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사회구조 분석에서 사회자본 분석에까지 이르는 사회연결망 이론은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발달한 네트워크 이론에 거의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경제의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경제학적 담론인 네트워크 경제 또는 복잡계 경제학 역시 이러한 네트워크 이론의 분석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링크>가 보여주는 네트워크 이론을 단순히 ‘과학적’ 이론이라는 맥락에서만, 또는 과학적 이론의 사회과학적 적용이라는 맥락에서만 파악해서는 안된다. 네트워크 이론이 과학적 이론의 형태로 다양한 현상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특정한 현상들을 담론의 층위에서 가시화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이론들의 ‘과학적’ 진리성에 대해 묻는 것보다는 그것이 현상을 담론을 통해 가시화하는 인식론적 전략의 하나로 기능하며

이것이 어떤 효과를 갖는지를 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퍼트남이나 후쿠야마와 같이 신뢰와 사회적 자본을 연구하는 진영에서는 네트워크 이론을 활용하여 경제가 네트워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과 경제적 관계는 일반적으로 ‘신뢰’의 정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경제학 이론과는 달리 이러한 신뢰와 네트워크에 초점을 두는 연구들은 편협한 자기이익에 의해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적 행위들이 실제로는 신뢰관계-공유된 규범과 다양한 상호성-에 결부되어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는 바라바시의 시도처럼 네트워크 이론이 경제/문화에서 공통적인 법칙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경제/문화가 생각보다 명백하게 분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 이러한 네트워크와 같은 은유는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부드럽고 안전하게, 이론의 비판적 역할을 잠재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네트워크 자체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실업과 착취에서 보호할 수도 있고, 평범한 음모이론을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 특히 경제적 관계와 자본에 관한 연구를 네트워크로 환원함으로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현재에도 형식적인 경제에 의해 문화의 영역에서 문제와 식민화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와 신뢰망에 관한 연구들이 신자유주의에 문화적인 논리를 제공하는 역할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물론 <링크>와 같은 책들이 이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근 네트워크 이론의 유행은 이것이 마치 객관적인 과학적 진리를 발화하는 것처럼 다양한 담론 상에서 소비될 때에는 그러한 인식론적 전략과 가시화 과정이 갖는 효과에 대해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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