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과학에세이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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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여름이 갈수록 더 덥다며 아우성이다. 근거가 있다. 어떤 보고서에서는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기온이 2℃ 정도 올랐다며, 앞으로 100년간 평균 기온이 5~6℃ 정도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부산은 봄이 8일, 여름이 81일 늘어나고, 가을은 4일 줄며 겨울은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후끈 달아오르는 여름, 도시에는 인공의 섬이 형성된다. 열섬이다. 열섬현상은 도심 기온이 주변 다른 지역보다 2~5℃ 가량 높아지는 것이다. 기온이 같은 지점을 등온선으로 연결해 온도 분포 곡선을 그리면 고온 지역이 섬의 등고선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공장 굴뚝연기, 자동차 배기가스, 에어컨과 난방기 배출열 등 각종 인공열과 그로 인한 대기 오염, 열용량이 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각종 인공시설물, 녹지면적의 감소 등을 열섬의 주된 발생원인으로 꼽는다.

열섬은 인간환경과 생태계에 다양한 형태로 악영향을 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30℃ 이상 무더위가 닥치면 노인 사망률이 급증하는데, 서울의 기온이 30~32℃일 때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36℃가 되면 30℃일 때보다 사망률이 50% 증가한다고 한다. 즉, 열섬으로 인한 기온상승과 오염물질 증가는 노약자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은 열섬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차량운전 제한, 각종 에너지원 사용제한, 도시 녹지훼손 금지와 녹지공간 확충 등 다각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한다. (건축기상학에서는 건물 한 채에 약 2.4배의 녹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서울은 전체 면적의 49%가 콘크리트로 덮여있다) 얼핏, 녹지를 늘리고 도시의 바람길을 열어 열과 공기의 순환이 잘 되게 하면 일반 열섬현상은 어느 정도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열섬은 다르다. 그것은 한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에 발생하는 물리적인 온도 차이를 뛰어넘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계급과 계급, 계층과 계층 사이에서 발생하는 큰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 현상은 이미 대단히 악성 열섬이다. 땅부자 상위 5%(1%)가 개인소유 토지의 82.7%(51.5%)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정부 통계자료 2004년말 기준), 상위 20%가 부의 80%를 차지하는 이른바 ‘20대 80의 사회’에서 노동자 민중에게는 생존권의 벼랑 자체인 열섬현상은 교육, 의료, 주택, 세금 등 공공서비스의 영역에서 다양하고 기형적인 모습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구온난화와는 무관하게 노동자 민중은 겨울에는 더 지독하게 춥고 여름에는 더 후끈하게 찌는 열섬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배아복제, 각종 전자감시, 인터넷 실명제 따위,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용하여 도리어 인공의 섬들을 넓히려고 하는 잇따른 시도 앞에, 소통과 연대와 투쟁의 거점으로 우뚝 솟아나는 ‘자연산’ 섬 하나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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