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여기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다수결 원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극단주의와 다수결의 맹신을 견제해야 하는 이유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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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은 종종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법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차선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수의 의견은 자칫 폭력이 되기 쉽다. 그 극단이 마녀사냥이다. 이른바 인터넷 여론 재판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식 검색의 맹점도 이와 닮았다. 진실과 상관없이 다수의 의견이 정답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가운데는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지식검색을 포함해 인터넷 매개 의사소통의 약점 중 하나는 속도의 논리에 지배된다는 것이다. 만일 인터넷 게시판이나 지식검색에 질문을 올리고 나서 2-3일이 지나도록 답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답변을 얻을 확률은 0%에 급격히 가까워진다. 즉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내용이거나 특수 분야에 관한 것은 그저 무의미한 데이터로 묻혀버린다. 선정적인 내용들이 활개 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인터넷 도처에서 발견된다. 인터넷 마녀사냥도 이런 빈익빈부익부 현상의 부산물이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에서 볼 수 있는 다수결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공간이 되는 것은 아직까지는 가능성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의견 수렴, 의사 결정의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고 있는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전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노예제를 전제한 귀족 중심의 정치 제도였다. 현대의 민주주의 형태가 주창된 것은 불과 몇 세기 전의 일이다. 민주주의는 현재 가장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발전된 통치 체제이긴 하지만 그 이념이 완벽하게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뿐이다.



계몽주의는 개인주의를 낳았고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주의를 한층 고양시켰다.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니, 개인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사적 이익을 추구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익을 증진한다고 믿었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었다.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고 나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경험했다. 자유방임이 오히려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고 위협하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유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거나 잊고 있었던 것을 되찾는 과정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치다. 타인을 억압하여 나의 행복을 이룩하지 않는 일, 한마디로 모든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 그것이 진정 우리가 가야할 길이며 해야할 일이다. 노예 상태란 부당한 불평등 관계를 가리킨다. 자유의 완전한 발견은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는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인터넷 미디어는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인터넷은 의견 표출에 적합한 도구다. 소수의 의견도 크게 부각할 수 있다. 크고 작은 모든 노예 상태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고발 매체의 기능은 여기에 속한다. 한편으로는 오프라인에서 그동안 범했던 다수결의 맹점을 보완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수결의 맹점을 잘 보여주는 두 사례는 마녀사냥이라고 불리곤 하는 인터넷 여론재판, 그리고 포털 사이트 네티즌 여론 조사다. 전자는 다수결의 취약점을 악용한 사례라는 점에서 극복해야할 점이고, 후자는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는 -오히려 방해만 하는 -허섭쓰레기라는 점에서 참여할 필요도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인터넷 사용자 의견 조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조사 내용은 늘 진실을 왜곡하거나 여론을 호도하는데 활용돼 왔다. 그 점이 나쁘다. 더구나 질 낮은 질문들이 판치는 포털 사이트나 각종 미디어 사이트의 여론 조사는 소모적인 논쟁을 만들 뿐이다.

민주주의는 극단주의를 경계하며 전개된 상대주의 사상이다. 인터넷 민주주의도 물론 그러해야 할 것이다. 극단주의, 다수결 맹신을 견제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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