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영화
나의 정보는 어디쯤 고여있을까?<네트>(1995)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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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필자가 대학에 갓 들어간 시점인 90년대 후반부터 각 가정마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로인해 사회적 풍경이 급격히 변화되었음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급격한 변화를 우리는 둔하게 인지한다는 점이다. 이제 소녀들은 조잡한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당시 일렁이던 감정을 저장해 두던 방식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초고속 인터넷이 제공해준 미니홈피에 자판을 두드리고 패스워드를 방패삼아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대학 교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과제를 던져주었는데 그 과제는 맘에 드는 희곡을 통째로 원고지에 옮기는 작업이었다. 메모는 물론 일기하나를 써도 자판을 두드리는 우리에게 모니터안의 ‘광수체’, ‘엽서체’는 그 글씨체만으로 글의 기승전결을 판단하기 이전 활자의 빼어난 미학만으로 판단력을 상실케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교수님의 ‘큰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과제를 번거로워한 것은 사실이다. 손글씨보다 자판을 치는 것이 배는 빠르고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탓이다. 뭐, 이정도의 변화는 진보된 매체 이기정도로 생각하며 고마워 할 수 있다. 일기장이 미니홈피가 되고 원고지가 한글이나 워드프로그램으로 대체되는 정도라면 살만하지 않겠는가? 자전거가 자동차가 되듯 말이다. 이제 자취생들이 필수 자산목록으로 꼽는 생활용품은 TV나 세탁기가 아닌 인터넷 가능한 컴퓨터가 된 세상이다. 그런 그들에게 개인정보유출 등의 아찔한 경고를 보내도 이미 컴퓨터는 우리 삶이지 않던가? 이 글 자체는 엉망진창이지만 필자는 모니터 화면의 굴림체가 보여주는 일목요연함에 만족하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 않은가?

두서없는 생각들을 나열하는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본 영화 <네트>때문이다. 사이버와 관련된 더 나아가 그로인해 인권을 유린당하고 어마어마한 사이버 범죄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인터넷에 따른 일상의 급격한 변화를 둔하게 체감하는 만큼 위의 소재들이 등장하는 영화들도 찬찬히 둘러보니 이미 즐비하다. 그런 영화들 중 고전이라고 할만한 영화가 1995년, 딱 10전에 제작된 <네트>가 아닌가 한다. 이미 <네트>의 영화적 의미뿐 아니라 그에 등장하는 인권유린과 실제 가능한 사이버범죄에 대한 경고성 글 또한 많은 필자들이 잘 정리하여 펴 낸만큼 미천한 상식을 동원하여 그로인한 이야기를 재탕하기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영화 <네트>의 주인공인 안젤라 베네트(산드라 블록)는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새 인터넷 프로그램 분석을 의뢰 받는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언뜻 보기엔 단순한 음악용 프로그램으로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안젤라가 알아서는 안되는 (사실 온 네티즌과 국민이 알고 응징해야하는!) 비밀이 내재되어 있다. 정부의 기밀들이 저장되어 있는 그 프로그램과 얽혀 안젤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삭제되어 버린다. 개인이 존재함을 증명할 모든 정보가 누군가로부터 네트워크상에서 모두 삭제된 것이다. 물론 영화는 우리의 유능한 주인공이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상황 복구하고 악당을 응징하며 해피앤드를 맞는다.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재미를 찾는 것은 영화전체의 거대한 스토리라인이 아닌 인터넷이 생활이 된 안젤라의 모습이다. 10년 전 제작된 영화 <네트>의 주인공 안젤라 베네트는 컴퓨터를 이용해 재택근무를 하는 유능한 프로그래머이며 식사도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집에서 해결하고 심심하다 싶으며 인터넷 안에 마련된 채팅방에서 얼마간 놀아주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창 대두되고 있는, 하루 종일은 고사하고 몇 년씩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태어나자마자 이런 종족이었던 듯 컴퓨터를 끼고 모니터, 본체, 키보드를 넘어 광활한 사이버 세상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차곡차곡 제공하며 살고 있지 않던가. 채팅방에서 만난 사이버 친구들은 안젤라에게 사이버공간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나자고 제안하지만 안젤라는 항상 이를 거부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익명성을 띤 네티즌과의 만남만을 즐길 뿐이다. 영화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가정, 직장 안에서 육체적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던 공동체에서 컴퓨터를 가족, 동료삼아 지내는 개별적 사회로 전이될 것을 예상한다. 안젤라가 채팅하던 상대가 직접 만나 종족번식을 하자는 말은 인상깊다. 하지만 그건 기우다. 90년대 말 한창 유행하던 채팅은 그 많은 벙개모임을 제안하고 오프라인 클럽을 형성하고 그로인해 술집의 매상을 톡톡히 올려주지 않았던가. 물론 요즘에는 이런 유행도 지났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안젤라의 모든 기호와 취향은 인터넷을 통해 범죄에 이용당하는 미끼로 활용된다. 영화를 보며 한 개인이 삭제당하는 사이버범죄의 당혹감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입력해 놓은 개인적인 기호와 취향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아찔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개인의 정보를 순순히 제공해주고 있던가. 사이트하나에 가입만 하려해도 주민번호, 주소, 연락처까지 고분고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한가지 나의 사적인 기호와 취향이 사이버공간 어디에선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상업적인 용도로 이용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불쾌하기까지 하다. 잡스러운 생각이 가지를 뻗으니 무엇하나 맘편한 것이 없다. 보잘 것 없어 정보라고 하기도 뭐해 이용당하진 않겠지만 별 생각없이 적어놓은 그 많은 나의 정보와 취향이 지금은 어느 사이버공간에 고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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