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칼럼
난해한 수학문제같은 정보통신정책

전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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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은 대부분 하계 휴가시즌이지만 또한 온갖 정보통신 관련 규제정책이 신비의 베일을 벗고 하나 둘씩 얼굴을 내미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반기에 접어들면 국정감사와 함께 정기국회가 열리며 이때 법안을 제출해야 연내 법안 통과를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앗차 하고 타이밍을 놓치면 가을에서 연말로 이어지는 정기국회 시즌에는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또다시 규제 규제 규제 그리고 그러한 규제를 위한 예산, 그런 일을 좀 더 제대로 하기 위해 산하기관의 필요성, 또다시 산하기관 운영에 필요한 예산 이런 주문이 이어지고, 정치인의 쇼와 언론의 장단 맞추기가 어울려 소란을 떨다 쥐도 새도 모르게 법안은 통과되고 허탈한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쓰라림을 겪게 된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지적재산권 규제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법안은 올봄부터 튀어 나왔지만 7,8월을 거쳐오면서 실명제,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 전자태그(RFID) 지침, 생체정보 지침 등이 연속적으로 쏟아지는가 했더니 통신업체가 감청시설을 필수적으로 두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까지 등장하여 험난한 하반기를 예고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070번호를 부여하는 인터넷전화서비스에 대한 기본정책이 마무리 되어 8월 중순경부터 본격 서비스가 실시된다고 하는가 하면, 스팸규제를 위해 메일서버등록제를 실시하겠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6월 임시국회에서 계류된 전자금융거래기본법도 또아리를 틀고 있다.
몇가지는 늘 보아 왔듯이 소비자의 권익보다는 산업육성, 지원이라는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정책들인데 프라이버시 보호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정책들은 금년 가을 정기국회가 최근 불거져 나온 국가정보원의 도감청 문제와 맞물려 온통 도감청 정국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이러저러한 정책들이 쏟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의 익명성이 여론을 왜곡하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고 몰아 부칠때는 언제고 다시 인터넷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명제 찬성이 많다는 낯간지러운 주장을 하는 건 또 뭔가? 한편으로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주민등록번호는 또 얼마든지 도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주민등록번호를 직접 쓰도록 하는 것보다 국가공인인증제도와 같은 대체수단을 써야 하지 않느냐는 누가 들어도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찬다. 인터넷 전화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IT839 목록에 인터넷 전화서비스를 집어 넣어 놓고 정작 펼쳐놓은 정책을 보면 인터넷 전화는 사업자가 보기에도 그렇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기존 전화서비스에 비해 별 실익이 없다. 뭐 하기야 1999년에 다이얼패드라고 세계적으로 신기한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 펼쳐 놓았던 업체는 이미 망해 버리고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인터넷 신기술과 서비스에 무관심한 인터넷 강국이다. 이웃 일본은 인터넷 전화 이용자가 작년말로 7백만이 넘었고 미국은 금년 3월로 2백만이 넘었지만 브로드밴드 강국을 외치던 우리나라는 아직 명함도 못내밀고 있는 처지다.
정책은 일관성있는 원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소비자도 예측을 한다. 또 정책을 둘러싼 토론이나 논쟁도 생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보통신정책의 원리는 그야말로 난해한 수학문제처럼 보인다. 그나마 답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정책당국자들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 보인다. 올여름도 여전히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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