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표지이야기
인터넷 실명제, 대안 아니다
사이버 인권침해, 비대면성?인권의식의 부재 등 원인은 다양해…

정우혁  
조회수: 5356 / 추천: 59
지난 7월 7일 열린 시민사회단체들의 실명제 반대 기자회견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사전에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확인하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불붙었다. 지난 6월 14일, 이해찬 국무총리는 사이버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며,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도 인터넷 실명제를 포함하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익명에 의한 네티즌들의 무차별 공격과 비난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낳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서, 실제 사이버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원인이 익명성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이버 폭력, 익명성의 문제 아니다
지난 7월 7일 문화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을 포함한 1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인가?’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공간은 전혀 익명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사이버 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인터넷 실명제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이미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포털사이트 중에 다음(DAUM)과 엠에스엔(MSN)을 제외한 모든 사이트들이 현재 회원가입 시 사전에 실명인증을 하고 있으며, 그외 크고 작은 사이트들도 이미 실명인증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실명인증을 하고 있는 사이트들도 각종 사이버 폭력의 주된 공간이 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인터넷사이트들이 주민등록번호 등을 마구잡이로 요구... 일부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덧글을 쓸 때에도 (실명인증이 된) 로그인을 하도록 되어 있다”며 “오히려 익명성의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사이버 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인권침해문제의 원인이 과도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유출, 그리고 네티즌들의 인권의식의 부재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여성이 인터넷에서 네티즌으로부터 무차별적인 비난과 공격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 “사건의 당사자가 사이버 폭력에 노출이 된 것은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얼굴을 포함한 사진 등의 개인정보가 인터넷 상에 올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예인X파일’ 사건에 대해서도 이들은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수집하고 관리를 소홀히 한 업체에게 1차적인 잘못이 있으며, 광범하게 유포된 것도 포털사이트의 선정성과 네티즌들의 프라이버시 인식 부재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네이버(NAVER)에서는 회원으로 가입할 때 사전에 실명인증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보통신부도 처음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에서 한발짝 물러나 ‘실명확인제’, ‘본인확인우대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인터넷 실명제는 2003년 이미 정보통신부가 인터넷에서의 역기능 해소 방안으로 처음 제시를 했으나, 많은 네티즌들과 시민사회의 반대로 결국 정보통신부 스스로 철회하기도 한 정책이다. 이렇기 때문에 정보통신부도 자체적으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보통신부는 지난 7월, 민간이 주도하는 ‘인터넷 익명성에 의한 역기능 연구반’을 꾸려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사이버폭력에 대해서는 따로 대책반을 꾸려서 연구 중이며, 오는 8월 말쯤에야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통신부 정보이용보호과의 오상균 사무관은, “사이버폭력은 신조어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현재 사이버폭력에 대한 정의 및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정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사무관은 덧붙여, “인터넷 실명제는 전체 사이버폭력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며, 일부분에만 해당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이버폭력, 개인정보침해행위가 가장 높아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11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올해 단속한 사이버 폭력사건을 유형별로 분석해서 발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폭력의 유형 중 개인정보침해가 전체의 26.8%로 가장 높았고, 명예훼손 20.3%, 협박공갈이 14%, 성폭력 13.5%, 스토킹 3.6%, 그리고 기타 21.8%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개인정보침해행위는 해킹 및 인적사항 도용 등이 대부분이었으며, 명예훼손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온라인 카페에서 발생하는 것이 가장 많았다고 경찰청은 밝혔다. 또한 스토킹의 경우 휴대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한 협박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협박공갈의 경우 휴대전화와 채팅 등이 주요 수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폭력사범 가운데에는 학교나 앨범제작업체에서 개인정보를 빼내 인터넷 화상학원과 학습지 회사 등에 제공하는 등의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포함됐다. 이번 결과는 인터넷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의 원인과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개인정보침해행위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검찰청발표 사이버폭력 유형
사이버 인권침해의 원인과 유형
사이버폭력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인권침해의 유형으로 꼽히는 것은 사이버 언어폭력 및 성폭력, 스토킹, 명예훼손, 그리고 개인정보수집과 유출의 문제 등이다. 사이버 언어폭력은 온라인 게시판이나 채팅 등을 통해서 이용자들이 욕설이나 인격모독과 같은 폭언, 또는 비방하는 글을 올리는 등의 행위를 일컫는다. 이런 언어폭력은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행해질 때, 또다른 의미의 성폭력이 될 수 있다. 사이버 성폭력은 일반적으로 성적인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유발하여 정신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인터넷 상에서의 모든 행위들을 의미한다. 사이버 스토킹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동전화, 대화방, 전자우편을 통해서 특정인에게 원하지 않는 접근을 지속적이면서 반복적으로 시도하여 정신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위이다. 사이버명예훼손은 특정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서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올림으로써,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들의 주요원인으로 사이버 공간의 비대면성을 꼽는다. 비대면성이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남에서 발생하는 특성의 하나로, 자신의 얼굴 등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대면성으로 인해서 오프라인에서의 자아와 온라인 공간에서의 자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폭력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자아의 경우, 인터네 상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더욱 과격하고 대담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다중성격의 자아에 대한 가능성은 이미 인터넷 초기부터 제기된 이야기이다. 건국대학교 한상희 교수는 인터넷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이버 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역기능은 비대면성이 가져온 ‘탈인격성’에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등을 통해서 피해의 확산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한 빠른 전파성으로 인해 명예훼손적 표현 등이 순식간에 널리 확산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이 특정 개인을 파악할 수 있는 개인정보들과 결합될 경우, 해당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애완견을 치우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건 뿐만 아니라, 서울대 도서관에서 말다툼 끝에 폭력을 행사하여 인터넷에 오른 서울대생 사건, 애인에게 버림을 받아 자살한 한 여성의 사연을 그 어머니가 인터넷에 소개한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사진이나 이름, 또는 전화번호와 주소 등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마녀사냥’이라는 씻을 수 없는 인권침해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네티즌들의 항의 전화로 인해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만약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네티즌들의 표적이 되어 무차별적인 인민재판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생도서관 폭행사건의 당사자에게 대한 신분을 알 수 있는 개인정보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공개되어 있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 해 볼 때, 개인정보유출 등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가 앞으로 사이버폭력의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들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고 있어서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상태”라고 경고하고,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해 왔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