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여기는
“이제 권력은 완전히 포털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포털에 미디어자격을 부여할 수 없는 이유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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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권력은 완전히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예전에 경제 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그러나 설사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선언할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그 이후의 모든 논의와 초점은 ‘권력을 쥔 시장’을 전제로 하고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제하지 않는 모든 목소리는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포털 사이트의 미디어 기능을 떠올렸다. 이제 아무도 포털이 미디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포털이 미디어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이 돼버렸다. “이제 권력은 포털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라고 누군가가 선포해버린 것 같다.

올 봄까지만 해도 ‘포털의 뉴스 집중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주제의 토론회들이 열렸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제목은 이렇게 바뀐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 어떻게 볼 것인가’ 에서 ‘올바른 포털 저널리즘 어떻게 만들 것인가’
활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의 시대에 미디어는 메시지를 의미했다. 정보는 대량으로 복제되었다. 인터넷 이후 시대에 미디어는 메시지를 넘어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담길 것인지 따지기에 앞서 네트워크 효과를 입은 도구들이 이미 미디어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인가 아닌가, 정상적인 미디어인가 아닌가를 살펴보기에 앞서 포털처럼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모든 것이 미디어적 속성을 띠기 시작했다. 찌라시가 언론이라면 포털도 미디어가 맞다. 좋은 미디어 나쁜 미디어 그저 그런 미디어를 모두 합쳐서 미디어라고 부르고 어쨌든 미디어의 기능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이르다. 포털에 미디어라는 자격을 이렇게 공공연하게 부여하고 나면, 정말 인터넷의 권력은 포털에 완전히 넘어가게 될 것이다.
 
포털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검색 엔진을 비롯해 여러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해 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목적과 방법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분배 논리의 구조 위에 서 있다. 이 구조에 따라 네트워크 안에서 발생하는 위험도는 네트워크 전반으로 분산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이용자들이 서로 나눠가질 수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 관계에서는 상호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분담하겠다는 자세와, 네트워크의 취약한 측면을 악용하거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이러한 신뢰의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여기에 시장의 논리가 개입되면서 이 신뢰는 위협당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가 추문을 생산하고 퍼뜨리는 데에도 천부적 재능을 보이는 것은 네트워크의 다른 측면, 즉 취약한 부분을 악용하여 이득을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이비 미디어들은 네트워크 안의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주범이다.
 
아직까지는 포털을 공공연하게 미디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사이비가 상식이 되는 사회를 바라는가? 이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 이용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 한편으로는 네트워크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인터넷 미디어들을 비판하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네트워크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지 않도록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하여 다른 이들과 공감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인터넷의 효용을 누리기 위해, 네트워크 상의 정보 이용 방식은 소유가 아닌 접근이 되어야 한다. 접근 방식에 기반한 이윤 추구를 반대하지 않는다. 유용한 미디어, 편리한 도구일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악은 종종 편리함이라는 외투를 걸치고 오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과 더불어 미디어를 바로보기 위해 중요한 것은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른 미디어들이 포털을 미디어라고 인정하고 나면 포털은 자신을 향해 미디어 정체성을 묻는 목소리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할 것이다.

지금 네트의 한 귀퉁이에서는 이른바 슬로 이메일(Slow Email)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만 이메일을 확인함으로써 이메일 의존도를 조금 낮추자는 취지다. 슬로 포털 운동은 어떨까. 하루에 한 번만 포털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다. 지금의 포털 사이트들은 지구에서 사라져 주시는 게 나을 정도로 본래의 존재 목적과 멀어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믿어선 안 된다.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좀 더 찾아보아야 할 때다. 원래 희망은 그렇게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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