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블로거TO블로거
천천히 걸어가며 세상 구경하는...
慢步客 김진화님의 세·상·구·경(http://happian.net/tt/index.php)

mo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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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는 릴레이로 진행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다가 나한테 넘어왔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꺼리인지라 어떤 블로거를 소개해야 되나 궁리하다가 몇몇에게 타진해본 결과 ‘절대, 네버 자기 블로그를 소개하지 마라’는 답을 얻었고, 다른 몇몇 블로그를 소개해볼까 생각하다가 내가 평소 잘 가보지도 않고, 사실 크게 관심도 없는 블로그를 소개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하여, 내 블로그에 링크도 되어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여다 보는 한 블로그를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블로그가 ‘후져 빠졌다던가 재미가 없다던가’ 한 건 전혀 아니다. 그냥 ‘내 꺼’로 두고 보고 싶은 불로그를 대중적 공간에 소개하는게 맞는가 싶어 망설였던 게다.

이 공간을 통해 소개된 블로그들, 또 쌈박하게 잘 빠진 블로그들과 달리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블로그는 제목에 촌스럽게 자기 이름을 떡하니 박아놓고 있다. 이 블로그의 제목은 ‘慢步客 김진화의 세·상·구·경’ 이다. 만보객, 그러니까 천천이 걷는 자라는 뜻일 게다. 천천히 걸어가며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는 뜻인지 천천히 걸어가며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맘에 드는 자기규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 보. 객

게다가 자신이야 말로 변화의 중심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치는 사람들 천지인 요즘에 세상구경이라는 규정 또한 맘에 들지 않을 수 없다.

천천히 걸어가며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본 적이 언젠지도 기억도 나지 않고, 버스를 타도 졸거나 뭔가 빼곡이 활자가 박힌 종이 조각을 읽는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참 맘에 드는 제목인 게다.

이 블로그는 여섯 개의 주요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구경꾼 답게 책구경, 사진구경, 사람구경이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아래로는 네트워크 세상, 즐거운 인생, 그냥 편하게라는 카테고리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섯 개의 카테고리에서 이 만보객이 보이는 관심사는 아주 다양하다. 먼저 책구경을 살펴보면 마르케스, 코엘류의 소설에서부터 조지 오웰 이야기 심지어 3M의 경영전략을 다룬 경영서까지 들어있다. 일반적인 경영서적이라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라(이건 사람을 자르라는 뜻이다), 경쟁에서 앞서라’는 무지막지한 단문들의 반복이지만 이 만보객은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경영서들을 통해 회사라는 조직과 자본주의의 낡은 관행들은 꼬집어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사진 찍기에 별 욕심이 없어서 대리만족의 공간으로 활용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사진구경 역시 볼만한 카테고리다. 학보사 기자 시절 시작된 이 만보객의 출사행각은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로 인해 날개를 달았고 ‘풋내기가 그린 유화 같다는’ 서울 풍경, 그의 처가가 있는 양평 시골 풍경, 취재차 여행차 다닌 한국의 곳곳을 독특한 질감으로 담아내고 있다.

‘즐거운 인생’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그의 겨울 취미인 스키 이야기, 김치찌개 이야기, 최근 한참 재미를 들이고 있는 자전거 이야기 등 그야말로 그가 인생을 즐기는 가지각색의 방법들이 담담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 블로그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그냥 편하게’ 카테고리 역시 ‘공공성’에 관한 각 영역의 논의에서부터 어린 딸을 위한 동화 쓰기, 예비군 훈련에 이르기까지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 처럼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자신의 관심사를 편하게 풀어내고 있다.

몇 손가락에 꼽히는 포털의 중견사원이며 진보적 보건의료 운동을 하고 있는 의사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몇 달 후 또 다른 딸을 맞이하게 될 만보객은 사실 너무나 ‘정상가족’을 꾸리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엿보이는 그의 생활은 ‘단란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활을 하는 가족’의 상에 가깝기에 가끔 얄밉기 까지 하다. 그렇지만 뭐, 날이면 날마다 회사를 뛰쳐나갈 꿈을 꾸는 이 블로거가 그런 이유로 폄하될 필요까지야 있냐는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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