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Cyber
P2P 죽어야 음반, 영화 사나?
그록스터사 소송에 대한 미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양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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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은 P2P와 블로그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점차 ‘카페’에서 P2P나 블로그로 옮겨가는 이유는 뭘까. 정보교환의 편리함도 그런 이유 중에 중요한 하나이겠지만 ‘카페’와 같은 게시판 방식의 공간중심적 커뮤니티보다는 P2P나 블로그와 같은 개인중심적 네트워크가 탈중심적이고 개방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망을 더 잘 충족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인텔과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같은 많은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P2P기술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P2P 기술은 각각의 서비스와 응용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향후 각국의 유비쿼터스, IPv6 등 차세대 기반사업의 중요한 전략에도 응용될 뿐만 아니라, ‘분산화’ 라는 새로운 화두를 풀어가는 데에도 P2P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P2P기술에 대한 법적 분쟁으로 인하여 이러한 전망대로 정보기술업계가 순항하게 될 지는 미지수다.

냅스터 사건
P2P 기술에 대한 법적 분쟁은 2000년 냅스터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레코드사들이 냅스터를 상대로 예비적 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을 신청한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① 냅스터 이용자들의 행위가 음악저작권자들의 복제권 및 배포권을 직접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며 ② 냅스터는 이러한 직접 침해행위를 인식하였거나 인식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그 침해행위에 중대하게 기여하였으므로 ‘서비스제공자’로서 기여책임을 부담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냅스터는 파일 교환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수의 P2P 이용자들은 카자(KaZaa)나 모피어스(Morpheus)와 같은 대체 프로그램으로 이동해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및 소프트웨어까지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대체 프로그램은 냅스터와 기술적 방식을 달리한다. 냅스터 모델은 중앙서버가 존재하며 중앙서버가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파일목록과 이용자들의 아이피 주소를 보관한다. 반면 카자나 모피어스의 경우 이른바 그누텔라 방식으로서 중앙서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P2P 소프트웨어가 일단 배포된 이후에는 중앙서버의 도움없이 이용자들 간에 파일을 교환하게 되므로 소프트웨어 배포업체가 이용자들에게 서버제공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며 이용자들 사이의 파일 교환에 대해 통제를 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배포자들은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록스터 사건
헐리우드 영화업계가 그록스터사를 저작권침해로 제소한 소위 ‘그록스터 사건’의 1심과 2심에서 그록스터사가 승소하면서 이러한 예상은 점차 확고해져 가고 있었다. 그록스터는 카자사로부터 그누텔라와 유사한 패스트트랙(FastTrack) 기술에 기반하여 제작된 소프트웨어인 카자 미디어 데스크톱의 라이선스를 받아 이를 배포, 지원하는 회사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른바 소니법칙(Sony’s rule)을 적용하여 그록스터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니법칙이란 1980년대 초반 일본 소니사가 베타맥스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를 개발했을 때 방송사와 영화사가 소니를 저작권침해로 제소했던 사건에서 유래한다. 비디오카세트레코더을 제조하여 배포한 자는 그 사용자의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하급심에서는 그록스터를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단지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는 자에 불과하므로 마치 비디오카세트레코더 제조판매업자인 소니와 마찬가지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지난 6월말 그록스터에게 저작권 침해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당초 P2P업계의 기대와 예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연방대법원은 하급심이 그록스터 사건에서 소니법칙을 적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소니법칙은 제품을 배포한 자가 저작권 침해를 의도한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소니와 달리 그록스터사가 저작권 침해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그 증거로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① 그록스터는 이전의 냅스터 이용자들을 포함하여 이미 저작권을 침해할 것으로 보이는 수요자층을 만족시켜줄 목적이었다는 점, ② 저작권 침해행위를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감소시키기 위한 필터링기술이나 그 외 다른 방법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 ③ 소프트웨어의 배포를 통해 광고를 팔아 돈을 벌었다는 점. 즉, 어떤 제품이 합법적으로도, 불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때 그 제품의 배포자가 불법목적으로 배포했고 그 목적이 그의 광고나 내부 문서 또는 배포자의 행위들에 의해 입증되면 불법적 사용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이냐 저작권보호냐
연방대법원은 ‘저작권 보호를 통한 창작활동의 지원’과 ‘저작권 침해 책임을 제한하여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경쟁적 가치 사이의 조화가 중요하지만, 개별 이용자를 모두 단속하여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제품의 배포자에 대한 간접침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판결을 두고 미국 시민단체인 전자개척자단(EFF)은 저작권 보호에 치중하여 기술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판결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은 분명하다. 콘텐츠의 복제와 전송을 핵으로 하는 정보기술의 활용은 저작권과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데다, 소프트웨어를 배포한 자에게 저작권 침해를 조장하려는 주관적 목적이 있는가에 따라 책임의 존부가 달라질 때는 ‘이어령비어령’식의 판단이 가능할 수도 있어서 기술 개발 배포자들은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 몰라 기술개발에 주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파일공유가 문화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앞으로 음반, 영화산업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더 필요하다. 단지 카피가 이루어진다고 하여 바로 그것이 문화발전의 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섣부르다.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시장에 대한 가치를 뒤늦게 발견하고 인터넷업체에게 빼앗긴 선점권을 단지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음반이나 영화산업계가 P2P업체들의 서비스를 중단시키기 위해 일방적으로 하는 주장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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