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표지이야기
퍼블릭 엑세스, 뉴미디어에도 확대해야
독립제작시스템을 위한 공공적 지원도 필요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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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난개발의 여파는 콘텐츠 영역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를 무작정 도입은 하였지만 콘텐츠의 생산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위성디엠비(DMB)가 여전히 공중파 방송의 재전송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모바일 영상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이미 문화콘텐츠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를 포함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산업적’ 측면에 치우쳐있다는 것이다.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이 “(컨버젼스의) 진짜 중심은 소비자이며, 이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지만, 이 같은 산업적 관점에서는 수용자가 단지 구매자, 혹은 소비자로 위치지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콘텐츠의 부족 문제와 함께, 뉴미디어에서 콘텐츠의 공공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디어의 공공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 ‘퍼블릭 엑세스’

상업성에 치우친 미디어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있게 담아내기 힘들다. 그래서 공공적인 가치는 있지만 돈이 안되는 콘텐츠, 또는 소외되어 있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 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퍼블릭 엑세스(Public Access)'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왔다. 공중파, 케이블, 위성방송 등 기존 방송 미디어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를 구현해왔다. 첫째는 방송 시간의 일정 부분을 공공적 콘텐츠에 할애하는 것, 둘째는 독자적인 채널을 할애하는 것이다. 전자의 사례가 KBS의 ‘열린채널’ 프로그램이며, 후자의 사례가 위성방송 채널인 ‘시민방송 RTV’이다. 이와 같은 기존 방송 매체의 퍼블릭 엑세스 구조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이에 덧붙여 위성디엠비와 같은 뉴미디어에서 ‘공공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나 뉴미디어의 등장은 채널의 수를 증가시키며, 이는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미디어의 상업성은 강화되는 반면, 오히려 공공성은 약화되는 추세에 있다. 이는 최근 방송·통신 융합 과정이 공공성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어온 기존 방송 영역이 확대되는 방식이 아니라, 유무선 통신 시장의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통신 자본이 새로운 시장을 찾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미디액트 이진행 정책연구원은 “퍼블릭 엑세스 구조를 뉴미디어로 확대하는 한편,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시도될 필요가 있는 다양한 구조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디엠비나 아이피티브이(IPTV) 등 뉴미디어에도 퍼블릭 엑세스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편성하게 하거나 독자적인 채널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 방식의 다양성 부재가 콘텐츠의 다양함을 제약한다

독립적인 제작 주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되고 있다. 기존에는 방송사 자체가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생산하였지만, 채널 자체가 다변화될수록 콘텐츠 생산 영역이 독자화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독립제작자들은 방송사들과 불평등한 외주 제작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중앙위원장 김이찬씨는 “제작 방식의 다양성 부재가 콘텐츠의 다양함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방송사로부터 독립된 ‘독립제작주체’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독립제작시스템을 정립하기 위한 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 등 콘텐츠 제작 장비들이 저렴해지고 미디어센터가 설립되면서 부족하나마 제작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형성되고 있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해서 누구나 쉽게 자신이 제작한 콘텐츠를 대중적으로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해 실제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에는 아직 제작 환경이 무척 열악하고,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채널도 여전히 제한적이다. 인터넷도 사실상 소수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집중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증가하는 독립 제작주체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과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는 퍼블릭 엑세스 채널은 여전히 확대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안적 콘텐츠가 기존 공중파의 채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전송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공공성 보장을 위한 저작권 정책은?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도 갈수록 첨예화할 전망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입장에서는 저작권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콘텐츠가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다면 상품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작권이 문화의 향유나 저작물의 폭넓은 이용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방영된 TV 프로그램을 왜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없는가?” 혹은 “디엠비로 시청한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자신의 블로그에 복사해서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지적이다. 다양한 미디어들이 점차 동일한 디지털 기반에서 작동된다면, 동일한 프로그램을 서로 다른 미디어에서 서비스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 체제 하에서 미디어간 콘텐츠 공유를 허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작권이 콘텐츠의 이용 방식을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독립 제작자, 특히 비영리적 제작자 입장에서도 저작권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영상이나 음악 등 다른 저작물을 이용해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립 제작자는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콘텐츠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들이 뉴미디어 도입 과정에서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뉴미디어의 도입부터 운영까지 정부의 정책이 자본의 요구를 뒷받침하는데 급급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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