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호 북마크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대안 사회를 꿈꾼다
닉 다이어-위데포드 지음, 신승철·이현 옮김, <사이버-맑스>, 이후, 2003.

김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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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자, CNN을 필두로 한 미국 언론들은 바그다드 등 공습이 벌어지는 현장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데, 미국의 언론들은 바그다드 시내의 분위기는 어떻고, 이라크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고, 폭탄은 어디에 떨어졌고 하는 뉴스를 시시각각 전하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승리가 멀지 않았다는 선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걸프전 때와는 달리 미국이 아닌 아랍인의 시선으로 전쟁을 비춰주는 또 다른 매체가 있었다. 미국과 아랍 각국의 독재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아랍권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알 자지라(Al-jazeera) 방송이 그것이다. 인터넷은 이라크 전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전세계의 네티즌들을 알 자지라에 주목하게 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는 언제나 그랬듯이 방송이라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만든 것도 자본이지만 그것은 또한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받은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유일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자지라'가 보여주었던 것이다.
<사이버-맑스>의 저자 닉 다이어-위데포드는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통해 소수자들의 자유로운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첨단기술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의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을 보여준다. 저자는 사이버스페이스와 맑스주의를 접목시키면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기반해 정보/디지털/지식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투쟁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근대 산업 자본주의가 노동력의 착취를 그 핵심으로 했다면 정보/지식 자본주의는 비물질적 노동 영역에서 정보를 독점한 채 이것을 사적 이익에 따라 사용하는 것, 즉 정보의 사유화를 핵심으로 한다. 맑스가 생산 수단을 소유한 집단을 자본가라고 불렀다면, 지금은 정보를 독점한 사람들이 자본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 맑스주의는 사회적 산물인 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해 다중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만들려는 운동을 그 핵심으로 한다. 그리고 이미 정보 시대의 자본이 스스로 창조해 놓은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결합을 창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대화들이 오고가고 있다. 위데포드는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행동을 부각시키면서 사이버스페이스는 다중이 쌍방향적 소통을 통해서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력한 매체이며, 그 속에서 이미 소수자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통신망이 발달한' 한국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자율성을 검토할 수 있는 실험실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서 정보 혁명을 전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낸 위데포드는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결정하고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세상, 다양한 존재방식에 관한 이미지와 표상을 지닌 채 사람들이 다채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들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 이런 채널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재화의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대안 사회로 제시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소통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자본의 관여가 약화되어 갈 것인지, 사이버스페이스가 '차이'를 인정하도록 하는 매체인지 '차이'를 더욱 공고하게 하고 갈등을 심화하는 패거리 문화의 산실로 만들어가게 될 것인지 그 결과를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위데포드의 대안사회가 사이버스페이스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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